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heshe.tistory.com

학교 이야기/수업 이야기90

온라인수업 | 우리말과 글이 걸어온 길 학생들이 선생님에게서 배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수많은 잡다한 지식들 사이에서 길을 잃지 않고 꼭 필요한 것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가 아닐까. 제대로 배운다는 건 어떤 것을 관점을 갖고 바라볼 줄 아는 것이다. 과학이라면 과학적 사고와 탐구정신을, 역사라면 낱낱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를 넘어 역사관을 갖는 일이다. 사회 과목도, 예술도 다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주입식 교육에 물론 반대하지만, 학생 수행활동만을 강조하는 최근의 풍토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활동에 앞서 지식을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 다만, 많은 양의 지식을 다루지는 않는다. 필요 없거나 자질구레한 것은 과감히 버린다. 그리고 꼭 필요한 최소한의 지식, 개념만을 간추려 뽑고 그것을 엮어서 의미 있는 스토리로 전달하고자 한다. 그러다보.. 2020. 5. 1.
온라인수업 | 국어 공부를 왜 할까 지금 온라인수업에 가장 도움이 되는 매체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 구글 설문지이다. 링크만 보내주면 학생들이 작성한 답변을 내가 집에서 질문별로 정리된 형태로 받아볼 수 있어서 구글 설문지가 없었다면 어떻게 수업을 진행했을까 싶다. 국어 과목은 학생들이 텍스트에 대해 사전에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지 감을 잡아야 수업을 구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후로 설문을 받을 때도 있지만 주로 수업 전에 설문 조사를 한다. 아래는 '국어 공부를 왜 할까'에 대한 수업 후 설문. 온라인수업을 준비하며 어디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하다가 중학교에 갓 입학하는 학생들이라 교과목을 배우는 목적을 한 번 짚으면 좋을 것 같아서 3월말에 급하게 짧은 영상을 만들었다. 내가 만든 첫 온라인수업 영상(https://youtu.b.. 2020. 4. 23.
3월 첫수업 _ 모국어로 여는 세상 3월 첫 수업은 마음을 많이 쓴다. 한 해 국어수업의 첫인상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시간에 나는 주로 국어과목과 관련해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식을 이야기로 전달한다. 첫 시간은 아이들의 기억에 좀 더 오래 남을 것이기에 교과서에 나오지 않지만 모두가 공유할 가치가 있는 지식을 선택한다. 그간 여러 가지를 시도해오다가 최근 몇 년 동안 정착한 이야기가 있다. 용산 국립박물관 옆에 있는 한글박물관에서 얻은 아이디어이다. 이 이야기는 다섯 개의 숫자에서 시작된다. 이 숫자는 특정한 사건이 일어난 연도이다. 1446 1926 1933 1942 1957 1446년은 모두가 알다시피 한글이 반포된 해다. 우리말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오랜 시간 전부터 만들어지고 이어져 왔지만 그 말을 기록할 문자가.. 2020. 3. 23.
2020-1학기 국어과 교육과정 재구성 현행 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는 기능주의 패러다임은 차치하고 일단 텍스트가 아니라 활동에 지면을 대부분 할애한다는 점이다. 국어 교과서에 글이 몇 편 없다. 교과서에 나오는 활동이 교사 마음에 안 드는 경우에는 이 교과서가 별로 쓸모가 없어지는 거다. 차라리 교과서엔 활동 예시가 아니라 텍스트를 다양하게 싣고, 교사들이 그 중에서 좋은 텍스트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활동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맞게 따로 구성하고. 물론 교사가 프린트로 보충 자료를 나눠줘서 수업할 수도 있지만 교과서가 활자나 삽화 면에서 프린트 종이보다 가독성이 좋기 때문에 교과서에 실린 글을 가능하면 쓰려고 하지만, 도통 쓸 만한 글이 없으니 문제다. 이번 1학기 교육과정은 교과서 글을 최대한 살리되 뺄 건 빼고 네 편의.. 2020. 3. 13.
우리 신화의 독특한 매력, '오늘이' 수업 후기 강림 들판에 버려져 학의 보살핌을 받은 한 소녀. 마을 사람들은 '오늘' 발견했다고 '오늘이'라 이름을 붙인다. 오늘이는 부모님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 마을 사람들은 세상 모르는 게 없는 백씨부인에게 오늘이를 데려가고 백씨부인은 오늘이의 부모님이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있는 신비로운 땅, 원천강을 다스리는 분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부모님을 만나러가는 오늘이의 긴 여정이 시작된다. 오늘이가 길에서 만난 숱한 존재들, 장상도령, 매일이 처녀, 연꽃, 이무기, 선녀들은 모두 한 가지씩 인생의 큰 고민을 안고 있었다. 장상도령과 매일이 처녀는 각자 외딴 곳에 고립되어 언제 끝날 지 기약 없는 상태에서 책 읽기에 몰두하고 있었고, 연꽃은 수많은 꽃봉오리를 가졌으나 한 송이밖에 꽃을 피우지 .. 2019. 12. 1.
