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산에라도 올라갔어야 했다. 일출을 이처럼 또렷이 볼 줄 알았더라면. 독감에 걸린 데다가 구름 때문에 신년 일출 보기 어렵다는 뉴스에 그냥 집에서 뒹굴뒹굴하다가 혹시나 해서 아파트 옥상에 올라갔다. 텃밭 가꾸는 부모님이 가을에 고추랑 농작물 말린다고 관리실에서 열쇠 얻어두었던 것. 요즘 자살 소동이 많아 옥상 개방 절대 안 한다. 우리가 여기 워낙 오래 살아서 문단속 철저히 하겠다고 약속하고 빌려 쓰는 중이다.
15층 아파트라 기대만큼 높지는 않았다. 대구 지방 일출 시각은 7시 35분. 어둠이 완전히 물러갔지만 동쪽 하늘엔 붉은 기운만 돌 뿐 햇님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더 기다렸으나 매서운 찬바람에 카메라를 든 손만 얼어붙었다. 구름 뒤로 이미 해가 솟았나보다, 포기하고 돌아서는 순간 뒤따라온 어머니가 외친다. "야! 올라온다!" 놀라서 뒤돌아보니 동편 작은 동산 위로 햇님이 봉긋 떠오르고 있다. 7시 39분이었다.
높은 산에서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햇님을 맞이할 때만큼 장엄하진 않았다. 야생적인 풍광을 가리는 아파트, 건너편에 새로 들어선 보국 웰리치가 얼마나 밉던지... 그래도 이 태양이 잠시 이렇게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에 감사해 두 팔 벌리고 환영했다. 주위는 온통 아파트숲이고 햇살 또한 강렬함이 덜했지만, 내 가슴은 이 태양이 드넓고 거친 태평양을 밤새 건너온 그 태양과 같은 태양이라고 말해 주었다.
삶의 질은 국민소득 이만불의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다. 날마다 아름다움을 접할 수 있는 권리, 탁 트인 하늘이 있고 동쪽 산 위로 해가 뜨고 서쪽 산 너머로 해가 지는 것을 볼 수 있는 권리(초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저녁 노을을 많이 바라봤었다), 콘크리트 네모가 아니라 자연의 둥근 실루엣 속에서 우리 눈과 마음이 평온을 되찾을 권리. 우리가 잃은 것들이다. 그와 더불어 우리 영혼 또한 머물고 스며들 곳을 잃은 건 아닌지. 우리가 24시간, 그리고 한 평생 살아가는 공간은 그저 '환경'일 뿐 우리의 혼이 그곳에 깃들면서 그곳과 더불어 깊어지는 그런 장소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자연은 날마다 미세하게 다르게 떨린다. 불어오는 바람과(언제부터인가 바람다운 바람, 냄새와 습기를 머금은 그 바람도 사라졌다) 그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들, 빗방울이 만드는 작은 물웅덩이, 내 걸음에 앞서 폴짝 뛰어가던 메뚜기들, 제비가 떠나가고 난 뒤의 빈 하늘, 해질녘 들리는 뻐꾹새 울음 소리, 어두워가는 산과 뒤따라오는 고요한 공기, 겨울밤의 적막함..... 그리 길지 않은 어린 시절, 내 곁에 있던 것들. 주위의 모든 것들이 살아 움직이면서 살며시 다가와 내 가슴을 톡톡톡 두드리고 지나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파트로 이사온 후,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사방은 빈틈없이 아파트로 채워졌다. 이 육중한 콘크리트는 사시사철 똑같은 표정과 똑같은 옷차림으로, 체온 없는 냉혈동물처럼 내 앞에 서서 풍경을 가로막는다. 장소가 아니라 흔해빠진 사물. 아파트라는 공간의 지루함과 획일성 때문에 도시민들은 강렬한 자극을 찾아 헤매는지도. 엄밀한 의미에서 아파트는 '집'이 아니다. 단 몇 평의 정원을 가꾸지도, 아침엔 마당의 풀잎에 맺힌 이슬의 차가움을 발로 느끼지도 못하는 그곳을 우리들의 '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추억이, 묵은 시간의 향기가 스미지 못하는 곳, 이십년만 지나면 재건축 소리가 나오고 더 지나면 헐고 새로 지어야 하는 곳을 우리는 소유할 수는 있으되 사랑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이곳은 과연 '집'일까.
한 해 한 해 흐를수록 새해 소망은 단순해지는 것 같다. 올해는 내 주변의 작은 생명의 움직임들을 많이 느끼고, 베란다 화분 제발 말려죽이지 말고, 음악 많이 듣고(씨디가 내는 전자음에 질린다, 이건 소리가 아니다) 피아노 연습도 좀 하고, 이 세상에 있는 많은 것들, 사람들이 가치를 부여한 것들이 아니라 그다지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으나 정말 소중한 것들을 가슴 가득 '느끼면서' 살고 싶다. 한국 나이로 마흔, 지금까지 열심히 해온 것들, 추구해온 많은 것들이 죄다 허망해졌다. 허망함, 무상함이라는 감정은 우리가 바쁘게 살면서 무언가 놓쳐버린 것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영혼의 전령. 잃어버린 기억과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찾으라는 속삭임. 무엇보다도 되찾고 싶은 것은 잃어버린 내 어린 시절의 감각들, 감성으로 지어진 풍성한 세계이다. 작은 기쁨들과 작은 평화들이 우리 곁에서 반짝거리는 세계.
2013년, 그간 나의 수많은 불평과 짜증과 한숨에도 불구하고 신은 다시 365개의 작은 상자들이 담긴 선물 꾸러미를 내게, 기꺼이 주셨다. 지난 날의 나의 행위와 상관없이 무상으로, 대가없이. 2013년에는 날마다 그 선물을 끌러보고 싶어졌다. 365개의 선물 상자의 포장을 매일 하나씩 정성껏 풀어보기. 이 하루하루가 선물이라면, 일 년에 365개의 택배 상자가 저 하늘로부터 우리의 이 두 손에 이른다면, 날마다 하늘로부터 선물이 도착한다면 이 삶도 한번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태양이 날마다 우리 곁에서 솟아오르는 한 우리 또한 가던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리라. 그라시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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