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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교육 관련

디즈니 순수함과 거짓말 - 헨리 지루

by 릴라~ 2011. 9. 26.



 
헨리 지루의 책을 검색하다 읽게 된 책. 놓치기 아까운 좋은 책이었다. 지루는 문화비평가이자 마이클 애플과 함께 미국의 몇 안 되는 비판교육 이론가의 한 명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디즈니 문화 현상을 교육적 관점에서 분석, 비판한다. 문화 권력으로서의 거대 기업이 어떻게 민주주의를 약화시키고 대중의 정서를 특정 방향으로 길들이는지에 대한 훌륭한 통찰이 담겨 있다.

디즈니 영화는 즐겁다. 뛰어난 작곡가들이 참여한 애니매이션은 스토리에 살아있는 감정을 부여하고 우리의 소망과 환상을 충족시키고 어른들에게도 미적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그러나 그 즐거움 때문에 디즈니가 오락 이상의 것을 전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저자가 보기에 디즈니는 단순한 오락/문화 산업이 아니다. 미국의 미디어는 10개도 안 되는 대기업이 장악하고 있는데 ABC 등을 소유한 디즈니도 그 가운데 하나다. 디즈니는 다수의 방송사/영화사를 소유하고 그 거대한 자산과 문화 권력을 동원해 대중의식을 특정 방향으로 생산해낸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의 '정체성' 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디즈니 애니의 여주인공들은 미국의 십대 소녀처럼 귀엽고 발랄하며 모험심이 있다. 그러나 모험에 대한 그들의 동경은 새로운 세상으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기존의 조화로운 질서에 편입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알라딘, 뮬란, 포카혼타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등의 주인공들은 모두 전통적 여성상에 대한 은유이다.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은 알라딘을 비롯 남자 주인공에 국한되어 있다. 뮬란처럼 좀 더 도발적인 경우에도 그녀의 모험은 남자를 얻기 위한 과정으로서 기능하게 된다.

자막을 보느라 잘 몰랐는데, 디즈니 애니의 남녀 주인공들은 품위 있는 미국식/영국식 영어를 구사하고, 그들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억센 사투리를 구사하며 이는 인종차별적 함의가 있다. 또한 알라딘의 중동 사람들이나 포카혼타스의 인디언들, 라이언킹의 스카, 그들은 어둡고 사악한 존재로 그려지는데 반해 주인공의 얼굴은 알라딘처럼 백인이 아닐 경우에도 좀 더 백인에 가까운 얼굴로 그려진다. 애니를 보는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디즈니가 아름답다고 여기는 기준에 동화된다. 애니에 등장하는 자연과 동물의 왕국은 완벽한 계급 사회를 자연 질서의 일부로서 조화롭게 그려냄으로써 비민주적 사회 관계를 찬양한다.

가장 큰 문제는 디즈니가 의도적으로 권위주의와 현재의 문화를 정당화하며 역사에 대해 감상적이고 보수적인 관점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디즈니의 세계에서 '순수함'이란 역사의 불쾌한 측면을 제거하고 역사를 공공의 '추억 만들기'로 전환하는 이념적 도구이다. 즉 디즈니의 순수함은 특정한 역사관을 갖도록 만드는 교육적 형식이다. 역사를 열어주고 문화를 생산하게 하는 추억 즉, 사회/정치 상황에서의 추억을 제거하고, 우리가 누구이며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망각하게 하고, 대중의 욕망을 동심의 순수함과 건전한 모험에 대한 갈망으로 바꾸어 버린다. 인간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비판적 이해가 필요한데 디즈니는 보편적 향수를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러한 '비판적인 기억의 틀'을 약화시킨다.

디즈니에 대한 저자의 비판은 학생들이 복합적인 미디어 읽기를 할 수 있는 교육 실천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학생들이 다양한 문화적 산물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고 그 상징적 형태를 이해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 소비주의가 유일한 시민 정신이 된 시대에 학생들의 정체성이 학교 밖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는지를 고려해서 학습 내용을 재조정하는 일이 필수적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했다. 영상 매체를 비판적으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에도.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학생들이 그들 자신의 신문, 음반, 텔레비전, 뮤직 비디오, 지식과 힘을 그들의 욕구 및 공공생활의 요구와 연계하여 생산해내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지역 사회 내에서 인터넷, 공영 방송, 극장, 신문/잡지 출판 등에 접근하도록 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젊은이들의 예술적/지적/비판적인 재능이 피어날 수 있도록 후원하고 비상업적인 공공영역에 자유로이 접근할 수 있는 길을 터주어야 한다는 것. 급진적 민주주의와 기술을 연계하여 지배적 기업 문화에 저항하자는 것이다.