해석의 즐거움, 이육사의 '청포도' 수업을 해보면 알게 된다. 다루는 작품마다 영향력의 크기가 다 다름을. 우리 안에서 더 깊고 풍부하고 절실한 감정을 끌어내는 작품이 따로 있다. 세대를 초월해 보편적 울림을 주고 열린 해석의 가능성을 선물하는 작품들. 시를 예로 들자면 윤동주, 이육사, 한용운 시인의 작품들. 이런 작품이 내겐 마스터피스다. 일제강점기, 그 엄혹한 시대를 가장 순정한 마음으로 맞섰기 때문일까. 특별한 어휘나 수사법을 부려 쓰는 것도 아닌데 이들 작품이 주는 감동은 남다르다. 그 감동이 전혀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사춘기 학생들에게도 살풋 전해지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문학이 지닌 고유한 힘을 깨닫곤 한다. 43년의 짧은 생. 17번의 투옥. 의열단원. 해방 일 년 전 북경 감옥에서 옥사. 40여 편의 유고시... 올해엔 이.. 2019. 11. 17.
“어린왕자”를 다시 만나다 100년 넘게 살아남은 작품. 자기 시대를 뛰어넘은 공감으로 영원성을 획득한 작품. 우리는 이를 고전이라 부른다. 한 학기에 한 권 정도는 고전을 읽히고 싶었다. 헌데 중학교 1학년들 꼬맹이들과 읽기에 마땅한 작품이 잘 없었다. 수준이 제각각인 학생들이 다 소화할 만한 작품을 찾다 택한 것이 다. 수업을 위해 다시 읽으며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들었다. 아프리카의 고독한 사막 한가운데로 초대된 기분이었다. 비행기 고장으로 사막에 불시착한 주인공. 남은 물은 일주일치.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놓인 그에게 뜬금없이 어린왕자가 나타나 말을 건다. “양 한 마리만 그려줘.” 여섯 살 이후 화가의 꿈을 버린 주인공은 그림이 뜻대로 잘 안 된다. 양은 이 안에 있다며 양 대신에 상자 하나를 그려준다. 어린왕자는 뜻밖.. 2019. 11. 6.
우리 고장(대구)엔 무엇이 있을까 이 분은 이 활동이 재미 없으셨던가 보다. 대구에 대한 글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지도부터 확인하는데 내 눈엔 비스듬한 코뿔소 모양 정도로 보이는 대구광역시 지도가 이 분 앞에서 담배 연기로 변신했다. 학습지 검사를 하던 중 잠깐 웃는다. 이 단원에선 대구의 역사를 다룬 글을 읽고, 대구근대골목을 중심으로 도심의 명소 31곳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이 많이 어려워했지만 자기들이 자주 가는 시내에 역사적 의미가 깃든 장소가 이렇게나 많은가 다들 놀라워한다. 이 중 ‘대구근대역사관’ 건물은 다음 차시에 배울 이육사 시인과도 관련된 장소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은행 대구지점이었다가 해방 후 산업은행 대구지점을 거쳐 근대역사관으로 탈바꿈했다. 1927년 이육사 시인이 수인번호 264번으로 대구.. 2019. 10. 26.
우리 동네엔 무엇이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 서울은 곧 한국이다.” “모든 한국인들의 마음엔 서울이 있다.” “한국인들에게 서울은 오직 그 속에서만 살아갈 만한 삶의 가치가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구한말에 조선을 여행한 이사벨라 비숍 여사(저서: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의 말이다.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모든 이슈의 중심은 서울이다. 그리고 나 역시 오랫동안 서울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직장 때문에 대구에 정착했을 뿐 이곳이 좋아서는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밖으로만 쏠리던 호기심이 조금씩 곁을 향하기 시작했다. 익숙해서 뻔하게만 보였던 주변에도 햇살 같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아무리 누추하고 별 것 없더라도 내가 사는 곳이 내 우주의 중심임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지역이야말로 삶의 가장 .. 2019. 10. 20.
내 인생의 책 “책 먹는... 그 뭐지?” “책 먹는 여우.” “아, 맞다!” “엄마가 집 나가는 이야기는?” “돼지책.” 교실 곳곳에서 어릴 때 읽은 그림책 제목을 기억해내느라 술렁인다. ‘한 학기 한 권 읽기’ 시작 전, 자기가 그간 읽은 책을 기억나는 대로 모두 적어보는 시간이다. 학생들에겐 자기 독서 경험을 전반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 괜찮고, 교사에겐 아이들 개개인의 독서 성향을 엿볼 수 있어 좋다. 어떤 아이들은 만화책만 한 가득 읽었고 또 어떤 아이들은 백설공주 흥부놀부 이후 읽은 게 없다. 꽤 고상한 책들을 많이 만나본 녀석도 있고. 지금 우리학교 중1은 여느 해보다 동심이 더 충만한 아이들이라 자기가 네다섯 살 때 읽은 그림책들을 기억해낼 때 특히 신이 났다. 세대가 같아서 그 시절 읽은 책은 서.. 2019. 10. 8.
