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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야기/인도, 네팔

[인도] 캘커타, 마더 하우스를 찾아가다 '01

by 릴라~ 2001. 2. 26.

 

내게 인도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첫인상을 심어 준 캘커타의 첫 모습은 무척 낯설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만난 가느다란 다리의 남루한 택시 운전사들, 시내로 진입하면서 본 거리의 풍경들, 그토록 많은 거지들, 그들의 무섭도록 슬픈 검은 눈동자들....

캘커타에서의 사흘은 우리의 눈이 그 모습에 익숙해지는 과정이었다.

배낭 여행자들이 몰리는 서더스트리트는 많은 여행자들과 상인들로 활기에 넘쳤기에
우리 마음을 다소나마 안정시켜 주었다.  여장을 풀고 거리에 나서자 맨발의 인력거꾼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에서 물펌프질을 하며 몸을 씻는 아이들도. 영화 '시티 오브 조이'의 장면 그대로다. 캘커타가 바로 그 영화의 무대였다.

영화도 감동적이지만 원작 소설이 더 좋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 나라엔 '목마른 사람들'이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소설에는 영화의 주인공인 의사 맥스 말고도 빈민굴에서 평생을 보낸 삐에르 신부를 비롯해 주변 인물들의 감동적인 삶이 잘 그려져 있다.

캘커타의 비참한 빈민굴은 역설적이게도 '기쁨의 도시'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릭샤는 내 눈길을 오래 끌었다.
인도에서도 사람이 직접 발로 끄는 릭샤(인력거)가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바로 여기 캘커타.  릭샤꾼은 가장 하층 계급의 사람들이라고 들었다. 맨 발의 왜소한 몸집을 지닌 릭샤꾼이 달리고 있는 릭샤 위에 편안히 앉아 있는 살집 좋은
 부유한 사람들의 모습.  신영복 선생의 말처럼 이는 그 자체로 인도의 빈부차를 상징해 주었다.

캘커타의 소음과 매연은 상상을 초월했다. 저녁이 되자 훨씬 심해졌다.
30분 가량 걸었는데도 머리가 아플 정도다. 마더 데레사의 집은 서더스트리트에서 멀지 않다고 들었는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근처인 것 같은데 물어도 제대로 아는 이가 없다. 마더 하우스는 서방 언론에는 잘 알려졌지만 여기 사람들의 관심사와는 거리가 먼 듯했다.

거리를 헤매다 운좋게 프랑스인 가족을 만났다.
마침 그곳에서 오는 길이라며 우리를 그곳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몇 블록 지나 마더 하우스에 들어서자 놀라운 고요와 침묵이 우리를 감쌌다.
소음으로 가득찬 도시 속에서 마치 딴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마침 기도 시간이었다. 기도소로 올라가는 입구에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예수 상이 서 있었다.
온 몸에 피를 흘리고 있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인도의 예수님.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여기까지 오면서 마주친 고통에 찬 인간 군상은 내 마음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 예수상은 마더 데레사가 인도에서 만난 예수의 모습일 것이다.

자원 봉사는 네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세계 각처에서 온 수십 명의 여행객들이 여행 도중 잠시 또는 오래 머물며 그 일을 돕고 있었다. 매일 아침 자원 봉사 행렬이 출발한다고 했다.
다음날 우리도 합류하기로 했다.

맨 처음 간 곳은 임종자의 집. 칼리가트 근처에 있었다.
매스컴에도 많이 알려진 곳인데 직접 가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적어서 무척 놀랐다.
환자들에게 우유를 먹이고 시트를 소독하고 갈아주는 게 봉사자들이 주로 하는 일이었다.

