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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수업 이야기99

우리 고장(대구)엔 무엇이 있을까 이 분은 이 활동이 재미 없으셨던가 보다. 대구에 대한 글을 본격적으로 읽기 전, 지도부터 확인하는데 내 눈엔 비스듬한 코뿔소 모양 정도로 보이는 대구광역시 지도가 이 분 앞에서 담배 연기로 변신했다. 학습지 검사를 하던 중 잠깐 웃는다. 이 단원에선 대구의 역사를 다룬 글을 읽고, 대구근대골목을 중심으로 도심의 명소 31곳을 찾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이 많이 어려워했지만 자기들이 자주 가는 시내에 역사적 의미가 깃든 장소가 이렇게나 많은가 다들 놀라워한다. 이 중 ‘대구근대역사관’ 건물은 다음 차시에 배울 이육사 시인과도 관련된 장소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은행 대구지점이었다가 해방 후 산업은행 대구지점을 거쳐 근대역사관으로 탈바꿈했다. 1927년 이육사 시인이 수인번호 264번으로 대구.. 2019. 10. 26.
우리 동네엔 무엇이 있을까 “어떤 의미에서 서울은 곧 한국이다.” “모든 한국인들의 마음엔 서울이 있다.” “한국인들에게 서울은 오직 그 속에서만 살아갈 만한 삶의 가치가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구한말에 조선을 여행한 이사벨라 비숍 여사(저서: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의 말이다. 백여 년이 지난 지금도 분위기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모든 이슈의 중심은 서울이다. 그리고 나 역시 오랫동안 서울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직장 때문에 대구에 정착했을 뿐 이곳이 좋아서는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밖으로만 쏠리던 호기심이 조금씩 곁을 향하기 시작했다. 익숙해서 뻔하게만 보였던 주변에도 햇살 같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다. 아무리 누추하고 별 것 없더라도 내가 사는 곳이 내 우주의 중심임을 왜 진작 깨닫지 못했을까. 지역이야말로 삶의 가장 .. 2019. 10. 20.
내 인생의 책 “책 먹는... 그 뭐지?” “책 먹는 여우.” “아, 맞다!” “엄마가 집 나가는 이야기는?” “돼지책.” 교실 곳곳에서 어릴 때 읽은 그림책 제목을 기억해내느라 술렁인다. ‘한 학기 한 권 읽기’ 시작 전, 자기가 그간 읽은 책을 기억나는 대로 모두 적어보는 시간이다. 학생들에겐 자기 독서 경험을 전반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 괜찮고, 교사에겐 아이들 개개인의 독서 성향을 엿볼 수 있어 좋다. 어떤 아이들은 만화책만 한 가득 읽었고 또 어떤 아이들은 백설공주 흥부놀부 이후 읽은 게 없다. 꽤 고상한 책들을 많이 만나본 녀석도 있고. 지금 우리학교 중1은 여느 해보다 동심이 더 충만한 아이들이라 자기가 네다섯 살 때 읽은 그림책들을 기억해낼 때 특히 신이 났다. 세대가 같아서 그 시절 읽은 책은 서.. 2019. 10. 8.
2019 국어과 교육과정 재구성 모국어교육과 외국어교육은 목표가 다르다. 모국어교육에서 글은 단지 의미정보의 집적이 아니다. 글에는 한 사람의 삶이 관통한다. 다시 말해 한 편의 글을 읽는 것은 한 사람의 경험, 사유, 관찰, 질문, 이 모든 것이 관통하는 하나의 작품을 만나는 경험이다. 단지 문장의 자구적 의미를 파악하는 과정이 아니라 언어가 촉발해내는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경험이다. 읽기는 타자와 마주하는 인격적인 경험이지 말하기/듣기/읽기/쓰기로 구분되는 하위 언어기능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현행 국어교과서는 말하기/듣기/읽기/쓰기를 내면의 인격성과 분리된 '기능'으로 규정하고 그 기능을 숙련하는 자잘한 '활동' 중심으로 교육내용을 짜놓았다. 이것이 왜 문제인지 한 가지만 예로 들어보자. 교과서 4-1 단원의 목표는 '요약하며 읽기.. 2019. 9. 14.
