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이야기/수업 이야기99 선물, 배경화면용 그림 윤동주 작품 할 때 컴퓨터 바탕화면에 윤동주 시인 얼굴을 내내 깔아놨었다. 학생들이 소설 ‘꿩’ 수업할 땐 배경화면 뭘로 할 거냐고, 이오덕 선생님 사진 깔아놓을 거냐고 묻는다. “그러게. 다음 화면은 뭘로 할까? 수업용 배경화면 그려줄 사람?” 여학생 한 명이 손을 든다. 소설 ‘꿩’과 관련된 내용 자유롭게 그려오라고 했는데 약속을 지켰다. 그림을 파일로 받았다. 클릭하니 하늘을 나는 꿩이 짠~! 컴퓨터로 두 시간 그렸다 한다. 소설 주제에 걸맞게 또렷한 눈빛, 힘찬 날갯짓이 돋보여 볼 때마다 마음이 환해진다. 겹겹의 산들도 운치가 있고. 다른 반 애들도 다들 좋아한다. 자기 소개 때 미술이 제일 좋다고 한 친구다. 고맙다고 마침 책상 위에 있던 윤동주 시집을 선물로 주니 좋아서 눈이 커진다. 서로가 .. 2022. 4. 19. 서사의 찐 매력 시 끝나고 이제 소설, 서사의 세계로 돌입합니다. 소설의 핵심은 캐릭터예요. 다양한 인물들이 자기 캐릭터대로 갈등을 헤쳐나가죠. 사건에 각자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이 매력 포인트죠. 학생들에게 이러한 ‘서사'의 재미를 맛보게 하기 위해 짧은 이야기로 수업을 시작했어요. 십여 년 전에 소설 수업을 위해 만든 이야기인데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인기만점. 이 이야기만 보면 중학생들이 흥분해서 그 흥분을 가라앉히느라 늘 애를 먹지요. 이야기 속엔 반 아이들의 이름이 모두 들어가요. 다같이 정글 탐험 중, 담임 선생님은 실종되고, 그 상황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다르게 행동하는지 생각해보는 건데요. 제시된 행동에 걸맞는 친구들의 이름을 적어넣어요. 누가 리더십을 발휘했는지, 누가 엄마를 부르며 울었는지, 누가 물고.. 2022. 4. 14. '별 헤는 밤' 수업을 마치며 "안녕하세요, 윤동주 시인님. 저는 2022년에 살고 있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배우는 학생입니다. 약 100년 전의 시가 아직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감동을 주는 시의 힘이 너무 신기했어요. 시를 통해 시대의 상황, 시대의 아픔을느낄 수 있는 것이 시의 매력이라고 느꼈어요. 평소에 시를 어려워했는데 덕분에 시가 쉽고 재미있어졌어요. (하략)" "저는 이번에 중학교에 입학한 1학년 학생이에요. 윤동주 시인님의 시에는 참 마음이 먹먹해지거나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구절이 많은 것 같아요. 특히 시인님의 시 중에서 '별 헤는 밤'이라는 시가 가장 인상 깊었는데 그중 밤하늘에 별을 헤아리며 추억을 회상하는 장면이 인상 깊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졌어요. 윤동주 시인님, 그때 당시 진로 문제로 아버지와 .. 2022. 4. 13. 새로운 길을 맛보는 나만의 레시피 1) 핸드폰이 아니라 자명종으로 6시 반에 일어난다. 2) 희망찬 마음으로 노래부르며 샤워한다. 3) 머리카락을 빗으며 체조한다. 4) 집을 나서서 보는 친구들에게 인사한다. 5) 친구들에게 윙크 한움큼을 던져준다. 일상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방법으로 학생들이 적은 내용이에요. 지난 주, 매호천을 걸을 때 속으로 ‘새로운 길’(윤동주)을 되뇌고 있었어요. 이 작품 감상을 어떻게 마무리할까 생각하면서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하는데 그때 마침 눈앞에 짠~하고 나타난 민들레, 까치.. 평소에도 있었겠지만 그간 관심을 안 기울여 못 봤겠지요. 그래서 이 작품 감상은 좀 실천적으로 마무리하고 싶었어요. 학생들이 일상에서 ‘새로운 길’의 작디 작은 조각이라도 한 번 맛을 봤으면 했어요. 그래서 과제를 내.. 2022. 4. 10. 시인에게 바치는 헌사 오늘 하루의 근심을 다 잊게 만든 글. 시인에게 바치는 중1의 헌사. ##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봄’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당신의 시를 다 외울 듯합니다. 그대의 시를 달달 못 외우는 것은 쉬이 다른 교육에도 신경써야 하는 까닭이요, 제가 하고자 싶은 것을 할 까닭이요, 그대의 다른 시들도 읽어야 할 까닭입니다. 별 헤는 밤의 쓸쓸함과 새로운 길의 희망과 그 시들에 담긴 그대여. 