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의 <아리랑>. 15편의 영화를 쉼 없이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만들어왔던 그가 3년간의 은둔 끝에 내어놓은 바이오그래피. 아침부터 밤까지 그의 산골 오두막의 있는 그대로의 일상을 배경으로 두 명의 김기덕이 치열한 설전을 벌인다. 머리를 길게 풀어헤친 김기덕은 자신이 은둔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토로하고 머리를 단정히 빗어올려 묶은 김기덕은 너의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음을 상기시킨다.
이 두 명의 김기덕이 나눈 질문과 대화는 그 대화의 내용이 어떠한가를 넘어서 그간 김기덕 감독이 얼마나 진지하고 치열하게 영화와 삶을 고민하며 살아왔는지를 보여주었고 그 '진지함'이 내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삶의 본질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그의 영화의 힘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알 수 있었고, 그가 지닌 뜨거운 심장에 감동했다. <아리랑>은 예술가의 머리와 가슴을 만날 수 있는 영화이다.
아리랑 고개는 우리 삶의 한이 서린, 우리가 넘어가야 하는 인생의 고비고비를 가리킨다. 어느 날 김기덕은 그 고개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가 걸음을 멈춘 계기에는 각본과 감독은 물론 소품까지 직접 만들어 쓰며 1인 10역을 하며 힘들게 작업해온 그간의 고생, 영화를 찍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에 대한 충격, 믿었던 사람들이 그를 떠난 데 대한 상처,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회의와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부르짖고 있었다. 인간이란 우정보다는 자신의 꿈과 욕망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그것이 당연하다고. 그런데 너는 왜 네가 찍은 영화의 캐릭터처럼 쿨하지 못하고 그 당연한 인간사에 절망하느냐고. 감독의 독백은 그가 왜 그렇게 사랑하던 영화를 접었는지 짐작케 한다. 그는 이대로 은둔하며 영화를 접을 것인지, 또 다른 무언가가 남아 있는지 끊임없이 자신에게 질문하며, 그 와중에서도 그가 만들고 싶은 영화에 대한 구상들을 노트에 써나가지만 영화가 되지 못할 것이라며 한탄한다.
3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찍기 시작한다. 그 바이오그래피의 말미에서, 그는 자신의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다시 들여다본다. 그 영화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무거운 맷돌을 몸에 매단 채 불상을 들고 힘겹게 산을 올라가는 배역을 연기하는 자기 자신이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그 장면이 담고 있는 구원의 메시지를 그의 '오늘'을 통해 새롭게 이해했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그가 굴러떨어지면서도 끝없이 올라가서 산 위에서 고요히 좌정하듯이 현실의 자신에게도 이 고개를 넘어 새로운 길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는 과거를 죽이고 다시 세상으로 나온다.
<아리랑>의 마지막 장면은 아마 칸 영화제 출품 이후에 덧붙여진 것 같다. 칸 영화제 시상식에서 그가 수상 소감 대신 아리랑을 힘차게 부르는 장면이기에 그렇다. 영화 속에서 그가 소주 한 잔 마시며 부르는 아리랑이 한 맺힌 회한의 아리랑이었다면, 칸에서 부른 아리랑은 그의 목소리를 세계에 알리는 기운찬 아리랑이었다. 그는 그렇게 부활했고, <피에타>로 다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이 시대에 이런 예술가가 있음은 우리 사회의 행운이다. <아리랑>은 아프고 슬프고 뼈아픈 고백들을 담고 있지만, 그 어떤 따스한 위로보다 더 따스하게 자신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힘이 있다. 김기덕의 다른 모든 영화도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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