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을 집으로 보내고 난 오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교실에서 조용히 일하고 있는데(그나마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공간), 갑자기 교장실에서 호출이 왔다. 국어 담당교사 좀 내려오라고. 2학년 중간고사 시험 실시 때문에 그런다고. 1학년은 시험을 안 치지만, 마침 2학년 국어 담당교사가 모두 육아시간을 써서 일찍 퇴근하고 없으니 대신 잠깐 참석하라는 거였다.
내가 내려갔을 땐 이미 회의가 거의 마무리된 분위기였다. 우리 학교 2학년은 중간고사를 안 치기로 이미 결정이 나 있었는데, 오늘 갑자기 번복이 되었다. 나는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아니, 학생들이 지금 학교도 꼬박꼬박 못 나와서 배운 것도 없는데 무슨 중간고사냐고, 이 시험이 학생들의 배움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고, 게다가 국어는 글쓰기 등으로 얼마든지 평가가 가능하므로 기말고사로 충분하다고.
교장 선생님이 선생님 말이 맞는데, 지금 학부모들이 워낙 난리여서 설득이 어렵다 하신다. 오늘 교장실로 내내 민원전화가 쏟아졌다고 한다. 듣자니 몇몇 분이 어디 까페에 모여서 우리 학교가 시험 안 친다고 성토를 하고 학교에 강력 항의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청와대 민원도 올린다 어쩐다 까지 말이 나왔다 한다.
원래 우리 학교와 인접한 몇 학교가 다 중간고사를 안 치기로 결정했는데, 인근 사립중학교가 중간고사를 치면서 다른 학교도 하나둘 돌아서서 지금 우리학교 하나만 남은 거였다. 동네 분위기가 다 이러한데다 주위에서 말이 많으니 교장 선생님으로서도 본인의 뜻과 달리 다른 학교가 하는 대로 무난하게 진행하려 하시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 일처리에 있어서 상당히 합리적인 분인데, 전화에 너무 시달리신 모양.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평가기관이 아니다. 평가의 목적은 학생이 학습 과정에서 무엇을 잘 배우고 무엇이 부족한지 피드백을 삼기 위함이다. 교육활동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게 평가다. 게다가 입시도 없는 중학교에서는 더더욱 평가가 교육활동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대면수업이 확 줄어든 코로나 상황에서 평가는 현장 상황에 맞게 유연하게 대처해야 하고, 학생들이 배움의 흥미를 잃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한데 이런 상황에서 오지선다형 '지필평가'를 고수해야 할까. 애들을 그렇게 한 줄로 세우고 싶은가. 영 안 치는 것도 아니고 기말시험이 있는데.
더 큰 문제는 의사결정 과정이다. 대다수 학생과 학부모가 원하는 것이 아닌데, 목소리 큰 몇몇 학부모들에 의해서 학교가, 교육의 원칙이 좌지우지되어서야 말이 되는가. 지금 대구교육청에서 중3은 매일 등교하라 해서 1학년과 2학년은 또 번갈아 학교를 쉬어야 하는데(전교생의 3분의 2 등교), 2학년이 시험 친다 하면, 그 일정에 맞춰 1학년은 또 등교일이 조정되게 생겼다.
교장 선생님은 전교생과 전체 학부모에게 중간고사 실시를 원하는가 설문 조사를 한 다음에, 그 결과를 그 민원인들에게 통보해줄까 하는 생각도 해보셨다 한다. 하지만 그러다간 감정 대립만 더 심해질 것 같고, 인근 학교도 계획을 바꿔 시험을 치기로 해서, 말았다 하신다.
몇몇 목소리 큰 사람들이 제멋대로 하는 게 민주주의가 아니다. 많은 논의 끝에 학교에서 교육적으로 이게 맞다 해서 결정된 사항이 몇몇 민원인에 의해 하루만에 뒤집히다니. 그래서 우리나라는 교육부가 딱 지침을 정해서 내려줘야 한다. <올해는 중학교 중간고사 금지>, 이렇게. 교육부도 처음에 이렇게 했다가 민원이 많자 <중간고사 안 치는 것을 권장>으로 바꿨다. 그리고 책임 회피.
교육부가 욕을 먹더라도 중요한 것은 딱 결정해서 시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학교 자율에 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코로나는 소리 없는 전쟁인데, 이건 뭐, 6.25 전쟁이 나도 중간고사 쳐서 내 아이 전교석차 알고 싶다는 분들이 적지 않으니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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