그대는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그대는 무엇인지 그리워 이름을 쓰고 흙으로 덮어버리었으나 이젠 그 언덕들이 우리 가슴 속에 묻혀 자랑처럼 희망이 무성할 거외다. 2022. 4. 6. 땡~ ‘별 헤는 밤’ 수업. 다 외우라고 하니 너무 길다고 학생들이 아우성. 이럴 때 꼭 이런 거 묻는 녀석들이 있다. 대체로 남학생 농땡이. “쌤은 다 외웠어요?” “당연하지.” 갑자기 여학생까지 가세해 일사불란하게 외치는 중학생들~ “해보세요!!” “다 외웠는데 안 믿네?” 아이들은 더 큰소리로 “해보세요.” 목소리 큰 몇 놈은 “틀리시면 땡~ 할 거예요.” “알았어. 근데 선생님 다 외워서 땡~ 할 일 없을 껄~ 시작한다.” 갑자기 애들이 정자세로 고쳐앉으며 시가 인쇄된 프린트를 단정하게 잡는다. 평소 수업 때마다 더 집중적인 눈빛을 종이 위에 쏘면서. 그때 평소 까불거리는 한 녀석이 “쌤, 안경도 벗으세요.” 한다. “왜?” “그 앞에 꺼 보일까봐서요.” “아이고, 의심도 많으셔라. 알았다, 알았어.”.. 2022. 4. 5. 새로운 길 '느낌 읽기'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 첫대목. 이 구절이 많은 아이들에게 낯설게 다가갈 줄은 몰랐다. 자기들은 횡단보도를 건너고 지하철역 지나고 고속도로 간다고. 혹시 시인이 자연인이냐고. 숲을 거니는 느낌이 궁금하다 한 아이도 있었고. 대다수가 아파트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콘크리트가 더 친숙한 세대구나 했다.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 날마다 가는 그 길이 왜 새롭냐고. 학교 가는 길은 매일 똑같아서 지겨운데. 영어학원 가는 길은 항상 불쾌한데. 그래서 새로운 길이 아리송하다 했고, 뭔가 신비롭고 근사하게 느껴진다는 아이들도 있었다. “민들레가 피고 까치가 날고 아가씨가 지나고 바람이 일고” 이 구절에서 아이들이 궁금해한 것은.. 2022. 3. 26. 쾌락 어린이라 부르면 살짝 삐치며 청소년이라 강력 주장하는 열네 살 중1들. 이 비싼 분필로(멀티초크펜) 칠판에 쓱싹쓱싹 쓰면 너무 기분 좋다고, 이 쾌락을 함께 느껴볼 사람 나오라니깐 너도나도 나와서 쓰겠다고 난리. 답을 적는 게 아니라 낙서하는 듯 흥겨운 분위기. 아직 동심이 넘치는 어린이들이다. 몇 자루 안 남아 추가 주문했더니 오늘 도착했다. 이런 모습 보면 초등쌤들이 잘 가르쳤다 싶다. 자기 생각 말할 사람 물으면 절반 넘게 손을 드니. 하지만 나는 안다. 지필고사 한 번 칠 때마다 손 드는 아이들이 줄어들고, 중3 되면 교실은 한결 고요해진다는 걸. 학생들은 자기가 공부를 썩 잘하지 않는다 생각하면서부터 손을 잘 안 든다. 작년까진 자유학년제라 중1은 지필고사가 없었는데 올해엔 2학기만 안 치고 1.. 2022. 3. 22. 오글오글 오규원 시인의 수업을 하고 있어요. 시는 예술이고 예술은 우리를 느끼게 하려고 존재해요. 그래서 작품에 대한 자신의 첫느낌을 읽어내는 게 감상의 첫걸음이죠. 작품에 대한 원초적 느낌은 보통 (아, 이거 와닿네/감동이야) (어 이게 뭐지? 잘 모르겠네) (맘에 안 들어/실망이야) 정도예요. 이 감정들을 예시로 주어진 어휘를 참고해서 표현하는 활동을 해요. 자기 느낌에서 출발해서 좀 더 다양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면서 작품 속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볼살 포동포동한 남학생이 “이 시를 읽으니 마음 한 곳에서 봄눈이 내린다”고 발표했어요. 그러자 맨 앞자리 여학생 왈, “너무 오글거려요 쌤.” 선생님은 오글거리는 거 좋아한다고, ‘오글거림’이 넘치는 국어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학생들에게 따라해보라고 했어요. 한껏 .. 2022. 3. 18. “이 미친 시를 즐기지 않으려다 즐겨 버렸네.” 어제 젤 귀여웠던 수업 소감. “이 미친 시를 즐기지 않으려다 즐겨 버렸네.” 다음으로 눈에 띈 건 “하찮다고 생각하던 글 속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교실에서 추구하는 건 항상 이다. 글이 평소보다 더 재미있고 새롭게 읽히기. 그게 젤 중요하고, 다음 단계는 글을 통해 생각과 느낌이 좀 더 깊게 건드려지는 것. 한 마디로 의미의 세계에 초대되는 것. 글맛을 잘 모르는 어린 친구들이 혼자 힘으로 글을 맛있게 먹고 소화하는 건 벅차다. 교사가 원재료인 글을 익히고 양념을 치고 먹기 좋게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접시에 내놓아야 한다. 지나치게 요리해서 원재료의 맛과 향이 날아가면 안 되고 학생 수준에 맞게 적당히 조리하기. 