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특별한 책, 그리고 분단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남과 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들에 관하여' 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비무장지대에서 북측 심리전 방송요원으로 근무하다가 스물 두 살에 휴전선을 넘어 남한에 온 저자의 십여 년간의 한국 생활기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탈북민'의 자리에 머물기 싫어 연세대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하고 통일학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가 사선을 넘어 한국에 온 뒤 더 힘든 사선을 넘어 공부를 한 까닭은 자신의 삶에 대한 물음 때문이었다.
남도 북도 아닌 '조난자'로서의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이해하고자 분투해온 저자의 시선은, 그 자신을 넘어 194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반도 조난자들 전부에게로 이어진다. 그래서 이 책의 2부는 저자의 개인적 경험을 넘어 한국의 뒤틀린 현대사의 결과물인 한반도 조난자들의 삶을 역사의 눈으로 재조명한다. 남한의 편도 북한의 편도 아닌, '조난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남북한 사회의 모습도 의미 있다(북으로 다시 돌아간 탈북민도 많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한에 도착해서도 끊임없이 '죽음의 사선'을 넘어 스스로를 일으켜세워온 인생 역정에 실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 책을 읽으면 통일이란 국경을 합치는 문제가 아니라, 전혀 다른 삶의 논리하에 있었던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포용하느냐의 문제임을 느낄 수 있다. '종북'이나 '무찌르자 공산당'을 운운하는 정도의 협소한 세계관으로 민족의 통일은 어림도 없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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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국민들이 통일을 말하지만 이를 준비하려는 사람은 드물다. '먼저 온 통일'이라 했던 탈북민이 3만 명을 넘어섰지만 그들과 함께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가물다. 탈북민에 대한 무관심만큼이나 통일 이후에 대한 고민도 극히 적다. 어떤 경우의 통일이든 남북한은 상생과 통합 과정을 거쳐 통일에 이르러야 한다는 점에서, 그 경로로의 예행연습은 매우 중요하고도 유용한 의미를 지닌다 명토 박아 거듭 말하자면,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이다. p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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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들이 그토록 염원했던 완전한 독립인 통일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그리고 분단의 슬픔도 부끄러움도 성찰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70여 년 전의 해방처럼 앞으로 도래할 통일도 우리가 이룬 것이 아닌 앉아서 당하는 통일이 될까 두렵다. 그런 통일이라면 재분단과 전쟁과 같은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에 앞서 분단을 성찰하고 평화를 중시해야 한다. 통합의 대상인 남북한 서로를 알아가고 상생을 고민하며 통일을 하나의 과정으로 축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방치했던 한반도의 조난자들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늘 존재해온 지남철처럼 어쩌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p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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