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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교실 이야기77

2020년 5월 15일 등교 못한 지 벌써 세 달이 되어간다. 동영상 준비하며 벽 보고 일하는 것 같아 힘들 때가 있었는데 나만 답답한 게 아니었구나. 아직 만나지도 못한 아이가 보내준 인사말에 문득 마음이 찡해지는 스승의 날.. 2020. 5. 15.
온라인과 오프라인 온라인개학을 앞두고 각종 공문은 마구 내려오고, 플랫폼을 이리저리 옮기고, 이랬다 저랬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막상 개학 후가 되니 우리 학교 시스템이 이 주변에서는 제일 양반이라는 걸 알았다. 다른 학교에 계신 쌤들한테서 전화를 받아보고, 와, 어떻게 저럴까 싶은 게 하나둘이 아니다. 내가 이 학교에 있었으니 망정이지, 다른 학교였으면 정말 미쳐버렸을 듯. 우리 학교는 온라인시간표를 따로 짜서 운영한다. 한 학년이 시간표가 같기 때문에 오늘 학생들이 어느 과목을 덜했는지 교과 담당 교사가 한 번에 파악하기 쉽다. 그리고 수업은 4일로 편성하고 나머지 하루는 학생들의 수강 상태를 점검하는 날로 잡았다. 목요일에 개학했기 때문에 수요일이 점검날이고, 그래소 화요일 오후부터 수요일까지가 열심히 전화.. 2020. 4. 28.
줌미팅을 이용한 학급조회 개학이 1주 연기되었다가 다시 2주 더 연기되었을 때는 그래도 3주 후면 학교에 가겠거니 했다. 그래서 3주 후에 개학해서 열심히 하면 되지 싶어서 과제도 아주 조금만 냈는데,,,, 3주가 다 지나도 개학 못할 조짐이 보여서 부랴부랴 급하게 이것저것 준비했다. 학생/학부모에게 연락해서 줌을 깔라고 하고, 며칠 뒤 줌미팅을 통한 화상 조회 시작. 첫날엔 난리도 아니었다. 19명 접속했는데, 5명이 소리가 안 들리고, 1명은 비디오가 안 나오고.... 안 되는 학생 한 명 한 명 다 전화해서, 줌 설정 새로 해서, 문제 해결. 9시 출근이라 9시 30분에 줌미팅. 우리 반 29명 중 20-22명 정도 매일 참석, 제일 많이 들어온 날은 25명. 처음엔 정말 어색했고, 여학생 몇은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기도 했.. 2020. 4. 21.
옛 제자의 뭉클한 편지 초임 시절의 나는 화를 잘 내는 교사였다. 열정은 하늘을 찔렀지만 사람의 마음을 헤아릴 줄 몰랐다. 아이들이 당연히 내 가르침을 따라와야 한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아마 내가 알게 모르게 상처를 준 아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그 때는 그 젊음 때문에 오만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젊음에서 비롯된 매력 때문에 아이들이 화를 잘 내는 교사를 받아들여주었다는 것을 나이가 든 후에 알게 되었다. 내가 교실에서 더 이상 화를 내지 않게 된 것은 D공고를 떠나면서부터였다. 그곳에서 보낸 3년의 시간이 다 지나갈 무렵에야 나는 깨달았다. 화가 문제 해결에 일절 도움이 안 되며, 그저 내 감정을 자제하지 못한 인격적 미성숙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래서 누가 내 인생의 진정한 스승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아이들이라고 대.. 2020. 3. 6.
2019 학생 만족도 교사들 사이에 학생만족도 조사의 무기명 의견란을 없애자는 의견이 많다. 합법적으로 악플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장려하기 때문이다. 이유 없이 공격받는 교사들이 많아서 나도 이건 없애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 작년에 좋은 학생들을 만나서 그 아이들의 한 마디가 연말에 힘이 되었다. 그러니 악플은 한 해 고생한 교사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까. 아프리카 체류 후 작년 가을에 복직해서 몇 달 수업했는데 재미있다는 의견이 많아 다행이다 싶다. 내가 사실 재밌는 사람은 아니고 진지한 쪽에 가까운데, 중학교 수업을 하면서는 재량권을 발휘해서 내가 좋아하거나 깊은 의미를 느낀 텍스트만 다뤄서 그런 것도 같다. 내가 재미 없는 건 필수 문법을 제외하고는 가르치지 않는다. 동일 수준의 학습을 할 수 있는 다른 글로.. 2020. 2. 29.
