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가명)이는 모든 면에서 느린 아이였다. 수업 시간에 다루는 내용을 거의 따라오지 못하는 것 같았다. 교사가 이야기하지 않으면 책도 파일도 꺼내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기 일쑤였다.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물어도 대답을 듣기가 어려웠다. 담임교사에게 듣기로 어릴 때 큰 병을 앓아서 살아난 것만도 다행이라 했다. 그리고 부모님이 지극정성으로 챙긴다 했다. 그래서 과제는 몇 번 이야기하면 늦어도 해오는 편이었다. 그리고 말썽 피우지 않는 착한 아이였다.
그랬던 재현이가 이번 주에 열리는 국어 밴드라이브에 빠짐없이 참석해서 놀랐다. 우리 학교 중1은 이번 주에 등교하지 않는다. 원래는 홀수, 짝수 번갈아 등교했는데, 대구교육청에서 갑자기 3학년 매일 등교, 다른 학년도 학년별 전체 등교를 하라 해서 1학년과 2학년이 번갈아 등교하게 되었다. 이번 주에 학교 안 오는 중1이 집에서 해야 하는 과제는 '한 학기 한 권 읽기'다. 책은 지난 주에 학생들이 각자 구입했고, 이번 주에는 그것을 완독하고 독서기록장을 써오면 된다.
학생들이 집에서 책을 제대로 안 읽을까봐 동학년 쌤과 의논해서 이번 주에 밴드로 라이브 방송을 해보기로 했다. 수업을 하는 것은 아니고, 교사가 책을 읽는 모습을 방송으로 송출하는 거였다. 그 시간에 학생들도 밴드를 켜고 학교라고 생각하고 자기 집에서 30분 동안 독서를 하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는 유투브의 송승훈 선생님에게서 얻었다(youtu.be/TxxjLlWTbWM) 내가 줌 대신 밴드를 택한 이유는 학생들에게 따로 방송 링크를 보내지 않아도 되고, 또 줌처럼 학생들의 집이 공개되지 않아서 마음의 부담이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밴드는 아이들이 채팅을 통해 라이브방송에 참여하게 된다.
월요일부터 매일 아침 9시 반에 하고 있는데(의무는 아니고 자율 참여이다), 내 의도와는 달리 농땡이들이 들어오시지 않고, 공부에 열의가 있는 친구들이 꼬박꼬박 들어오고 있다. 그 중에 단 한 명 예외가 바로 재현이다. 재현이는 학교에서 뭘 물어도, 자기가 친구들보다 못한다고 생각하는지 절대 대답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 밴드라이브에서는 내게 자주 톡을 보낸다. 방송이 렉 걸린 것처럼 끊어졌다고도 하고, 자신이 책을 잘 읽고 있다고도 하고. 문자를 보면 문장이 정확하고 전혀 문제 없는 친구인데, 다만 모든 학습이 느리기 때문에 학교에서 자신감을 잃은 모양이다. 재현이 같은 학생은 학교에서 말을 안 하기 때문에 교과 담담 교사와 교류하기가 어렵다. 코로나 시국에 이렇게 서로 말문을 트게 되어서 나도 마음이 편했다. 담임교사에게 들으니 컴퓨터는 꽤 익숙하단다.
재현이가 오늘 보내온 톡을 보니 30분에 대여섯 쪽의 책을 읽는 것 같다. 또래 다른 친구들이 몇 십 쪽씩 금방 읽는데 비하면 아주 많이 느리다. 그래도 이렇게 참여하는 것이 얼마나 기특한지. 밴드 라이브방송을 하며 재현이를 새롭게 알게 된 하루였다. 코로나 속에 달라진 학교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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