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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수업 이야기96

토끼전에 담긴 백성의 소망 토끼전, 6월에 수업하고 뒤늦은 포스팅. 수많은 이본이 있는 판소리계 소설은 민중의 보편적 욕망이 소설로 구현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오늘날 인기 있는 드라마들이 그런 것처럼. 그러므로 토끼전에서 아이들이 읽어내야 하는 것은 우화인 토끼전에서 당대 시대적 상황이 어떻게 은유적으로 반영되어 있으며 백성들의 소망이 어떻게 투영되어 스토리로 형상화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토끼, 용왕, 자라, 이 중에서 백성을 상징하는 인물은 단연 토끼이다. 토끼는 금은보화의 유혹에 빠져 아내한테 말도 안 하고 용궁으로 가는, 유혹에 약한 보통사람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용궁에서 죽을 위기에 처하고 기지를 발휘해서 통쾌하게 탈출에 성공한다. 용왕은 자신이 살기 위해 약자인 토끼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인물로 이.. 2017. 9. 12.
3월에 만난 세 사람 _ 교육과정 재구성 계기 3월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조금은 힘든 달이다. 아이들도 교사들도 새로 만난 학급에 적응해야 하고 업무량도 많다. 한 해 중 가장 정신없는 시기여서 어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휙 지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하루하루가 새록새록 기억에 남아 있는 3월이 있다. J중학교 2학년 학생들과 보낸 3월이다. 애초엔 별 기대가 없는 새학기였다. 고교 교육과정이 숨이 막혀 중학교로 돌아왔지만 그 몇 년 사이에 현장은 크게 달라져 있었다. 각종 업무와 학생들의 사건 사고로 중학교는 말 그대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달라진 풍토에 적응이 쉽지 않아 중학교에 돌아온 첫 해는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수능 문제집과는 작별했지만 중학교 교과서도 딱히 매력 있지는 않았다. 내용도 단순했고 텍스트들이 어떤 주제나 .. 2017. 6. 24.
글쓰기가 주는 힘 우리 반 여학생 중 꼴찌인 정은이는 심한 기분파였다. 등교하자마자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다 부려서 내 속을 뒤집어놓고는 2교시 마치고는 교무실에 와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빙긋 웃으며 가위를 빌려간다. 정은이와의 대화는 불가능했다. 말이 너무 거칠었기 때문이다. “체육 선생님한테 혼이 났어요” 정도로 표현할 것을 “선생님, 점마가요, 막 머라 씨부리는 거예요”라고 해서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정은이 어머니께 상담을 요청했지만 정은이가 상담실을 드나들면 가정사의 비밀(관리자와 상담교사, 담임만 알고 있다)이 다른 학생들한테 알려질까 염려한 어머니가 상담을 거부해서 학교에서도 도움을 줄 방법이 없었다. 교과서에 나오는 기행문을 공부하고 나서 마무리 글쓰기를 할 때였다. 자신이 여행하고 싶은 장소에 대해 .. 2017. 5. 30.
문학교육의 정체성을 묻다 _ 발도르프 학교의 문학교육 5교시 문학시간, 교실에는 정적이 감돌았다. 충분한 시간을 주었지만 아이들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K고 이과반 서른 두 명의 학생들은 '아니 선생님, 지금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욧?' 하는 듯한 표정으로 눈만 멀뚱멀뚱 뜬 채 나를 쳐다보았다. 몇몇은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참고 있는 것 같았다. ‘어, 이건 아닌데. 이 이렇게 지루한 소설이 아닌데......’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침몰하는 배의 선장이 된 기분으로 어떻게든 이 배가 졸음의 바다 속에 가라앉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마침내 반가운 마침종 소리를 들었다. 문학수업은 교사가 작품의 어떤 면에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 수업내용이 많이 달라진다. 내가 처음에 이 소설에서 주목한 부분은 주인공 허생원의 상반된 두 가지 모습이었.. 2017. 5. 28.
어느 봄날의 대화 _ 친구와 대화하기 수업 ‘한 시간이라도 자유롭게 수업하고 싶다.’ K고에 온 지 두 달쯤 지났을 때의 내 심정이 이랬다. 사실 K고는 좋은 학교였다. 깨끗한 신식 건물에 주변 공원의 산책길도 일품이었지만 무엇보다 좋은 것은 학생들이었다. 천방지축 중학생들을 보다가 인문계 고교로 오니 학생들이 어찌나 순한지, 가끔은 얘들이 천사가 아닐까 생각했다. 남녀공학이지만 한 반에 남학생이 서넛에서 많아야 일고여덟이고 다수가 여학생이어서 분위기가 더 온화한 것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복도에서 울리던 욕설이 귓전에 들리지 않아 처음엔 그 평화가 이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구상에 완벽한 세상은 없는 법, 내 생애 가장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목에 뭐가 걸린 듯한 불편함이 항시 나를 따라다녔다. 한 반에 일주일에 네 시간 있는 국어수업을.. 2017. 5. 27.