사회복무요원 선생님 사회복무요원 김성민(가명) 선생님과는 평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잘 없었다. 서로 바쁘다보니 휠체어를 타는 우리 반 정훈(가명)이가 동아리 등으로 외부 체험학습을 갈 때 서로 전달사항을 주고받는 것 정도였다. 얼마 전 가산 수피아로 1학년 전체가 진로체험학습을 간 날, 이 분과 점심을 먹을 기회가 생겼다. 오전에 쿠킹, 댄스, VR체험 등 위탁체험학습을 마치고 학생들은 도시락을 먹게 되어 있어서 그 시간 지도를 위해 교사들이 먼저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 먹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하루종일 붙어서 생활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든 쉬운 일은 아니다. 정훈이 성격도 약간 까다로운 편이라 어려움이 없냐니까 이 학교는 소위 말하는 '꿀보직'이라 하신다. 정훈이는 휠체어를 타는 것 말고는 모든 걸 스스로 할 수 있는 학생이.. 2019. 10. 20.
낙동강 수련활동, 우리 땅의 가을이 주는 감촉 우리 반 정훈이(가명)는 다리를 쓰지 못한다. 그래서 늘 휠체어를 타고 생활한다. 정훈이의 학교생활을 돕는 사회복무요원 선생님과 함께. 이 분이 교문에서 정훈이를 인계받아 하교할 때까지 돕는다. 점심시간에 식사를 날라주고 같이 식사하고 수업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함께 한다. 대학생이다보니 아이들이 형처럼 잘 따라서 학급에 같이 있어도 어색함이 없다. 문제는 수련활동이었다. 대구시내 중1들은 모두 야영이나 수련활동에 참여해야 한다. 텐트 치고 밥 해먹는 야영은 1박2일이지만 수련원 시설에 입소하는 수련활동은 선착순에 밀리면 2박3일이다. 우리 학교는 다행히 수련활동 1박2일에 당첨. 정훈이는 수련활동 참가를 희망했는데 학교에선 정훈이가 잘 때 사회복무요원 선생님과 둘이서 방을 쓰기를 원했다. 화장실 가.. 2019. 10. 13.
보육과 교육 사이 수민이는 전학생이었다. 수민이가 학기 초에 전학 왔을 때 J중학교 3학년 담임들은 모두 긴장했다. 수민이가 직전 학교에서 사고를 쳐서 전학을 왔기 때문이다. 중학교는 의무교육이라 퇴학이 없기 때문에 심한 말썽이 생기면 다른 학교로 전학을 보낸다. 그러다보니 이 학교 저 학교 전전하는 학생도 가끔 있다. 폭탄 돌리기도 아니고, 적절한 해결방식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큰 사건은 언제나 해당 학생의 전학으로 종결된다. 수민이가 우리 반이 아닌 1반에 배정되자 나는 속으로 살짝 안심을 했다. 담임을 맡아보면 그렇다. 평범한 다수의 아이들에게는 일 년 내내 잔소리 할 일이 별로 없다. 말썽쟁이 한두 명이 날이면 날마다 교무실을 시끄럽게 한다. 말썽쟁이가 한 반에 네다섯쯤 포진하면 .. 2019. 5. 7.
나는 누구인가 점심시간이었다. 도서실을 감독하러 갔다가 떠드는 녀석 몇이 있어 주의를 주었다. 2학년의 대표적 말썽쟁이들이었다. 남학생들이 무슨 이야기를 그리 진지하게 하는지 궁금해서 화제를 물어보았다. 게임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내가 ‘롤?“ 하자 아이들이 ”어머, 선생님 아시네요” 하며 반가운 척을 한다. 그리고 한 녀석이 이렇게 덧붙인다. “근데 선생님, 그거 아세요? 롤 등수랑 전교 석차랑 정확히 반대라는 걸요.” “그게 무슨 뜻이야?” “여기 모인 애들이 전부 롤 전교 랭킹권에 드는 애들이에요. 동현이가 롤 1등이고요, 상현이가 2등이고, 얘가 4등이나 5등쯤 할 거예요. 음하하.” “게임도 좀 감각이 있어야 잘 하는 거 아냐?” “꼭 그렇진 않아요. 시간 투자를 많이 하는 사람이 결국 잘 하게 되어 있어요.. 2018. 11. 26.
중2의 학급 적응기 J중학교는 도심 속 작은 학교였다. 해방 정국에 개교하여 한 때는 한 학년 열 다섯 학급인 시절도 있었으나 도심 인구가 줄어들면서 전교생 수가 급감하여 전교생이 230 여명 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가 되었다. 한 학급의 인원은 겨우 스물 둘이었다. 한 반에 마흔 명 이상인 시절에 비하면 스무 명 쯤은 거저일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행평가 등의 채점은 학생 수가 적으니 좀 수월하지만, 소소하게 말썽 부리는 학생 수는 예전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한 반에서 절반 가량의 학생이 지속적인 관심과 훈육을 필요로 하므로 품이 훨씬 많이 드는 것이 요즘 아이들이다. 2학년 A반도 그랬다. 3월 2일, 담임을 맡은 2학년 A반과 처음 만났을 때 생각했다. '올해 체육대회는 가망 없겠구나' 하고. A반 아이.. 2018. 1. 5.
