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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철학, 심리94

<사랑에 관한 연구>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사랑에 관한 노래나 드라마는 많지만 그것을 인문학적 사유의 대상으로 삼은 책은 그리 많지 않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에리히 프롬의 일 것이다. 프롬은 이 책에서 사랑이 대상만 주어지면 누구나 쉽게 빠져들 수 있는 감정이 아님을 강조하고 사랑을 의지와 능력의 문제로 접근하면서 인간에게 있어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묻고 있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의 이 책은 사랑을 드물고 귀한 현상이라고 간주하는 점에서는 프롬과 같은 지점에 있지만, 다른 여타의 인간 활동과 구분되는 사랑이라는 현상 그 자체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는 점에서 프롬이 놓치고 있는 부분들을 잘 조명해준다. 그는 '사랑'을 우리가 흔히 쓰는 일반적인 용법의 '사랑들'과 구분함은 물론, 사랑을 사랑으로부.. 2013. 10. 23.
<내 안에 접힌 날개> - 리처드 로어, 안드레아스 에베르트 에니어그램에 관한 책은 대학 시절에도 본 적이 있는데 당시엔 별로 와닿지 않았다. 내게 딱 맞는 항목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사람을 유형별로 구분하는 것이 그리 설득력 있어 보이지 않았고, 그것이 인간 이해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 또한 들지 않았다. 오랜만에 들른 바오로딸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에 눈길이 갔다. 서문을 읽는데 저자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에니어그램은 중년 이후의 과제라는 것이다. 인생의 전반기 30년 정도는 세상으로 뻗어나가면서 '경험적 자아'를 발달시키는 시기이기에 내적 작업이 어렵다는 것이다. 그 시기는 타고난 본성을 발현하면서 자아를 형성하는 시기이지, 그 형성된 성격 구조의 빛과 그림자를 통찰할 수 있는 시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에니어그램은 우리 인격을 지배하는 힘을 9가지 유형.. 2013. 10. 20.
<게으름에 대한 찬양> - 버트런드 러셀 (발췌) 과거에는 여가를 즐기는 계층은 소수였고 일하는 계층은 다수였다. 유한 계층이 누리는 편의는 사회 정의란 측면에서 볼 때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그 결과 유한 계층은 압제적으로 되어갔고 자기들만의 공감대 내로 좁혀지고, 특권을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들을 만들어내야 했다. 이같은 점들도 이 계층의 우수성을 상당히 위축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장애에도 불구하고 이 계층은 이른바 문명이란 것을 담당하는 공헌을 했다. 예술을 발전시키고 과학적 발견들을 이루었다. 책을 쓰고, 철학을 탄생시키고, 사회적 관계들을 세련시켰다. 억압받는 자들의 해방 운동조차도 흔히 위로부터 일어난 것이었다. 유한 계층이 없었더라면 인류는 결코 야만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의무를 지우지 않은 채 유한 계층.. 2013. 7. 23.
<강신주의 맨 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 강신주, 지승호 장장 600페이지에 이르는 인터뷰집. 인터뷰어는 지승호고 인터뷰이는 강신주다. 정치, 사회,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이 두 남자의 지적이고 솔직하며 매력적인 대화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각론에서는 내가 동의하지 않는 내용도 있지만, '인문 정신'의 정수를 이처럼 현장감 있고, 설득력 있는 문체로 보여주는 책은 드물 거라 생각한다. 동서양의 다양한 철학자들을 다루지만, 그 철학의 정수를 한국 사회라는 텍스트와 나란히 들여다보고 있기에 우리 시대와 우리들 각자의 삶을 인문적 관점에서 어떻게 읽을 수 있는 지에 대한 훌륭한 안목을 제공한다. "천 년 전에도 없었고 천 년 뒤에도 없을 고유 명사"로서, 한 개인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이처럼 뜨거운 한국말로 표현해낸 책을 당.. 2013. 7. 7.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 - 매튜 스튜어트 철학을 한다는 것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바로 17세기 유럽인데요. 이 책은 그 17세기를 대표하는 두 명의 철학자,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삶과 사상을 나란히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600페이지를 단숨에 읽게 될 만큼 저자는 이 두 명의 삶을 매혹적으로 대비시키면서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상반되는 삶을 통해 한 시대의 총체적인 그림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답니다. 마흔 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스피노자는 매우 일찍이 높은 수준의 자기 인식에 도달했던 철학자입니다. 아마 그가 이른 나이에 유태인 공동체에서 파문당하면서 그는 자신의 삶과 철학의 운명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당시 유럽에서 유일하게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었던 네덜란드에 정착합니다. 안경 세공 기술을 익혀 .. 2013. 6. 15.