2019 국어과 교육과정 재구성 모국어교육과 외국어교육은 목표가 다르다. 모국어교육에서 글은 단지 의미정보의 집적이 아니다. 글에는 한 사람의 삶이 관통한다. 다시 말해 한 편의 글을 읽는 것은 한 사람의 경험, 사유, 관찰, 질문, 이 모든 것이 관통하는 하나의 작품을 만나는 경험이다. 단지 문장의 자구적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이 아니라 언어가 촉발해내는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경험이다. 읽기는 타자와 마주하는 인격적인 경험이지 말하기/듣기/읽기/쓰기로 구분되는 하위 언어기능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현행 국어교과서는 말하기/듣기/읽기/쓰기를 내면의 인격성과 분리된 '기능'으로 규정하고 그 기능을 숙련하는 자잘한 '활동' 중심으로 교육내용을 짜놓았다. 이것이 왜 문제인지 한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교과서 4-1 단원의 목표는 '요약하며 읽기.. 2019. 9. 14.
올해 수업한 소설 _ 아우를 위하여, 이상한 선생님, 박씨전 올해 수업한 소설은 '아우를 위하여/황석영', '이상한 선생님/채만식', 그리고 '박씨전'이다. 박씨전은 오래 전에 한번 다루어보았지만 '아우를 위하여'와 '이상한 선생님'은 교과서에서 만나기는 처음이다. 그러다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 수업이었다. 수업이 다 끝나갈 즈음에야 중학생 수준에서 다룰 수 있는 작품의 매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는 특별한 소설이다. 부당한 폭력에 대한 강렬한 저항 정신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담임 교사의 방조 아래 힘깨나 쓰는 아이들이 장악한 초등학교 교실, 주인공 '나'는 처음에는 두려움과 무관심으로 방관하지만 참다 못해 '아니오'를 외친다. 반 아이들이 '나'의 외침에 동조하기 시작하는 순간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던 무리는 힘없이 몰락한다. 그리고.. 2018. 11. 14.
읽기는 기능이 아니다 _ 함민복 '사과를 먹으며' 수업발표 준비를 하며 함민복 시인의 ‘사과를 먹으며’를 선택했다. 교과서 외 작품이지만 한번은 다뤄보고 싶었던 작품이다.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가 십 년도 더 전인데 당시엔 참고자료로 쓰고 주 텍스트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동료 교사들에게 공개하는 수업이다 보니 약간의 긴장과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재미도 있었다. 예전엔 이 작품으로 어떻게 수업안을 짤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지금은 한번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교과서 대단원 주제는 ‘어떻게 읽을까’였다. 어떻게 읽을까. 이는 한 단원의 주제가 아니라 실은 국어교육을 관통하는 물음이다. 읽기교육, 즉 텍스트와의 소통은 국어교육의 본질을 이루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학원을 그렇게 많이들 다니는데 아이들의 읽기 실력은 왜 점점 낮아지는 .. 2018. 11. 13.
황지우_너를 기다리는 동안 어떤 작품이든 교사가 그 작품을 시간을 들여 충분히 이해하고 생각했을 때 수업의 초점을 제대로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황지우의 시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주로 다루어져 왔고,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가르친 건 처음인데 여러모로 미숙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속에 흠뻑 젖어들지 못한 수업이랄까. 무언가 작품의 핵심을 관통했다는 느낌이 드는 수업도 있고, 표면만 툭 건드리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드는 수업이 있다. 황진이/서경덕에 이어 이 작품도 후자의 아쉬움만 내게 남겼다. 시작은 괜찮았다. 올해 교과서에서 시 작품이 처음이라 학생들에게 아는 시인이 누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윤동주, 이육사, 백석, 한용운, 이상화 등이 나왔고, 나는 여러분이 잘 아는 이 시인들이 모두 일제강점기 작품이라고 .. 2018. 4. 30.
황진이 & 서경덕의 시조 _ 망한 수업 교육과정상 목표는 '문학의 보편성'이다. 선인들도 요즘 사람들과 다름 없는 감정을 느끼며 살았다는 것. 하지만 이것을 배움의 주제로 삼기에는 너무 당연하고 진부하지 않을까. 시간 제약이 있는 학교 수업에서 한 작품의 모든 면들을 다 다룰 수는 없다. 대단원 주제 속에 엮어서 가르치면 수업에서 어떤 부분을 더 조명할 지 분명해지는데, 올해는 단원을 쪼개어 가르치기에 교육과정 재구성을 할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성격과 느낌의 작품이 섞인 '문학' 단원의 첫 작품으로 황진이/서경덕 시조가 등장했고, 이 작품만을 단독으로 가르치게 되었다. 수업은 '개성'이라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황진이와 서경덕이 살았던 '개성'의 이모저모를 소개하고 황진이와 서경덕의 삶에 대해 배경지식을 채워주고 작품을 읽고 황진.. 2018. 4.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