상혁이의 홀로서기 3월, 새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다. 한 학생이 이유 없이 결석을 했다. 아직 새로 맡은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도 눈에 익지 않은 때라 '대체 무슨 일이지?' 했다. 옆 반의 정선생이 결석한 학생의 이름을 듣더니, "아, 그 녀석이군요" 한다. 박상혁. 작년에 전학을 왔는데 전학 오기 전 1학년과 전학 온 이후인 2학년 때도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무단결석이 수십 일이 넘었다고 했다. 올 한 해 힘들겠구나 싶어 벌써부터 가슴이 답답해왔다. 상혁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상혁이 어머니와 통화가 되었다. 학생과 연락이 안 될 때 학부모까지 연락이 닿지 않는 경우가 제일 답답한데 연락이 닿아 다행이었다. 나는 상혁이 어머니께 학생, 학부모 상담을 다 요청했다. 상혁이 어머니는 상혁이와 따로.. 2017. 6. 25.
자유를 찾아 떠난 새 다솔이가 학교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깜짝 놀랐다. 학교 생활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하던 성실하고 발랄한 모범생이 자퇴라니! 다솔이는 K고 2학년 문과반 학생이었다. 당시 나는 1학년 수업을 맡았기에 다솔이를 알지 못했다. 다솔이를 처음 알게 된 건 그 해 5월 교내 시낭송대회에서였다. 다솔이는 다른 고2 여학생 네 명과 한 팀을 이루어 시를 연극으로 발표했다. 다솔이는 할머니 역할을 맡았는데, 어찌나 구수한 연기를 펼치는지 깜짝 놀랐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세상에 대한 청소년의 신선한 시각과 배꼽 잡는 유머가 깃들어 있었다. 이렇게 맑고 고운 감성의 소유자가 있을까 싶을 만큼 눈빛, 목소리, 표정, 걸음걸이까지 모든 것이 너무나 어여쁜 소녀였다. 다솔이를 다시 만난 것은 10월, '저자와의 만남' .. 2017. 6. 3.
앰뷸런스 소동 여름이 가까워올 무렵, 갑자기 학교에 ‘학업중단숙려제’ 예산이 백만 원 좀 넘게 내려왔다. 고등학생들의 자퇴가 많으니 이를 방지하게 위해 부적응 학생들을 위한 학교 적응 프로그램을 운영하라는 예산이었다. 당시 내 업무는 학교도서관 운영이었지만, 이전에 몇 차례 여행 프로그램 등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고 교감의 부탁도 있고 해서 내가 맡게 되었다. 부산 감천마을까지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고, 도시를 벗어나 한적한 자연에서 뒹굴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느 쪽이 나을까 곰곰 생각하다가 D고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걸었던 지리산 둘레길은 한번 가본 경험이 있어서 프로그램 진행이 수월할 것 같았다. 몇 개의 여행 후보지를 두고 고민하다가 나는 최종적으로 지리산 둘레길 3구간으로 결정했다. .. 2017. 5. 28.
뜻밖의 선물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교사상은 이렇다. 십년 만에 졸업생을 만나도 뛰어난 기억력을 자랑하며 '누구야' 하고 우아하고 멋지게 이름을 불러주는 것. 그러나 이것은 희망사항일 뿐, 현실의 나는 언제나 조금쯤 버벅거리며 '이름이 뭐였지?' 하고 되묻게 된다. 수업할 당시엔 알았지만 몇 년 지나고 나면 서로 엇비슷한 이름들이 내 기억 속에서 비빔밥처럼 한데 섞여서 우리 반이 아니고서는 그 중에서 정확한 이름을 골라내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 한 번은 수성못 근처의 까페에 갔을 때다. 친구와 별 생각 없이 테이블에 앉았는데 서빙을 하던 청년이 '김비아 선생님이시죠?' 하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우리 반이 아니어서 이름은 가물가물했지만, 훤칠한 이십대 청년의 얼굴 속에서 중학생 소년의 앳된 흔적을 발견하는 데는 그리.. 2017. 5. 20.
모나미 볼펜 D공고에 근무하는 동안 모나미 볼펜을 많이 샀다. 모나미 볼펜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친숙한, 천 원에 한 세트를 주는 값싼 볼펜이다. 수업을 하려면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책과 공책, 필기구는 가져와야 하는데 그것이 아무리 말해도 지켜지지 않았다. 나는 모나미 검정색 볼펜을 한아름 사 두고 수업 시간에 펜이 없는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가 거두기를 반복했다. 나눠준 개수 만큼 볼펜이 다 걷히지는 않아서 나는 스무 자루쯤 분실하면 그만큼 다시 사기를 반복했다. 볼펜 개수를 일일이 헤아리면서 아이들과 신경전을 벌이느니 그냥 사는 게 나았다. 7개 반을 맡았는데 그 많은 반을 일일이 필통 검사하고 잔소리를 하며 수업을 시작하는 것은 힘에 부쳤다. 우리 반 한 반이라도 전원 필통을 소지하게 해보려고 했는데, 1학기에는.. 2017.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