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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수업 이야기90

쾌락 어린이라 부르면 살짝 삐치며 청소년이라 강력 주장하는 열네 살 중1들. 이 비싼 분필로(멀티초크펜) 칠판에 쓱싹쓱싹 쓰면 너무 기분 좋다고, 이 쾌락을 함께 느껴볼 사람 나오라니깐 너도나도 나와서 쓰겠다고 난리. 답을 적는 게 아니라 낙서하는 듯 흥겨운 분위기. 아직 동심이 넘치는 어린이들이다. 몇 자루 안 남아 추가 주문했더니 오늘 도착했다. 이런 모습 보면 초등쌤들이 잘 가르쳤다 싶다. 자기 생각 말할 사람 물으면 절반 넘게 손을 드니. 하지만 나는 안다. 지필고사 한 번 칠 때마다 손 드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중3 되면 교실은 한결 고요해진다는 걸. 학생들은 자기가 공부를 썩 잘하지 않는다 생각하면서부터 손을 잘 안 든다. 작년까진 자유학년제라 중1은 지필고사가 없었는데 올해엔 2학기만 안 치고 1.. 2022. 3. 22.
오글오글 오규원 시인의 수업을 하고 있어요. 시는 예술이고 예술은 우리를 느끼게 하려고 존재해요. 그래서 작품에 대한 자신의 첫느낌을 읽어내는 게 감상의 첫걸음이죠. 작품에 대한 원초적 느낌은 보통 (아, 이거 와닿네/감동이야) (어 이게 뭐지? 잘 모르겠네) (맘에 안 들어/실망이야) 정도예요. 이 감정들을 예시로 주어진 어휘를 참고해서 표현하는 활동을 해요. 자기 느낌에서 출발해서 좀 더 다양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면서 작품 속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볼살 포동포동한 남학생이 “이 시를 읽으니 마음 한 곳에서 봄눈이 내린다”고 발표했어요. 그러자 맨 앞자리 여학생 왈, “너무 오글거려요 쌤.” 선생님은 오글거리는 거 좋아한다고, ‘오글거림’이 넘치는 국어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학생들에게 따라해보라고 했어요. 한껏 .. 2022. 3. 18.
“이 미친 시를 즐기지 않으려다 즐겨 버렸네.” 어제 젤 귀여웠던 수업 소감. “이 미친 시를 즐기지 않으려다 즐겨 버렸네.” 다음으로 눈에 띈 건 “하찮다고 생각하던 글 속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교실에서 추구하는 건 항상 이다. 글이 평소보다 더 재미있고 새롭게 읽히기. 그게 젤 중요하고, 다음 단계는 글을 통해 생각과 느낌이 좀 더 깊게 건드려지는 것. 한 마디로 의미의 세계에 초대되는 것. 글맛을 잘 모르는 어린 친구들이 혼자 힘으로 글을 맛있게 먹고 소화하는 건 벅차다. 교사가 원재료인 글을 익히고 양념을 치고 먹기 좋게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접시에 내놓아야 한다. 지나치게 요리해서 원재료의 맛과 향이 날아가면 안 되고 학생 수준에 맞게 적당히 조리하기. 요리에서 어떤 오묘한 맛을 발견하는가는 학생에게 달렸다. 음식을 .. 2022. 3. 12.
시대 변화 시 제목이 (꽃)인데 애들이 다 (주식)이라고. ## 그 ( )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 ) 2022. 3. 11.
읽기, 만남인가 기능인가 (2022년 1학기 커리큘럼) (2학년을 지원했으나 튕겨서 또 1학년. 재작년에 만든 재구성안이 있어 조금 손 보고 그대로 가기로.) 자전거를 타는 목적은 속도감과 풍경을 즐기기 위해서예요. 자전거를 타려면 물론 자전거의 여러 기능을 다룰 줄 알아야 하지만, 그게 자전거를 타는 목적은 아니죠. 균형 잡기, 페달 밟기, 핸들 조작하기 등을 잘하려고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죠. 글을 읽는 목적은 다른 세상과의 만남이예요. 작가는 세상을 더 넓고 깊은 시선으로 표현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우리는 읽으면서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죠. 읽기는 만남이고 타자와 마주하는 인격적인 경험이지 단순한 기능이 아니에요. “예측하기, 요약하기, 비유와 상징 이해하기” 등으로 잘게 쪼개진 기능을 숙련한다고 잘 읽는 게 아니에요. 작가에게 공감하고 그가 펼치는 세.. 2022. 2. 20.
