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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네 번째 오월을 보내고

by 릴라~ 2013. 6. 9.

 

 

 

 

벌써 4년째네요. 2009년 5월 23일 이후로. 그 토요일 아침, 바닥을 모른 채 한도 끝도 없이 무너져내리는 가슴을 어찌할 바 몰라 그저 눈물만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우리가 잃은 것은 당신만이 아니었어요. 당신의 인격에 감응하던 우리 영혼의 한 조각을 함께 잃었다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슬픔은 육체를 지닌 한 인간으로서의 당신을 잃은 것 뿐 아니라 당신의 말과 삶에 반응하던 우리 자신의 한 부분을 잃어버린 데서 비롯됩니다. 우리가 지키지 못한 것 또한 당신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살고 있던 한 영혼이자 우리 시대의 가치였어요.

 

하나의 인격이 한 시대의 정신을 대표하는 그런 자리에 당신은 있었습니다. 당신이 걸어온 길은 우리 안에 잠자고 있던 한 영혼을 두들겨 깨우고 그것에 소리와 색채를 부여했답니다. 사람들 저마다의 가슴 속에 있던 그 많은 영혼들은 이제 어디를 어느 곳을 헤매고 있을까요. 다시 무의식의 깊은 잠속으로 걸어들어갔을까요. 아니면 어느 산천에 버려져 있을까요. 살아가면서 우리들은 우리 자신을 얼마나 많이 잃어버리게 되는지요. 그 버려진 혼들이, 잊혀진 목소리들이 다시 숨을 쉬게 될 날이 올까요.

 

프루스트는 말했지요. "사랑이란 마음으로 느끼게 되는 시간과 공간이다" 라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서 우리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당신이 떠나고 대한민국의 시계는 멈춘 것 같습니다. 마치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것 같아요. 진정한 시간은 물리적인 시간의 작동이 아니라 우리 정신이 우리의 과거와 현재로부터 새로운 영감과 전망을 이끌어내는 '차이의 시간'입니다. 미래의 문턱 앞에 서 있는 시간이지요. 당신은 그 문턱을 보여주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다른' 시간과 공간의 문을 열어주었어요. 이제 그 문은 닫히고 그 열려진 문으로 미래를 내다보던 수많은 영혼들은 각자의 방 안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방의 시계는 시침과 분침이 멈추고 초침만이 가느다란 떨림을 내고 있습니다. 그 소리마저 멈추는 날이 올까 두렵습니다. 각자의 방에 갇힌 그 혼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이는 그런 순간이 또 올까요.

 

4주기 때 추모시로 누리방에 누군가가 '님의 침묵'을 남겨놓았더군요. 상실의 슬픔을 그만큼 아름답게, 그만큼 고요하면서도 격정적으로 표현한 시는 없을 것입니다. '님의 침묵'은 우리가 잃어버린 대상의 침묵인 동시에 그에게 말을 건네지 못하는 우리 영혼의 침묵이며 그가 사라진 이 세상의 침묵이기 때문입니다. 그 침묵을 확인하는 게 두려워 내내 봉하마을에 가지 못했습니다. 이제 영원의 나라로 떠난 당신의 침묵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 두려웠어요.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제 가슴이 그곳에서 이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내지 못할까봐 그것이 더 두려웠을 거예요. 

 

논문 최종 수정 작업이 끝나는 대로 봉하에 들르려 한답니다. 그리고 귀기울이려 해요. 이 산천이 아직도 제게 속삭임을 주는지, 이 땅이 아직 제게 들려줄 말이 있는지. 아직 내 가슴에 남은 사랑이 있는지. 그러므로 아마 그 여행은 당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 안에 있는 한 존재(그것을 영혼이라 부르든 잃어버린 자아로 부르든 간에)에 대한 귀기울임일 것입니다. 그것이 제게 다시금 어떤 말을 건네온다면, 그것을 길잡이 삼아 잃어버린 말들의 세계로 가는 오솔길을 다시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어요. 그럴 수 있기를. 그렇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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