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대사관은 광화문에서 지척에 있었다.
교보빌딩을 지나 골목을 몇 개 지나니 대사관이 나타났다.
층을 올리는 공사중이어서 본관은 가림막을 쳐놓았다.
소녀를 찾아서 그 맞은편으로 눈길을 돌리자
대사관 건너편 인도에 '평화의 소녀'가 있었다.
평화의 소녀상과 눈길이 마주친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 하는 감정이 올라와서 깜짝 놀랐다
언론에서 사진으로 워낙 많이 접해온 터라
별다른 이유 없이 그저 지나던 길에 한번 보자 해서 들른 참이었다.
평소 이 주제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 적도 없었기에
나 자신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이미지와 실재는 그렇게 달랐다.
소녀는 열다섯 열여섯쯤으로 보이는 가녀린 몸으로
말없이 그 자리에 앉아 일본대사관을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의 그 작고 가녀린 '몸'은
그 어떤 장문의 역사적 서술보다 더 많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나는 소녀상과 만나자마자 울컥한 데 놀라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가냘픈 모습이어서 더욱 마음이 아팠다.
이게 바로 예술의 힘이 아닐까 생각했다.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 때 작가들이 불어넣은 숨결과 애정과 연민이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아우라를 가능케 했을 것이다.
그것이 관객에게 전해진 것이다.
나는 작가들에게 감사했다.
그렇게 70여년의 긴 시간의 침묵을 뚫고
우리 앞에 돌아온 이 소녀는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다윗처럼 세상을 바꾸고 있다.
이 문제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일본이
평화의 소녀상이 전하는 메시지에 질겁을 하기 시작했고
서둘러 합의에 나섰다.
이 소녀가 직접 자신의 몸으로 웅변하는 메시지의 강렬함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소녀는 자기 옆의 한 의자,
비어 있는 한 의자에 우리를 초대하고
그녀의 과거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소환한다.
신화속 공주 바리데기가 온갖 고난과 천시를 뚫고
신이 되어 다시 지상에 돌아온 것처럼
찢기고 핍박받던 그 소녀 또한 세상에 돌아왔다.
그 소녀의 이름은 '평화'이고,
우리들의 신이다.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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