시 수업 설계하기 _ 이준관 '딱지' ## 내 수업은 단순하다. 화려하거나 복잡한 스킬을 구사하지 않는다. 무슨 대단한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의 결과물에 주목하지도 않는다. 화려하게 만들고 그리고 쓰고 그런 것도 없다. 내가 마음을 쓰는 것은 늘 다른 데 있다. 수업이 단지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는 과정이 아니라 글이 열어주는 세상과 만나는 경험이 되도록 구성하고자 한다. 우리는 텍스트를 통해 저자가 표현하는 세상을 만난다. 그 세상은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라 저자가 자기 나름의 관점으로 파악하고 소화한 세계이다. 즉 글은 객관적 지식이 아니라 저자가 자기 식으로 소화한 인격적 지식을 담고 있다. 텍스트를 읽는 독자는 저자의 시선의 수준을 따라가면서 평소보다 좀 더 깊고 넓게 대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법을 배운다. 텍스트와의 만남과 소.. 2021. 5. 26.
소설 수업 설계하기 _ 이오덕 '꿩' 동료들과 이야기해보면 시 수업보다 소설 수업이 어렵다고들 말한다. 개별적으로 작품을 읽을 땐 시보다 소설이 쉽다. 학생들도 시를 더 어려워한다. 그런데 수업 발표 등으로 수업안을 짤 때는 시가 더 수월하게 여겨지는 까닭이 뭘까? 아무래도 시는 길이가 짧아서 금방 읽을 수 있기에 한 차시 안에 기승전결이 있는, 도입과 전개, 마무리가 있는 활동을 조직하기가 쉽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소설은 길이가 있어서 한 작품을 끝내는데 기본적으로 서너 차시 이상이 필요하다. 또한 소설은 수업에서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소재가 풍부하다는 점이 오히려 교사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한정된 수업 시간에 이 모든 것을 다 다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감상할지 전체 방향을 정해야 하고, 그.. 2021. 4. 2.
온라인수업 _ 이육사 시인의 생애 https://youtu.be/TV5lAlPd0tQ 작년에 했던 마지막 온라인수업. 시인의 생애는 내가 맡고 시 수업은 동료가 맡아 수업을 진행했다. 모든 글에 대해 작가를 자세히 알 필요는 없지만 몇몇 작품은 작가의 생애를 아는 것이 작품 이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작품을 추상적 언어가 아니라 생생한 삶의 일부로 친밀하게 느끼게 되고 작품에 더 넓은 관심과 호기심을 갖게 된다. 삶이 주는 감동과 울림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중등학교 문학교육에서 형식주의적 해석에 반대한다. 작품 읽기는 결국 삶 읽기이다. 텍스트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도 삶의 맥락에 대한 이해가 있을 때 가능하다. 저자의 삶의 스토리를 그려볼 수 있을 때 학생들은 비로소 작품에서 그 이야기와 연결되는 새로운 스토리를 상.. 2021. 3. 29.
2020 수업 간단평 _ 경험을 다시 경험하기 작년 자료 정리를 이제야 하다니. 늘 그렇다. 핸폰 사진함이 꽉 차서 컴퓨터에 옮길 때에서야 이걸 했었네 한다. 대학 다닐 때 잘 쓰던 말로 '뒷풀이'가 있었다. MT 다녀와서도, 무슨 행사를 하고 나서도 꼭 '뒷풀이'를 했다. 그때야 그저 '뒷풀이'를 핑계로 한 번 더 모여 노는 것에 불과했지만, 어떤 경험을 되짚어본다는 측면에서 참 잘 만든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강렬한 경험이라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흩어지고 의미가 바랜다. 경험만큼, 경험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경험을 다시 경험하는 것이다. 이른바 '성찰'이다. 경험을 다시 돌아볼 때, 우리는 그때 막 정신없이 경험하느라 놓쳤던 것들, 그 경험의 본질적인 부분들을 되찾게 된다. 그래서 경험이 온전히 경험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언제나 그 놓친 .. 2021. 3. 17.
교실에서 여는 북까페 그저께 Y대에서 비대면 특강 촬영을 했다. 주제는 . 아는 교수님 요청이라 거절하기 어려워 준비했는데, 조금 더 내용을 잘 정리할 걸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국가수준 교육과정의 목표를 다시 점검하고, 내 수업이 추구하는 방향을 정리해볼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다. 강의 자료 준비하며 수업활동 자료를 이리저리 찾다가 작년에 한 '북까페' 활동을 발견했다. 학생들이 굉장히 즐겁게 참여하고, 인기 있었던 활동이다. 그때 자료를 다시 보니, 활동 속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느끼는 바가 다양해서 교육적 경험으로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사가 알려주지 않아도 활동 속에서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것. 앞으로도 이런 경험을 많이 조직해봐야겠다 싶다. 활동이 잘 되려면 활동에 앞서 준비를 차근차근해야 한다... 2020. 9. 4.
