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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schooling

자사고와 특목고, 삶의 다양성을 배제한 교육

by 릴라~ 2013. 6. 9.

 

 

 

 

자사고와 특목고, 삶의 다양성을 배제한 교육

 

 

학교 현장에서 십수 년을 근무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교육에 관한 한 가지 커다란 환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공간과 분리된 어떤 특별하고 좋은 교육이 있다고들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색다른 수업 방식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교육의 다양성과 질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학교 선택의 기회가 보장될수록 더 나은 교육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자사고와 특목고의 존립을 떠받치고 있는 논리입니다. 교육을 공공재가 아니라 상품과 같은 소비재로 바라보는 시각이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논리에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함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다양성은 교육 프로그램의 다양성이 아니라 삶과 문화의 다양성,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의 다양성과 그들이 우리 마음에 남긴 삶의 흔적들의 다양성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다름 아닌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세계의 다양성입니다. 사람이 다 다르다고 할 때 그 다름은 각자의 개성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차이는 우리의 지성과 감수성으로 이해하고 품어 안을 수 있는 세상의 크기의 차이입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가 사랑하고 가꾸어갈 수 있는 세계들을 얼마나 많이 지니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자사고와 특목고는 비슷한 계층의, 비슷한 성적의, 비슷한 생활방식을 지닌 아이들을 모아놓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만나는 세상은 좁습니다. 배움의 진정한 동기는 매끈하게 잘 가공된 사실을 전달받는 수업이 아니라 세상의 울퉁불퉁한 면들을 몸소 느끼는 지점에서 비롯됩니다. 서로 다른 배경과 능력을 가진 학생들이 시공간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삶에 대한 영감이 싹틉니다. 획일적인 입시 위주의 우리 교육이 지난 세월 버텨온 힘은 교육방법의 획일성에도 불구하고 학생 집단의 다양성이 보장되었기 때문입니다. 부자건 가난한 아이이건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모든 계층의 아이들이 한 교실에서 공부해온 것이 그간 우리 사회를 떠받쳐 온 힘입니다. 그 다양한 관계 속에서 아이들은 나와 남이 다르다는 것을 배우고 세상이 다양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1%가 중요하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1%는 그저 공부만 잘하는 1%가 아니라 99%와 소통할 수 있는 1%,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1%입니다. 1%의 자질은 경쟁이 아니라 친구들과 소통하고 협동하는 가운데서만 길러질 수 있습니다.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도 그에게 좋은 동료가 없다면 그 재능은 사장되기 쉽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1%가 고정된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삶은 교실보다 복잡하고 넓으며, 어떤 상황에서는 이 아이가 최고이지만 또 다른 상황에서는 다른 아이가 더 잘할 수 있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잠재적 1%의 자질이 있는 것입니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아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보면 다름이 때로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갈등을 조정하면서 자신의 요구와 타인의 요구를 조화시켜 가는 가운데 우리는 함께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핀란드의 교사들은 말합니다. 체육 시간 특히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경쟁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영어를 두고 학생들이 어떻게 경쟁할 수 있냐고. 교육은 배움의 기회를 주는 것이지 친구와 비교하여 우열을 가리는 게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교육은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교육입니다. 아이들을 종일 학교에 가두어두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가꾸어갈 수 있는 삶의 시간과 공간을 회복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것의 현실적이고 제도적인 밑받침이 되는 것은 고교 평준화의 틀을 유지함으로써 다양성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자사고와 특목고의 확대가 우리 교육의 내용을 더 풍요롭게 할까요, 아니면 기존의 입시교육을 강화하고 그 비정상적인 구조를 더욱 고착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할까요? 우리가 조금만 더 정직하게 우리의 욕망과 그 욕망이 초래할 결과를 내다볼 수 있다면, 이 물음에 답을 내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천주교 정평위 소식지 <함께꿈>,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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