인간과 상징 - 카를 구스타프 융 기회 되면 융 전집을 한번 읽어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이 책을 먼저 골랐다. 융이 일반 대중을 위해 쓴 단 한 권의 책이며 죽기 전 마지막으로 집필한 책이다. 융과 그의 제자들이 한 꼭지씩 맡아서 저술했다. 이윤기씨가 번역했는데 번역도 매끄럽고, 내용도 어렵지 않다. 좋은 책이다. 융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어떤 책을 읽어도 마음에 남아 있는 약간의 허전함 때문이었다. 정치/사회학은 기본적으로 개인과 사회의 역동적 관계에 주목한다. 사회가 개인을 규정하는 방식이나 반대로 개인이 사회에 영향을 주는 방식에 관한. 철학은 존재와 인식의 문제를 다루지만 논리로 사유하는 것이며 문학은 인간의 마음과 감정과 운명을 다루지만 그 지평이 시대와 역사를 넘지 않는다. 융 심리학은 논리와 과학으로는 다 보여줄 수.. 2011. 9. 2.
이반 일리히, 소박한 자율의 삶 / 박홍규 박홍규 선생의 , , 등을 인상적으로 읽었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책을 샀다. 우리 나라엔 괜찮은 2차 텍스트가 많지 않다. 앞다투어 외국 학문을 수입하지만 원전을 쉽게 풀이한 책들은 많지 않다. 자신의 전공에 진정으로 애정을 갖고 있는 학자들이 적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평전이라기보다는 일리히의 평생에 걸친 사상의 궤적을 따라가고 있는 책이다. 를 읽다가 어려워서 접었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해 그의 산업주의 비판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 대강의 윤곽을 그릴 수 있었다. 일리히는 그 뿌리가 교회의 제도화에 있다고 보았다. 소박한 예수의 가르침이 제도화된 교회로 옮겨지면서 개인의 내면을 제도가 지배하는 '타율'의 사회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가톨릭 신부였던 일리히는 교회 내 적대자들에 .. 2011. 7. 23.
천 하나의 고원 - 이정우 "철학은 사건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개별 사건들이 아니라 사건들의 더 거대한 장에 참여하는 것일 뿐이다. 철학은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때그때의 사건들이 아니라 긴 시간을 채우는 사건들에 더 포괄적으로 개입하는 것일 뿐이다. 철학적 참여는 더 넓은 눈길과 더 긴 사유를 필요로 한다. 철학적 참여/개입이 넓고 깊은 시공간을 필요로 하듯이 그것이 목표로 하는 '효과' 역시 넓고 깊은 시공간을 필요로 한다." (pp172) 들뢰즈/가타리의 의 해설서. 이진경의 이 전체 장에 대해 사회/역사/철학/예술 전반에 걸쳐 개괄적인 해석을 시도하고 있다면, 이 책은 저자가 중요하게 간주하는 몇 가지 쟁점을 보다 깊이 있게, 보다 철학적인 맥락에서 풀어간 책이다. 이 워낙 난해하고 생경한 개념들을 .. 2011. 7. 9.
행복할 권리 / 마이클 폴리 번역판 제목을 왜 라고 지었는지 모르겠다. 원제는 , 부조리의 시대 혹은 어리석은 시대쯤 될까. 이 제목이야말로 책의 내용과 딱 맞아떨어진다. 한국말 제목을 보곤 흔해빠진 자기계발서인 줄 알았다. 목차를 보고 마음에 들어 주문했다. 책의 내용은 자기계발서와 정반대다. 이 시대의 행복관이 얼마나 근거 없는 토대 위에서 형성되었고 발전해나갔는지를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가치관 - 긍정심리학, 무노력 신조, 가능성에 대한 숭배, 물질적 쾌락주의, 성장을 멈춘 어른들, 현실보다는 기대와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 책임은 방기하고 권리만 추구하는 것 등 - 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현대의 가치관에 대한 저자의 태도는 무척 시니컬한데 이는 변화 자체를 거부하는 꼰대 혹은 방관자의 냉소는 아니다.. 2011. 6. 30.
대중의 반역 / 오르테가 이 가세트 학술서를 마치 소설처럼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을 줄은 몰랐다. 흥미진진했고 저자의 통찰에 탁월한 데가 있었다. 그것에 동의하건 동의하지 않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제공하는 책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우리 시대'의 '높이'를 보여주는 책이라 할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역사상 어떤 지점에 도달해 있으며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까를 생각하게 하는 책. 저자가 우리 시대의 높이를 해명하는 방식은 19세기 이래 갑자기 이 세계에 출현한 '대중'이란 존재의 실체를 분석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분석은 대중으로 구성된 현대 사회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에까지 나아가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진지한 물음을 남긴다. 1930년 저작이라는 점이 놀랍다. 대중이란 과연 누구일까. .. 2011. 2. 24.