요리에서 어떤 오묘한 맛을 발견하는가는 학생에게 달렸다. 음식을 .. 2022. 3. 12. 시대 변화 시 제목이 (꽃)인데 애들이 다 (주식)이라고. ## 그 ( )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 ) 2022. 3. 11. 세상을 똑바로 보기 전시회를 가면 유명작보다 의외의 것들이 눈길을 사로잡을 때가 있다. 간송문화전도 그랬다. 예전 서울 DDP와 대구미술관에서 봤는데, 대구 전시는 회화 위주였었고 난 서울 전시에서 놓친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러 갔다. 미인도는 물론 훌륭했으나 놀라움을 안긴 작품은 따로 있었다. 조선 전기 선비들의 그림 두 점. 왜 놀라웠냐고? 그들이 그린 소가 조선의 소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뿔을 보면 우리소랑 다르다. 아마 중국?? 그리 대단한 존재라 할 수는 없는 소조차 눈에 보이는 대로 못 그리는 선비들의 정신세계가 당황스러웠다. 관념적 이상향을 그리는 게 당시 화풍이라 해도 소까지 그럴 필요가 있을까. 사대주의라 하기에도 너무 남루했고.. 그런 그들이 한글을 어떻게 대접했을지는 뻔하다. 소도 보이는 대로 못 그리.. 2022. 2. 22. 읽기, 만남인가 기능인가 (2022년 1학기 커리큘럼) (2학년을 지원했으나 튕겨서 또 1학년. 재작년에 만든 재구성안이 있어 조금 손 보고 그대로 가기로.) 자전거를 타는 목적은 속도감과 풍경을 즐기기 위해서예요. 자전거를 타려면 물론 자전거의 여러 기능을 다룰 줄 알아야 하지만, 그게 자전거를 타는 목적은 아니죠. 균형 잡기, 페달 밟기, 핸들 조작하기 등을 잘하려고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죠. 글을 읽는 목적은 다른 세상과의 만남이예요. 작가는 세상을 더 넓고 깊은 시선으로 표현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우리는 읽으면서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죠. 읽기는 만남이고 타자와 마주하는 인격적인 경험이지 단순한 기능이 아니에요. “예측하기, 요약하기, 비유와 상징 이해하기” 등으로 잘게 쪼개진 기능을 숙련한다고 잘 읽는 게 아니에요. 작가에게 공감하고 그가 펼치는 세.. 2022. 2. 20. 시 수업 설계하기 _ 이준관 '딱지' ##내 수업은 단순하다. 화려하거나 복잡한 스킬을 구사하지 않는다. 무슨 대단한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의 결과물에 주목하지도 않는다. 화려하게 만들고 그리고 쓰고 그런 것도 없다. 내가 마음을 쓰는 것은 늘 다른 데 있다. 수업이 단지 지식을 머리에 집어넣는 과정이 아니라 글이 열어주는 세상과 만나는 경험이 되도록 구성하고자 한다. 우리는 텍스트를 통해 저자가 표현하는 세상을 만난다. 그 세상은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라 저자가 자기 나름의 관점으로 파악하고 소화한 세계이다. 즉 글은 객관적 지식이 아니라 저자가 자기 식으로 소화한 인격적 지식을 담고 있다. 텍스트를 읽는 독자는 저자의 시선의 수준을 따라가면서 평소보다 좀 더 깊고 넓게 대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법을 배운다. 텍스트와의 만남과 소통.. 2021. 5. 26. 소설 수업 설계하기 _ 이오덕 '꿩' 동료들과 이야기해보면 시 수업보다 소설 수업이 어렵다고들 말한다. 개별적으로 작품을 읽을 땐 시보다 소설이 쉽다. 학생들도 시를 더 어려워한다. 그런데 수업 발표 등으로 수업안을 짤 때는 시가 더 수월하게 여겨지는 까닭이 뭘까? 아무래도 시는 길이가 짧아서 금방 읽을 수 있기에 한 차시 안에 기승전결이 있는, 도입과 전개, 마무리가 있는 활동을 조직하기가 쉽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소설은 길이가 있어서 한 작품을 끝내는데 기본적으로 서너 차시 이상이 필요하다. 또한 소설은 수업에서 다룰 만한 가치가 있는 소재가 풍부하다는 점이 오히려 교사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한정된 수업 시간에 이 모든 것을 다 다룰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사는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작품을 감상할지 전체 방향을 정해야 하고, 그.. 2021. 4. 2. 이전 1 2 3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