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교실 이야기77 폭풍 사이로 햇살 한 줌 2학기, 울 학교가 개판이다. 각종 민원으로.. 온갖 민원으로 몸살을 앓고 있어서 학생부장 살이 쏙쏙 빠지고 있음. 하나하나 열거하자면 끝이 없어 걍 생략한다. 대부분 민원은 큰 일이 아니라 학생간 작은 다툼이 해결이 안 되어 교육청까지 올라가는 게 태반. 폭풍 전야 같은 구름이 왔다갔다 하는 중에 잠깐 햇살이 비치는 순간들이 있다. 책 빌려주어 감사하다는 쪽지를 남기고 간 남학생. 마들렌을 구워서 친구들과 선생님들에게 선물한 남학생. 빼빼로데이에 학급 친구 전원에게 손수 만든 과자를 선물한 여학생 등등... 잠깐의 햇살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2022. 11. 22. 바나나빵 5~6교시 주제선택 시간에 7반 주* 양이 선생님 준다고 하나 더 만들어준 바나나빵. 저녁 식사 후 후식으로 한입 먹는데 입안에 달콤함이 가득~~ 꽃처럼 어여쁜 여학생들 얼굴도 함께 스쳐간다. 2022. 9. 13. 칠판 가득 개학 인사 7반 학생들이 흥이 많다. 그만큼 시끄러워져서 힘은 좀 들지만. 열네 살 짜리들의 귀여운 아부~ 2022. 8. 19. 여자 반장의 위엄 나보다 낫다 ㅋㅋ 2022. 8. 16. 삼각김밥과 자존감 학생문화센터에 학년 전체가 체험학습을 간 날, 아이들은 도시락을 준비해와야 했다. 점심시간에 펼치니 각양각색 개성 넘치는 도시락들이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부모님들의 사랑이 물씬 느껴지는 도시락이었다. 옆반의 한 친구는 삼각김밥을 싸왔다. 학교에서 자해 소동을 두세 번 벌인 적 있는 유명한 분이다. 수업시간마다 자기는 오래 안 살 거라는 둥, 곧 죽을 거라는 둥 넘 심한 말을 반복해서 아예 발언권을 잘 주지 않는다. 혼자 삼각김밥 먹는 게 남들 보기에 창피했던지 담임쌤 말로는 혼자 주빗주빗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가더란다. 점심은 거른 채. 우리 반의 J도 삼각김밥을 싸왔다. 하지만 공부도 꽤 잘하는 편이고 가족관계도 좋은 J는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서 먹고는 오히려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다른 애들 김밥, 반.. 2022. 7. 3. 소금사탕 소설 수업 중 주인공 문기처럼 집에 남몰래 숨겨놓은 물건이 있냐니까 우리반 모씨, 언니가 먹을까봐 소금사탕 숨겨두셨다고. 소금사탕이 뭐냐니까 소금맛 나는 일본 사탕이 있다고. 다들 넘 궁금해해서 다같이 소금사탕을 맛보기로 했다. ㅋㅋㅋ 오늘 드디어 택배 도착. 내일 1교시에 풀기로 ㅎㅎㅎ 2022. 6. 23. 교실 안의 다양성 한 분은 무술 발차기 연습하다가 청소용구함 발로 차서 문짝을 깨시고 (거리도 못 재는 넘이 뭔 무술이냐고 한 소리) 또 한 분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쉬는 시간에 심심하다고 청소용구함을 싹 정리해놓으셨다. 둘 다 남학생. 심심해서 문짝 깨신 분과 심심해서 정리하신 분. 이래서 세상이 돌아간다 ㅎㅎ 2022. 6. 10. 연극, 시간을 파는 상점 “오늘의 평범한 시간이 내일의 특별한 시간이 된다.” 동아리 전일제 체험학습으로 동성로 여우별아트홀에서 본 서울 공연중인데 울 학생들 위해 하루 내려온 팀. 4명 배우들의 1인 다역과 고등학생 연기가 공감과 매력을 선물. 마치고 스벅 쿠폰으로 늦은 점심. 자라 쇼핑 후 집에 오니 한 것도 별로 없는데 넘 피곤하다. 벌써 체력이 다 되면 안 되는데 5월 들어서 계속 비실비실.. 나이 탓인가. 학교 근무가 체력적으로 넘 힘들 때가 많다. 2022. 5. 17. 세종대왕 생신날 아침에 카톡이 주르르 왔길래 열어보니 울반 아이들 릴레이 인사. 반장이 시작하니 줄줄.. 나도 얼른 답장. 뒤늦게 반톡 본 아이들로부터 오후에 드문드문 개별톡. 저녁에야 사태 파악한 녀석들 톡. “사랑합니다”를 한 사람으로부터 들을 때와 여러 사람으로부터 종일 들을 때 느낌이 다르다. 숙연해진다… 실은 담임이 항상 넘넘 적성에 안 맞아서 내년엔 어떻게든 안 해보려고 뭔 부장을 해야 하나, 잔머리 굴리고 있었는데.. 말 한마디의 힘. 따스한 하루. 2022. 5. 15. 광기의 현장 올해 반 뽑기를 잘했다. 심각한 학습결손 학생 없고 남학생들이 성품이 모두 점잖으시다. 산만하거나 튀는 분들 없고 여학생들도 분위기를 휘어잡는 분 없고 반장, 부반장 의젓, 다들 무난하고 수수하다. 그래서 남녀 다 친하다. 하지 말라고 딱 한 마디 하면 다들 지킨다. 3월부터 한 번도 소리친 적도 화낸 적 없다. 이러기가 정말정말 어렵다. 그래서 10년에 한 번 걸릴까 말까 한 조합. (재작년엔 폭탄 조합이라 사표 쓸 뻔) 3월초에 칠판 낙서 금지라고 한 마디 했는데 다들 너무 잘 지켜서 중간고사 끝나면 하루 날 잡아 점심시간에 맘껏 낙서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날이 오늘. 