2020-2학기 국어과 교육과정 재구성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우리 학교는 1학기인 8월말까지 홀짝 등교이고 2학기 시작되는 9월 1일부터 전체 등교 예정이었는데, 대구교육청에서 갑자기 전면 등교하라고 해서 방학 이틀 전에 모든 계획을 다 바꾸고 난리 쳐서 8월 17일에 전체 등교 했는데 등교한 지 이틀만에 원래대로 돌아가라 해서 또 계획을 바꾸고 쌩 난리. 그런데 바꾼 지 하루만에 학교급당 3분의 1 등교라 해서 또 일정을 다 바꿈. 이 난리 끝에 겨우 3주간 일정이 정해짐. 이후는 또 모름. 강은희 교육감이 무조건 전체 등교하라고 방학 전에 난리만 안 쳤어도 계획이 이렇게 산으로 가지는 않았을 거다. 휴가 지나고 좀 분위기 봐서 결정해도 될 것을 방학 전에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가 일정만 계속 바뀜. 이런 형편이라 과연 2학기 때 교재를 .. 2020. 8. 25.
온라인 수업 | 부석사 무량수전 나는 국어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텍스트 선정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글을 읽혀야 한다. 가능하다면 십 년 뒤에도 생각날 그런 글. 학생들의 생활세계와 관련된 글(청소년소설 같은 것)도 있어야 하지만 시야를 넓혀주고 영감을 주는 고전적인(?) 글도 꼭 읽혀야 한다. 중학생이 그리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교양을 넓혀주는 글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최순우 선생의 “부석사 무량수전”은 그런 귀한 글 중 하나다. 어휘가 좀 까다롭지만 4문단의 짧은 글이라 학생들이 따라올 수 있다. 이만큼 학습의 효과가 큰 글이 잘 없어서 교과서의 시시한 글을 빼고 이 글을 온라인수업에 넣었다. 성취기준 (자료를 찾으며 읽기)와 연계하니 흐름이 자연스러웠다. 이 글의 장점은 많다. 우리 문화재 연구의 1세대인 최순우 선.. 2020. 8. 25.
온라인수업 | 별 헤는 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 그리고 배우는 학생들 누구나 공감하고 감동하고 빠져들게 되는 시,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다. 이런 작품은 학생들이 평생 기억하기 때문에 나름 심혈을 기울이는데 온라인수업이라 모둠별 해석은 어림도 없고 구글설문으로 시에 대한 첫느낌과 해석이 막히는 부분에 대한 질문 정도를 받아서 공유했고 개별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다같이 낭송 못한 게 제일 아쉬웠다. 교실에서 마음을 모아 함께 몸으로 소리를 내는 것이 감상의 기초인데,,, 영상이 길어지지 않도록 수업은 활동은 생략, 핵심만 전할 수밖에 없었다. [자기 느낌 읽기 -> 시 해석 -> 상징적 의미 찾기] 로 간단하게 구성했다. 작품이 지닌 아름다움과 힘 때문에 기본만 다룬 데 비해서는 학생들이 풍부한 느낌을 받아간 것 같다. .. 2020. 6. 28.
온라인수업 | 시인 윤동주의 생애 *수업 영상 ~ 영원한 청년, 윤동주 1 https://youtu.be/UWS0LFe5bpA ~ 영원한 청년, 윤동주 2 https://youtu.be/rlJ_jEJEwts 내가 중학교 1학년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걸까. 윤동주 작품에 앞서 윤동주의 생애를 훑어보는 영상을 만드는데 옆에서 보던 남편이 애들 윤동주 전문가 만들 일 있냐며 어렵다고 해서 주말 내내 내용을 빼고 또 빼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그래도 걱정 되어 어렵지 않냐고 수업 후 설문을 받았는데 애들 말이, 전혀 어렵지 않단다. 다행이다 싶었다. 학생들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수업을 준비하다보니 학습 수준이 적절한가에 가장 마음이 쓰인다. ‘깊게 읽기’는 텍스트 자체만을 따져보는 걸로는 가능하지 않다. (1) 텍스트와 관련된.. 2020. 5. 16.
온라인수업 | 시란 무엇일까 구체적인 작품에 들어가기에 앞서 시에 대해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쉬운 내용으로 구성했다. 쉽지만 시의 본질, 시는 짧지만 느낌과 생각을 강렬하게 전하는 예술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론보다는 짧은 시의 예를 들되, 중1 수준에 맞게 제목 맞히기 활동으로 구성했다. 온라인수업이라 학생 활동을 할 수 없어서, 설문을 미리 받아서 진행했다. 국어수업은 함께 독해를 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다른 과목과 달리 학생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어야만 수업에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활동지 파일은 (티처빌-쌤동네)에 있습니다. * 수업 영상 https://youtu.be/7OdCd4BhM1k * '시란 무엇일까'에 대한 학생 답변 1.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감동, 슬픔, 재미가 드러난 재치 있는 문장 2. 한 문.. 2020. 5.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