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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야기/중국, 몽골

중국의 아침, 북경 천단공원과 환구단

by 릴라~ 2018. 9. 2.

친구가 북경의 여름은 더위로 많이 힘들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간 때는 7월 말인데도 30도 정도여서 그다지 덥지 않았다.

악명 높은 북경의 스모그도 많이 걱정되었는데 오히려

서울보다 공기도 좋은 편이었다.

북경 주변 공장이 해안으로 이전한 덕분인지는 모르겟으나,

시내 모든 버스와 택시, 오토바이가 전기로 바뀐 영향도 분명 있을 것이다.

중국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우리와 다른 그곳만의 색깔을 발견하게 될 때다.

그것은 고유한 자연일 수도 있고,

미학적 전통이나 정신적인 분위기일 수도 있으며, 

일상의 사소한 삶의 스타일일 수도 있다.

그 '작은 차이'가 삶의 다양성을 깨닫게 하고

그 장소를 독특하고 매력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준다. 

 

일주일 동안 북경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자금성은 예상보다 아름답고 스케일도 대단했지만,

딱히 마음을 끌지는 않았다. 성벽에 붉은 색을 칠한 것도 생뚱맞았고,

자금성의 성벽이 중국 근대화 과정에서 모두 허물어지고 궁궐만 덩그러니 남아서

전통적인 장소라기보다는 새로 건설된 도시에 있는 옛 유적 같은 느낌이었다.

자금성 안에는 원래 암살범의 침입을 막기 위해 나무를 심지 않았는데,

그래서 더 삭막한 느낌을 받았던 것도 같다.

이화원 또한 그 규모에 놀랐지만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북경에서 정작 인상적인 것은 도로마다 즐비한 회화나무 가로수였다.

한여름이지만 숲이 있고 도심에 큰 빌딩이 없고 하늘이 트여 있어

대도시 같지 않게 평화로운 분위기인 점도 좋았다(물론 자금성 인근에는 관광객이 엄청 많았다).

시내 곳곳에 도로 한 차선을 아예 자전거 전용도로로 만든 점도 놀라웠고,

경산공원, 중산공원 등 도심 한복판에 드넓은 공원이 많은 점도 특징이었다.

그 중 가장 매력적인 공원이 '천단공원'이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 해서 보러 갔는데,

북경 여행 중 내게 가장 중국적인 느낌을 전해준 장소가 되었다. 

 

천단공원을 보는 날은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

날이 뜨거워지기 전에 산책을 하고 싶어서였다. 

시간을 아끼려고 화장도 생략하고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호텔을 나섰다.

공원은 가까웠다. 호텔이 있는 자금성 인근에서 버스로 몇 정거장 되는 위치였다.

아직 더위가 시작되지 않아 산뜻한 기분으로 숲을 산책했다.

다른 공원과 마찬가지로 대규모의 평지 위에 숲이 조성되어 있어서

산책하기에 딱 좋았다. 날이 밝아 이미 공원에는 많은 주민들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공원을 한 바퀴 다 걸으려면 한 시간 넘게 걸릴 것 같았다.

공원 입구 쪽 숲을 통과해서 반대편 입구에 이르렀을 때

나는 뜻밖의 풍경과 마주치게 되었다.

북경 시민들이 대리석 바닥에 물로 붓글씨를 쓰는 신비로운 광경이었다.  

 

할아버지 몇 분이 빗자루처럼 생긴 붓을 들고 서예를 하고 있었다.

노년층에게만 유행하는 취미는 아닌 듯했다.

어린 여학생 한 명도 글씨를 쓰고 있었다. 서체는 다 달랐다.

정자체도 있고 흘림체도 있었는데 다 멋졌다.

다 쓴 글씨는 조금 지나면 말라 사라졌고,

사람들은 글씨가 마르는 것을 지켜보다가 다시 글씨를 썼다.

마치 티벳 승려들이 모래로 만다라를 그리고 그림이 완성되면

모래를 흩어버리는 것처럼, 쓰여진 붓글씨는 금방 금방 말라서 사라졌다.

좁은 책상을 벗어나 숲속에서 아침 공기를 마시며

대리석 바닥에 글씨를 쓰는 사람들.

디지털 시대에 만나는 아날로그의 풍경이 마음에 정겹게 녹아들었다.

북경의 노인들은 한국보다 더 여유가 있어 보였다.

바쁘지도 않고 표정도 밝았다.

우리처럼 무한경쟁 사회가 아니어서 그럴까, 그건 잘은 모르겠다. 

 

그 모습에 한동안 홀려 있다가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인

환구단(원구단)을 보기 위해 천단공원 북문 쪽으로 갔다.

동양은 농업국이어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 나라마다 있다.

우리에게 사직단이 있듯이.

황제가 제사를 지낸 환구단은 중국의 신전인 셈이었다.

환구단과 몇몇 부속 건물을 지나니 높은 계단 위에 세워진 '기념전'이 나왔다.

3층 목조건물인 기념전은 북경 여행가이드책 표지 화면을 장식할 만큼

북경을 상징하는 장소이다.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아름다워서 놀랐다.

규모도 크지만 푸른 색 단청이 화려하면서도 고상한 멋이 있었다. 

제사를 지낸 곳답게 명상적인 분위기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기념전 앞에는 그늘에 걸터앉아 쉬어가는 관광객이 많았다. 

다른 곳보다 높아서 주위가 조망되는 점도 좋았다. 

 

농경 사회에서 한 해 농사의 풍요보다 더 중한 일이 있을까.

북경의 환구단은 한 시대뿐 아니라 중국의 수천 년 역사를 대변한다. 

내게 '북경의 아침'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그날 아침에 본 천단공원과 환구단이다. 

 

20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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