우투리는 누구일까 '아기장수 우투리' 수업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원래 5차시 정도로 생각했는데, 독감에 걸려 이틀 수업을 못하는 바람에 4차시로 마무리했다. 그 다음에 바로 중간고사가 있어서 더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그 주에 컨디션도 엉망이어서 내용도 섬세하게 챙기지 못했다. 엣날 이야기는 그냥 옛날 이야기가 아니다. 오랜 세월을 벽을 뚫고 살아남은 이야기들은 '비석에 새긴다'는 뜻의 '구비문학'이란 이름이 말해주듯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야기의 요소와 민중의 오랜 소망이 담겨 있다. 옛날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 선조들이 품었던 소망과 그들의 세상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맛보고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의 소망과 오늘 우리의 소망 사이의 연결되는 지점을 알아차리면서 우리는 옛.. 2017. 5. 5.
2단원 _ 여행을 마무리하며 2017. 4. 22.
'무량수전'에서 느낀 고마움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최순우 선생의 '부석사 무량수전'에 나오는 구절이다. 수업을 준비하는 나는 무량수전의 아름다움보다는 선생이 말한 '사무치는 고마움'의 뜻을 묻고 또 물었다. 무량수전의 정갈한 아름다움에는 나 또한 놀랐지만 그것이 '사무치게' 고마울 것 까지야,,, 하면서. 개성박물관 말단 서기에서 시작해서 국립중앙박물관장까지 한평생을 박물관과 함께 보낸 선생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그의 감격이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했다. 식민지와 6.25 전쟁을 겪으며 우리 것이 다 흩어지고 우리의 아름다움의 실체조차 가늠하기 어려웠던 시대, 우리 것이 쪼그라든 시대에 우리의 아름다움을 하나씩 찾아간 선생에게 부석사 무량수전과의 만남은 신.. 2017. 4. 16.
'섶섬이 보이는 방'으로의 여행 지난 일주일 동안 '섶섬이 보이는 방'으로 여행을 떠났다. 나희덕 시인의 시와 함께. 제주 서귀포 언덕 위 초가, 이중섭과 그의 아내 마사코와 두 아이들이 6.25 전쟁 중 약 일 년간을 함께 부대끼며 살았던 1, 4평의 고방, 조개껍데기처럼 작은 방과 그들이 뛰놀았던 드넓은 바닷가, 모래와 게와 아이들 속으로. 수업은 4차시로 진행되었다. 학생들에겐 4차시지만 나는 네 반 열 여섯 시간을 수업해서 일주일 내내 내 마음은 제주의 풍광으로 가득차 있었다. 2단원은 '여행'이라는 주제로 나희덕 시인의 '섶섬이 보이는 방'과 최순우 선생의 '부석사 무량수전'을 묶었다. 우리의 자연과 문화, 예술을 글을 통해 만나보자는 테마다. 제주는 그간 십여 차례 이상, 부석사는 두 번을 방문했기에 나름 의미있게 수업할 수.. 2017. 4. 9.
1단원 마무리 _ 그들의 마음을 조금 들여다본 시간 3월 한 달 동안 윤동주, 한용운, 김구와 함께 보냈다.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문학에 흠뻑 빠져본 시간이었다. 한 작품을 충분히 느끼고 싶어서 별 헤는 밤, 나룻배와 행인, 나의 소원(1부와 3부)만 읽었고 작가들의 다른 작품은 아쉽지만 손대지 않았다. 평균적으로 한 작품을 맛보는 데 일주일(4차시) 정도 걸렸다. 동시대의 작품 여럿을 함께 놓고 보는 것도 괜찮았고 시와 수필이 섞여 있어서 동시대의 생각의 편린을 두루 맛보는 느낌도 있었다. 윤동주, 한용운, 김구 이 세 분이 나름 개성이 뚜렷한 분들이고 학생,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의 글이라 동시대 작품이지만 서로 다른 고민의 지점들을 확인하는 것도 괜찮았다. 한 달 동안 애착을 가졌던 작가들을 떠나보내자니 아쉬웠다. 나도 좀 더 잘 .. 2017. 4. 5.