다야단은 장애를 지닌 어린이들을 위한 집이었다.
다야단에서 나는 인도인 일꾼과 함께 오전 내내 빨래를 했다. 발로 밟고 손으로 일일이 짜는 원시적인 방법으로. 함께 일한 인도인 여성은 나이가 서른도 훨씬 넘게 보였는데 불과 열일곱살이라고 해서 나는 깜짝 놀랐다. 고생의 흔적이 역력했다. 식사라고는 이 집에 일하러 와서 아침에 얻어먹는 한 끼가 전부라고 한다. 가난에 찌들린 그녀의 소박한 미소는 내 마음을 잔잔하게 파고들었다.
어디서 태어나는가가 이토록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내는 데 대해 가슴아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더 데레사의 집에 온 사람들은 여기 시설이 열악한데 많이들 놀라는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랬다. 매스컴에서는 유명세를 탔지만 실제 이곳은 초라하기 그지 없고, 구호 활동도 체계적이지 못했다. 비참함이 도처에 깔려 있는 곳에서 몇십 명을 돌봄이 무슨 의미를 지닐까 하는 생각인 간간이 스쳐갔다. 하지만 여기는 서방 세계와는 문화적 차이가 너무나 큰 인도다.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나는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거리에 넘쳐나는 게 거지인데 누가 누구를 도우며 어디서부터 시작한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눈 앞의 한 사람부터 돕기 시작한 것은 마더 데레사가 지닌 특별한 카리스마로 보였다. 그녀가 시작한 일을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것도 같다. 

마더 데레사는 자신의 일이 바다에 물 한 방울 보태는 것이라 했다. 그 한 방울이 없다면 바닷물은 그만큼 줄어드는 거라고. 중요한 것은 그 '정신'을 합당한 방식대로 이어가는 것일 듯 싶다. 살아있을 때 그분을 한번 만나지 못한 것이 참 아쉬웠다.

캘커타를 떠나기에 앞서 캘커타 시장을 구경했다. 우연히 마더 데레사의 상을 올려놓은 가게와 마주쳤다. 반가운 마음에 들어가 그녀를 아느냐고 물었다. 주인이 정색을 하고 대답한다. 아주 잘 안다고. 정말 훌륭한 여자라고. 그녀는 인도의 가난한 사람들을 정말로 좋아했다고. 진실이 담긴 대답이었다.

'시티 오브 조이'의 작자 도미니끄 라삐에르는 캘커타의 한 동네,
기쁨의 도시라는 뜻을 가진 아낭 나가르에서 일생 일대의 충격을 받는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 서양의 부유한 도시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사랑과 나눔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기쁨의 도시'에서는 마더 데레사 뿐 아니라 언론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뽈 랑베르 신부 같은 많은 사람들이 가장 불우한 사람들과 삶을 나누고 있었다.

 

하루 50원도 못 되는 돈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어른과 어린이들, 그들이 그 모든 어려움을 웃음으로 이겨내는 모습은 라삐에르의 마음을 온통 흔들었기에 그는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곳에서 몇 달 동안 생활하면서
이름 없는 성자들, 결핵 환자들, 나환자들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과 사귄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으며, 조그만 호의에도 신에게 감사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에게서
결코 절망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고통과 슬픔에 가득찬 삶을 기쁨으로 바꾸어 놓는 힘은 사랑이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에 그 절망의 도시는 기쁨의 도시로 변모된 것이다. 그 처절한 비참을 뚫고 피어나는 사랑에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을까. 라삐에르가 본 것은 그것이었다. 모든 것을 다 가졌다 해도 사랑이 없는 삶이 공허함을 작가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더 하우스를 오가며 타에서 나흘을 보내고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떠나기 위해 캘커타역으로 갔다.
역 뒤로 '기쁨의 도시'가 있다고 들었지만, 가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저녁 8시의 캘커타역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가축, 분뇨, 거지들이 서로 뒤섞여서 혼돈 그 자체였다. 그 적나라한 인간 군상들은 내 가슴에 깊이 새겨졌고, 그 장면 자체게 내게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너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기차가 멈춰 섰고 우리는 부처님이 열반하신 곳, 부다가야를 향하여 밤기차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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