번뇌 속으로 세상 속으로 - 법륜 마음을 다스리고 싶어서 법륜 스님의 책을 몇 권 주문했다. 읽는 것만으로 세상살이의 번뇌가 가시지는 않겠지만, 읽을 때면 아, 내가 내 마음을 놓쳤구나,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겪는 삶의 문제들과 그 해결책을 불교적 관점에서 아주 쉽게,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했다. 이렇게 쉽게 글을 쓰면서도 그 속에 일정 깊이를 담을 수 있다는 점이 법륜 스님 글의 큰 장점이다. 개인적으로 틱낫한 스님 등의 글보다 더 호감이 간다. 팃낫한 스님의 글이 섬세하고 여성적이고 시적인 문체라면 법륜 스님의 글은 역사적 전망이 기저에 깔려 있어서 더 튼튼하고 스케일이 큰 편이다. 이 땅에서 정토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굳건한 '원'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순간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욕심으로 살아간다면 금방 자라.. 2011. 1. 6.
카를 융 : 기억 꿈 사상 - 카를 구스타프 융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카를 융이 80세가 넘었을 때 자기 일생을 한 마디로 규정한 말이다. 대학자다운 발언이면서, 고귀한 목적에 바쳐진 그의 생애의 깊이를 한 마디로 설명해주는 말이다. 멋있다 아니 할 수 없다. 여행 중에 융 심리학을 전공한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꿈을 꾸준히 기록할 것을 권하면서 그렇게 하면 자신의 에너지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무의식 속에 엄청난 에너지가 있다고, 그 겹겹의 층 아래에 있는 '자기'의 소리가 바로 신의 소리라고 했다. 심리학엔 큰 관심이 없었는데 그 말을 듣고 인간의 정신이 신비롭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껏 나는 심리학보다는 사회학에 좀더 관심을 가진 편이고 그러면서도 사회과학도는 결코 못 되고, 문.. 2010. 2. 9.
당신의 그림자가 울고 있다 - 로버트 존슨 조직 문화는 어떤 경우든지 개성을 파괴하는 측면이 있다. 그래서일까, 융은 인간이 자신의 영혼을 잃게 되는 나이가 35세라고 했다. '사회화'가 어느 정도 완료되는 시점이다. 사회화는 어느 정도 필요한 면이 있으나, 이 과정에서 사회가 수용하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이 그림자가 된다. 그리고 그 그림자가 삶의 어느 순간, 위기나 그밖의 특정한 순간에 행동으로 옮겨진다. 우리 자신의 능력을 한쪽 방향으로만 발달시킨 결과는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의미 상실, 중년의 위기, 혹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왜 사생활에서 그렇게 많은 어려움을 겪는지 등이다. 뛰어난 이들의 그림자는 대개 그들의 아내나, 자녀, 가족, 가까운 이들에게 투사되고, 주변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 이 관점은 .. 2009. 12. 24.
스피노자의 철학 - 질 들뢰즈 에덴 동산의 아담은 행복했을까?  스피노자라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는 환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의식이 제 1원인이라고 착각하고, 그러한 자신의 의식으로 자유 의지를 행사한다고 믿으며(아이는 자유 의지에 따라 우유를 욕구하고 겁 많은 사람은 도망가기를 욕구한다고 생각하고), 그 자유 의지의 결과에 따라 영예 혹은 처벌을 받는 세계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의식의 환상을 거부했다. 그에게 의식의 원인은 욕망이다. 욕망은 우리의 신체/정신이 자신 속에 계속 머무르려는 노력(즉 코나투스)이며, 이는 우리의 신체/정신이 다른 대상들과 만나서 생기는 감응(변용)에 의해 결정된다. 즉 의식은 신체와 사유의 결과이다. 신체와 사유 속에서 변용되는 욕망은 일종의 운동이며 기쁨과 슬픔.. 2009. 8. 3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노라 - 마이다 슈이치 "한 인간의 정신계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는 그가 선생을 만나느냐 만나지 못하느냐, 바로 그것이다. 그가 과연 진짜 사람을 만나느냐, 진짜 인격을 만나느냐, 그것이 요점이다." (pp10) 이현주 목사가 번역한 이 얇작한 책은, 저자인 마이다 슈이치가 자신의 스승 아케가라수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그래서 책 제목이 여시아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노라'이다. 딱히 특별한 내용이 없는 이 책이 특별한 빛을 발하는 까닭은, 저자가 참된 스승과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배움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참된 선생이 없다면 불교를 배우지 않는 게 더 좋을 것이다."(pp11) 그에게 불교는 추상적 개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한 인간을 만나는 것이었다. 저자는 열여덟살에 아케가라수를 만난.. 2009. 7.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