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추위가 마지막 기승을 부립니다. 며칠간 내린 폭설로 금강산은 이름 그대로 설봉산, 눈천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단풍으로 물든 숲과 흐르는 계곡물 소리, 햇살에 반짝이던 옥빛 담소와 봉우리를 신나게 오가던 구름, 정다운 온갖 것들이 한바탕 잔치를 벌였던 가을 풍악산과는 달리 설봉산은 겨울 속의 겨울, 말이 없습니다. 구룡연 코스에서 상팔담은 고사하고 구룡폭포까지만 간신히 다녀온 산행이었습니다. 영하 14도, 바람이 몰아치면 입술이 얼 지경입니다. 겨울의 자연은 혹독하지만 아름답습니다. 하늘의 해조차 눈처럼 시린 흰 빛이며, 바람은 때때로 하얀 눈보라를 일으키고 지나갈 뿐입니다. 단순하고 고적합니다.
기대했던 만물상 코스는 아예 산행이 불가능했습니다. 사람들은 작년에 버스로 올라갔던 12km 구간을 6km 지름길로 주차장까지 올라갔습니다. 경치는 좋았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 길 대신에 지난 번 보지 못했던 해금강과 삼일포로 갔습니다. 해금강은 평범합니다. 흐린 날씨 때문에 바다도 바위도 그저 심심했습니다. 하지만 삼일포는 제게 편안하고 좋았습니다. 만물상에 비한다면야 경치는 특별한 게 없지만, 얼어붙은 호수 한가운데 정자가 자리한 모습이 고요한 정취를 자아냅니다.
약 다섯 달만에 다시 찾은 금강산은 예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구불구불한 군용도로를 통해 긴장 속에서 비무장지대를 통과했던 작년과 달리, 해안으로 관광도로가 나서 금세 북측에 닿게 됩니다. 검열하던 인민군들의 표정도 한결 달라져 있었습니다. 딱딱한 표정으로 버스에 탄 사람들을 전부 얼어붙게 했던 작년과는 달리 다소 귀찮다는 기색조차 엿보입니다. 많은 것이 더 편안해졌습니다. 감동은 덜해졌지만 이 편안함은 그만큼 왕래가 잦았다는 증거이므로 즐겁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번에 비해 이번에는 반가움보다 안타까운 마음이 더욱 컸습니다. 구룡연에서 북측 안내 선생과 나눈 이야기들, 삼일포로 이동할 때 통과한 북측 마을의 모습, 보따리를 메고 빈 논밭 사이를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 등이 제게 질문을 주고 있습니다. 물질적 풍요는 대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닌 것일까요? 가난한 국가일수록 사람들의 얼굴은 소박하고 인간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물질로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함께, 같이,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 간절했습니다. 몇 십 년의 격차를 지닌 두 개의 사회를 보며, 자본의 힘이 부디 인간을 파괴하지 않고, 인간을 살리는 수단이 되기를 빌어봅니다.
떠나는 날 오후, 온정각에는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속초에 도착해서도 눈비가 계속됩니다. 밤차를 타고 눈발을 뚫고 대구로 향하는 긴 시간은 마치 한겨울 속을 관통해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겨울 속의 겨울, 그렇게 눈의 나라에 잠시 다녀온 여행이었습니다. 봄이 오면 흰 산은 침묵을 벗고 다시 사랑스러운 온갖 것들을 불러모을 것입니다. 그렇게 자연은 한결같이 돌아옵니다. 돌아오지 않는 건 사람입니다. 우리 삶 안에서 나온 숱한 이야기들 중 어떤 것은 이제 끝을 맺고 시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소중한 이야기들의 확연한 끝을 보며 망연해질 때가 있습니다. 겨울의 끝이 또한 봄의 시작이듯 제 마음의 겨울을 지나서 찾아올 새봄이 어떤 모습일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봄을 예감하고 있다는 것이 우선은 놀랍습니다. 삶 속 각각의 짧은 이야기들은 끝이 있지만 삶이라는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에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낱낱의 사건과 경험들을 모두 엮어내는 하나의 큰 이야기를 알아볼 날이 오리라 믿어봅니다. 삶의 아픈 조각 조각들도 전체 그림 속에서 예쁜 자리를 차지하리라 믿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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