소소하게 몇이서 그림 그리겠지 하며 교실 갔다가 애들 보고 뒤집어짐. 낙서가 아니고 광란의 장. 칠판 전체를 다들 미친 듯이 칠하.. 2022. 5. 4. 또 한 번의 스승의 날을 지나며 이십 여년 담임 생활 중 학생들과 잘 안 맞는 해도 꽤 있었다. 작년도 그런 해 중 하나였다. 와, 진짜 선생 못하겠다 싶은 마음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었다. 돌이켜보면 2004년, 2010년, 2015년, 2020년이 내겐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해였다. 저 네 번 중에 세 번은 담임 일만 고되었는데, 2015년은 총체적 난국, 교장하고도 맨날 싸우고(라고 썼지만 대개 내가 괴롭힘을 당하고) 동료와도 손발이 안 맞고. 그때는 정말 사표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물론 나는 생계형 교사라 절대 그만두지는 못한다. 아무튼 최근에는 2019년에 참 좋은 학생들을 만났고 2020년이 최악이었다. 우리 반에 말썽꾼 남학생 세 분이 포진해 계셨는데, 이 세 분이 시시덕거리며 힘을 합쳐 늘상 규칙을 위반하니.. 2021. 5. 20. '한 학기 한 권 읽기' 밴드 라이브 재현(가명)이는 모든 면에서 느린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 다루는 내용을 거의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교사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책도 파일도 꺼내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기 일쑤였다.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물어도 대답을 듣기가 어려웠다. 담임교사에게 듣기로 어릴 때 큰 병을 앓아서 살아난 것만도 다행이라 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지극정성으로 챙긴다 했다. 그래서 과제는 몇 번 이야기하면 늦어도 해오는 편이었다. 그리고 말썽 피우지 않는 착한 아이였다. 그랬던 재현이가 이번 주에 열리는 국어 밴드라이브에 빠짐없이 참석해서 놀랐다. 우리 학교 중1은 이번 주에 등교하지 않는다. 원래는 홀수, 짝수 번갈아 등교했는데, 대구교육청에서 갑자기 3학년 매일 등교, 다른 학년도 학년별 전체 등교를 하라 해서 1학년.. 2020. 9. 17. 무모했던 시절이 그립네 S대에서 교육학 강의 맡은 친구가 현장교사 특강이 하나 필요하다고 일전에 말해서 종일 비대면 영상 자료를 준비했다. 대학 강의는 박사과정 마쳤을 때 잠깐 하고 끝이었는데, 올해 코로나 정국에 이상하게도 요청이 연달아 와서 비대면 촬영을 또 하게 생겼다. 이번엔 그간 교직 경험에 대한 전반적인 스토리가 들어가면 좋겠다 해서 옛날 자료를 뒤적이다 재밌는 걸 발견했다. 수업일기를 찍어놓은 것 몇 컷에서 이젠 까마득하게 지워진 젊은 날의 나를 본다. 그때는 수업 시간에 노래를 다 했구나. 지금 내가 이러면 학생들이 미쳤다 할 텐데, 젊을 때는 뭐든 용서가 된다. 그 시절의 용기랄까 무모함이랄까 그런 게 문득 그립다. 그리고 또 하나, 시 쓰기 시간에 선생님을 소재로 시를 쓴 학생들의 기록. 서른 넷까지만 해도 .. 2020. 9. 12. 곤충박사 이도현 개학 첫날, 안 그래도 정신 없는데 동료 한 분이 아파서 결근. 보강까지 있어서 6시간 수업을 한 날이다. 보강하러 들어간 3학년 교실에서 특별한 친구를 만났다. 한 친구가 맨 앞자리에서 뭔가를 하고 있길래 숙제인가 싶어 보니 웬 지도 같은 것 위에 곤충 이름이 한가득이다. 물어보니,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라고, 학교에 서식하는 곤충, 동물을 다 조사한다 했다. 100가지 찾는 걸 목표로 조사 중인데 아직 덜 되었다고. 살펴보니 공벌레 같은 걸 제외하면 내가 모르는 이름 투성이다. 순간 답답하던 마음이 환해졌다. 공부 좀 하는 학교에서는 중3만 되어도 다들 영수에 올인하는데 자기 고유의 지적 탐구심과 흥미를 가진 아이가 아직 멸종되지 않아서다. 이런 체제에서도 자기만의 호기심이 여태 살아남았다는 것에 감.. 2020. 8. 18. 방학날 편지를 주고 간 아이 학급당 인원이 많아 절반씩 등교하는 우리 학교는 오늘이 짝수번호 방학, 내일이 홀수번호 방학이다. 애들을 다 보내는데 한 아이가 남아서 선물이라면서 코팅한 작은 편지를 주고 갔다. 중1이라 아직 초딩 분위기가 있는 동심이 배어있는 인삿말을 보니 마음이 따스해진다. 어른들도 다들 이런 때가 있었을텐데 우리는 왜 이리 각박해졌을까. 왜 자주 무상한 감정에 빠져들까. 2020. 7. 30.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