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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이야기/여행 단상

두 개의 풍경, 여수 만성리

by 릴라~ 2016. 10. 24.



때로는 하나의 광경 혹은 이미지가 그 도시에 대한 인상을 결정한다.

여수 만성리의 바닷가 풍경이 내게는 그러했다.

 

일차선 좁은 도로를 따라서 일제시대에 건설되었다는 <마래터널>을 통과하면

도로 오른편으로는, 폐선을 활용한 레일바이크 길과 그 너머 푸른 바다가 시야에 들어오고

도로 왼편으로는, 눈여겨보지 않으면 찾기 어려운 작은 표지판과 함께

만성리 학살 유적지가 자리해 있다.

 

여수순천 사건 직후 1949년 죄없는 민간인 250명이

인근 종산국민학교(현 중앙초등학교)에서 총살당하고 불태워져 이곳에 암매장되었다.

희생자 위령비가 서 있는 곳은 물론이고

그 근처에 있는 형제묘 또한 누군가 두고간 꽃이 그 마음을 말해줄 뿐

아직 주변 정리가 되지 않아 거의 방치되다시피 버려져 있다.

페인트칠이 벗겨져가는 안내 표지판에는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가 적혀 있어 

이 안내판을 그때 세웠음을 말해주었다. 이후 죽 방치된 것 같았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만성리 학살 유적지 바로 옆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밝은 웃음을 지으며 레일바이크를 타고 있었다. 관광지 여수의 풍경이었다.

이 두 개의 상반된 풍경을 보며 나는 '아, 이것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구나' 했다.

 

과거를 기억하지 않을 때 그 과거는 반복될 수 있다.

그러나 여수는, 적어도 이곳에서는 과거를 기억하기를 원치 않는 듯했다.

마래터널 앞으로 난 일차선도로를 이차선도로로 확장한다는 공사 안내문과 함께

그 일대에 남아 있는 분묘의 연고자를 찾는 안내문이 보였다.

일제시대때부터 해방 직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현장을 훼손하면서까지

도로확장공사가 필요한 것일까.

 

마래터널 입구에서부터 만성리 학살지까지 차량 출입을 통제하고

그곳을 걸어서 통과하면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품을 수 있는

그런 순례길로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 

그 길에서 바라보는 여수 앞바다의 풍경은

레일바이크로 즐기는 풍경과는 사뭇 다를 것 같다.

그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 위로 인간의 땀과 눈물을 품은 시간의 두께가 더해져

이 땅에 대한 더 진실한 애정이 자라날 수 있을 것 같다.

 

한때 공포의 땅이 되었던 곳을 그렇게

미래를 위한 소중한 배움의 장소로 태어나게 하는 힘이

우리에겐 아직 없음을 여수 만성리에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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