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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역사, 인물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 이덕일

by 릴라~ 2005. 12. 21.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이덕일 (웅진닷컴, 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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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역사서의 재미에 푹 빠져 있는데, 이 책은 특히 뜻깊은 만남이었다.


아나키스트 이회영!


우리 나라 독립운동가 중에서 명문대가 출신을 찾기가 그리 쉽지 않다고 한다. 실제로 다수 지배층은 일제에 협력했다. 그런데 이항복의 11대손으로 조선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명문대가 출신의 이회영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가족들을 설득하여 6형제 40여 명의 가족 전원이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이주한다.  전재산과 전생애를 독립운동에 쏟아부었고 결국 이시영을 제외한 5형제 모두가 순국하게 되는 이들 일가의 삶은 실로 감동적이었다.


이회영은 비밀독립결사인 신민회의 창설 멤버였으며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했고 헤이그 특사 사건과 고종 망명 계획을 주도했다. 또한 신채호, 김창숙 등과 함께 의열단과 다물단의 막후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했고, 남화한인청년연맹을 결성하여 대일본 무장독립운동에 힘썼다. 정화암이 말한 대로 우리 독립은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와 같은 사람들의 투쟁의 산물이다.


이회영의 사상적 종착점이 아나키즘이라는 것은 매우 특별한 사실이다. 이회영은 아나키즘이야말로 자신의 운동을 이끌 이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독립 운동 자체가 자유와 해방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해방운동과 혁명운동은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운동이며 어떤 운동이든지 운동자의 자유합의에 의해 추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아나키즘은 사회 개혁의 원리였다. 그가 꿈꾸는 새로운 사회는 자유를 억압하는 공산주의와 평등을 억압하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것으로 개인과 사회의 자유를 확장하면서도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빠지지 않는 사회였다. 그에게 민족 해방과 인간 해방은 모순되는 목표가 아니었다. 그는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절대적인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타협과 이해, 양보와 협동을 통해 선한 세상을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한평생 그는 남을 결코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은 진정한 평화를 위해 싸웠다.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새로운 무장독립운동을 개척하기 위해 만주로 떠났으나 밀정의 고발로 수사 과정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하고 만다. 그의 삶은 그 자체로 무한한 자유의 상징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열정의 80년대를 주도했던 사상이 마르크스-레닌주의나 김일성주의가 아니라 아나키즘이었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른 모습일까라고 묻고 있다.


저자는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번역한 것이 그간 많은 오해를 불러왔다면서,  엄밀히 말하면 아나키즘은 '자유연합주의' 정도로 번역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아나키즘은 공존의 철학이며, 이타적인 사상이며, 평등을 추구하면서도 결코 독재와 억압을 용인하지 않고, 자유를 추구하면서도 이기주의에 대항하는 사상으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회영을 비롯하여, 신채호, 백정기, 이을규, 정화암 등 아나키스트들은 공의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희생하면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았고 한없이 이타적이고 자애로우며 남을 억압하지 않았다. 저자는 이들의 삶에서 완성된 인격을 보았고, 이 잊혀진 자유인들이야말로 새로운 세기의 희망이자 대안적 인간상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젊은 그들', 국난의 시절 새로운 세상을 꿈꾸었던, 그들의 개인적 삶과 그들의 사회적 투쟁이 일치를 이루었던 진정한 자유인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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