김구 선생의 '소원' 스무 살 되던 해, '백범일지'를 처음 읽었을 때가 생각난다. 그저 별 생각 없이 유명한 책이라길래 한번 봐야지 싶어 대학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 세부 내용은 전혀 떠오르지 않지만 당시 책을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우리는 근대사에 대해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평전 등은 더더욱 접해보지 못했기에 백범일지가 다루고 있는 여러 사건들의 의미와 맥락은 이해하지 못한 채로 읽었다. 그때의 독서에서 내가 받은 인상은 한 인물의 생애에 수많은 굴곡이 있다는 것이었고 그 숱한 굴곡을 헤치며 한 사람이 느끼고 생각한 바를 그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 것이 그 자체로 흥미가 있었다. 백범일지 수업은 처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백범일지 그 자체는 아니고 김구 선생이 1947년 책을 출판할 때 백범일지.. 2017. 4. 1.
한용운과 '나룻배' 한용운의 '나룻배와 행인'은 3차시로 진행했다. '별 헤는 밤'에 비해 너무 빨리 끝난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는 수업이었다. 1차시에는 한용운 선생의 생애 개관, 2차시에는 시 내용 이해, 3차시에는 마무리 글쓰기로 진행했다. 한용운 선생(1876-1944)의 생애를 설명하기 위해 다섯 개의 키워드를 뽑았다. 홍성 - 출생, 동학/을미사변 등 당시 시대적 상황, 성장 과정, 조혼(아들-한보국), 고민 및 가출 백담사 - 정식 출가 중 당시 유행하던 '영환지략'이라는 세계지리 책에 충격을 받고 여행길에 나섬 만행 - 블라디보스톡, 서울, 일본, 만주 등지에서의 일화, 이 시기 독립운동의 동지를 만나 교우함. 서대문형무소 - 최린, 손병휘 등이 진행하던 3.1운동에 민족대표 33인으로 참가(공약 삼장)... 2017. 3. 23.
윤동주의 '별' 일주일을 윤동주의 '별 헤는 밤'과 함께 보냈다. 한 달은 필요하다고 느낄 만큼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수업은 4차시로 진행되었다. 1차시에는 작품에 들어가지 않고 배경지식만 다루었다. 모둠별로 학생들이 아는 시인과 독립운동가를 모두 써보게 한 뒤 칠판에 적고 우리들의 앎의 내용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해 보았다. '이름'을 아는 것은 배움의 출발이지만 이름을 안다고 해서 그를 아는 것은 아니다,,, 그분들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그분들이 직접 쓴 글을 읽어볼 것이며,,, 아쉽지만 세 분의 작품 세 편만 다룰 것이며, 윤동주가 그 첫번째다,,,에서 수업을 시작했다. 윤동주의 생애를 연대기로 설명해서는 학생들이 수용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그의 자취가 남아 있는 장소를 4개의 키워드로 뽑았다. 1917~1945,.. 2017. 3. 19.
'주어'가 빠진 교육 _ 어떻게 읽을 것인가 생각해보니 '별 헤는 밤' 수업은 처음이다. 이 시를 다같이 암송한 적은 몇 번 있지만 '별 헤는 밤'이 교과서 주 단원으로 나온 적은 없었다. 지금 교과서에서도 보충 자료에만 등장하는데, 꼭 함께 읽어보고 싶은 작품이라 3월 첫 작품으로 선정했다. 글은 단순히 의미 파악의 대상이 아니다. 글은 한 사람의 숨결과 땀이 배어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글의 배후에는 언제나 뜨거운 심장을 지닌 한 사람이 있고, 그가 겪은 시간과 그가 헤쳐간 시대가 가로놓여 있다. 글을 읽는 것은 그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그가 세상을 헤쳐가는 방식을 따라가보는 것이다. 물론 문학 작품의 경우 작가의 삶이 작품 내용와 직결되지는 않으며 작품은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화학적 반응을 독자 안에서 탄생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작품이.. 2017. 3. 13.
2017 교육과정 재구성 고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내려오니 교과서 내용도 시시하고 교과서 글들이 어떤 주제나 방향 없이 교육과정의 조각난 목표에 따라 이리저리 짜깁기 되어 있어서 가르치는 게 영 재미가 없었다. 지적 자극도 전혀 없고. 작년 한 해는 그냥 지나보냈고 올해는 에라, 내 멋대로 가르쳐보자 해서 교과서 단원을 재편성했다. 교과서에서 꼭 읽어야 할 글만 뽑아서 주제별로 묶어서 깔끔하게 정리. 작은 학교여서 2학년 한 학년을 나 혼자 가르치기에 가능한 일. 3월을 윤동주, 한용운으로 시작할 수 있어서 비로소 안도감이 든다. 1. 불행한 시대의 선각자들 (1) 시 - 별 헤는 밤(윤동주) p218 (2) 시 - 나룻배와 행인(한용운) p55 (3) 수필 -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김구) p204 2. 어떤 특별한 여행 - 우리 .. 2017. 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