결국 이 책은 '순수함'이라는 가면을 쓴 디즈니의 정체를 폭로함으로써 디즈니를 비롯한 거대 방송사와 거대 기업이 조장하는 순응적 대중 문화의 지배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하는 물음으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의 영향력이 경제 뿐 아니라 정치/사회/교육/문화 전반에 이르고 있으므로 학교안팎에서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미디어를 민주화하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지금 십대, 이십대는 대중문화 및 기업문화의 강력한 영향 아래에 있다. 이십대의 탈정치화는 그러한 현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의 맺음말이 더욱 와닿는 이유이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현재 미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쾌락과 오락 문화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다만 그런 문화에 대한 검증은 그 문화가 기쁨과 즐거움을 생산할 수 있는지의 여부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기본적 체제를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제공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어린이들의 소망과 꿈을 디즈니 몽상가들의 미끼로 바꿔버리고, 디즈니 가게들과 권력 브로커들의 이윤으로 변화시키는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생산해내는 그런 문화산업은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다."


디즈니의 입장에서 추억은 각기 다르게 기억하는 행위와는 상관이 없고 미래에 발산될 에너지를 일으키기 위한 강력한 힘도 아니다. 그리고 지적으로 만족스럽고, 감정적으로 흥미진진한 정치적 이미지들을 불러내는 강력한 힘도 아니다. 오히려 추억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권위주의자를 정당화시키고,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문화 경험들을 정상화하는 데 필요한 매개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것이다. 디즈니가 순수함을 가장하는 실체는 재미와 가족의 중요성과 소비를 미덕이라고 여기게 하는 선전 문화일 뿐이다. 따라서 생기발랄한 모험이나 짖궂지만 어린이다운 순수함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은, 실제로 그 가치관에 있어서 보수적이고, 인종차별의 조장이라는 측면에서 식민적이며, 중산층을 바람직한 가정상으로 삼는 하나의 문화적 세계를 위장하고 있을 뿐이다. (pp134)

시장 문화가 욕망을 자극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등 교육적으로 강력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날로 증가하는 여론조사에 따르면, 많은 젊은이들에게 민주주의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정부의 간섭 없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고 쓸 수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는 보고는 정말 충격적이다. 젊은이들이 기업과 함께 자란다는 의미는 공공문화를 상업문화로 대체하고, 민주주의 언어 대신에 시장의 언어를 쓰면서 생활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와 동시에 학교의 기능이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것에서 민주적 소비자"를 만드는 것으로 전환되면서 지배적인 상업문화가 시민사회를 잠식하게 되었다. 그 결과 소비주의가 유일하게 수용해야 할 시민정신인 것처럼 보인다. (pp165)

교육과정을 위해 동원된 전문가들은 대체로 교육심리학을 공부하고 학교와 사회의 관계에 대해 거론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즉 이 전문가들은 지식과 권위가 민주주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다양한 과정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지식과 권위가 비판적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강화시킬 수 있는 의식 있는 심니을 양성하는 다양한 학습 과정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는 사람들이다.

하워드 가드너는 이 점에서 흥미롭다. 그는 교육 개혁가로서 오랫동안 복합지능 이론을 강조해왔다. 그는  교사들이 학생들마다 다른 학습 방식으로 이해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교육가들이 학문중심 교과전문가가 제공하는 모델들을 통해 이해의 형태를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설파한다. 가드너는 그의 방법을 가상 산업에 활용한다. 우리는 그의 비디오, 교수 지침, 저서 등에 관한 광고를 교육 잡지뿐만 아니라 비행사 잡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가드너가 학생을 학문적인 전문가로 보는 관점은 유연성 잇고 효율적이며 혁신적이고 자기조절을 할 줄 아는 협조적인 일꾼을 중점적으로 양성하려는 시도와 잘 들어맞는다.

이런 의미에서 이해는 비판보다 문제해결 능력과 좀더 밀접한 관계에 있고, 지식과 권력의 관계는 도덕적인 문제라기보다 전략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지식은 변화에 어떻게 적응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그래서 지식은 유연성과 신속함과 변혁을 강조하지만 사회의 뿌리 깊은 불평등으로부터 기인하는 실제적인 문제들은 다루지 않는다. (pp85)









디즈니순수함과거짓말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학
지은이 헨리 지루 (아침이슬,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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