올해 수업한 소설 _ 아우를 위하여, 이상한 선생님, 박씨전 올해 수업한 소설은 '아우를 위하여/황석영', '이상한 선생님/채만식', 그리고 '박씨전'이다. 박씨전은 오래 전에 한번 다루어보았지만 '아우를 위하여'와 '이상한 선생님'은 교과서에서 만나기는 처음이다. 그러다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 수업이었다. 수업이 다 끝나갈 즈음에야 중학생 수준에서 다룰 수 있는 작품의 매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는 특별한 소설이다. 부당한 폭력에 대한 강렬한 저항 정신 담고 있기 때문이다. 담임 교사의 방조 아래 힘깨나 쓰는 아이들이 장악한 초등학교 교실, 주인공 '나'는 처음에는 두려움과 무관심으로 방관하지만 참다 못해 '아니오'를 외친다. 반 아이들이 '나'의 외침에 동조하기 시작하는 순간 부당한 권력을 행사했던 무리는 힘없이 몰락한다. 그리고.. 2018. 11. 14.
읽기는 기능이 아니다 _ 함민복 '사과를 먹으며' 수업발표 준비를 하며 함민복 시인의 ‘사과를 먹으며’를 선택했다. 교과서 외 작품이지만 한번은 다뤄보고 싶었던 작품이다. 이 시를 처음 접했을 때가 십 년도 더 전인데 당시엔 참고자료로 쓰고 주 텍스트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동료 교사들에게 공개하는 수업이다 보니 약간의 긴장과 스트레스는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재미도 있었다. 예전엔 이 작품으로 어떻게 수업안을 짤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지금은 한번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교과서 대단원 주제는 ‘어떻게 읽을까’였다. 어떻게 읽을까. 이는 한 단원의 주제가 아니라 실은 국어교육을 관통하는 물음이다. 읽기교육, 즉 텍스트와의 소통은 국어교육의 본질을 이루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학원을 그렇게 많이들 다니는데 아이들의 읽기 실력은 왜 점점 낮아지는 .. 2018. 11. 13.
수업하고 싶은 글 _ 전태일 편지 전태일 편지는 수업 시간에 한 번도 다뤄본 적이 없는 텍스트다. 언젠가 한 번 시도하고 싶어서 갈무리해둔다.  '어린왕자'와 같은 고전뿐 아니라 우리의 사회적 현실을 들여다보는 텍스트도 읽을 가치가 있다. 게다가 전태일 열사는 대구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태어난 작가가 이상화, 현진건(서울에서 활동해서 많이 알려지지 않음)이고, 이육사 시인은 안동에서 태어났으나 대구가 활동의 근거지였다. 동요 '기러기'를 쓴 아동문학가 윤복진, 이상화 시인과 함께 3.1운동을 주도한 백기만 시인, '봄은 고양이로다'의 이장희 시인도 있다. 이 중에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이상화, 이육사, 현진건, 전태일, 이 네 명을 좀 깊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현진건은 대구와 서울 어디에서도 안 챙겨서 서울에 남아 있던 한옥.. 2018. 11. 10.
황지우_너를 기다리는 동안 어떤 작품이든 교사가 그 작품을 시간을 들여 충분히 이해하고 생각했을 때 수업의 초점을 제대로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황지우의 시는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가 주로 다루어져 왔고, '너를 기다리는 동안'을 가르친 건 처음인데 여러모로 미숙했다는 생각이 든다. 작품 속에 흠뻑 젖어들지 못한 수업이랄까. 무언가 작품의 핵심을 관통했다는 느낌이 드는 수업도 있고, 표면만 툭 건드리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 드는 수업이 있다. 황진이/서경덕에 이어 이 작품도 후자의 아쉬움만 내게 남겼다. 시작은 괜찮았다. 올해 교과서에서 시 작품이 처음이라 학생들에게 아는 시인이 누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윤동주, 이육사, 백석, 한용운, 이상화 등이 나왔고, 나는 여러분이 잘 아는 이 시인들이 모두 일제강점기 작품이라고 .. 2018. 4. 30.
황진이 & 서경덕의 시조 _ 망한 수업 교육과정상 목표는 '문학의 보편성'이다. 선인들도 요즘 사람들과 다름 없는 감정을 느끼며 살았다는 것. 하지만 이것을 배움의 주제로 삼기에는 너무 당연하고 진부하지 않을까. 시간 제약이 있는 학교 수업에서 한 작품의 모든 면들을 다 다룰 수는 없다. 대단원 주제 속에 엮어서 가르치면 수업에서 어떤 부분을 더 조명할 지 분명해지는데, 올해는 단원을 쪼개어 가르치기에 교육과정 재구성을 할 수 없었다. 서로 다른 성격과 느낌의 작품이 섞인 '문학' 단원의 첫 작품으로 황진이/서경덕 시조가 등장했고, 이 작품만을 단독으로 가르치게 되었다. 수업은 '개성'이라는 장소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황진이와 서경덕이 살았던 '개성'의 이모저모를 소개하고 황진이와 서경덕의 삶에 대해 배경지식을 채워주고 작품을 읽고 황진.. 2018. 4. 16.
교육과정 재편성 vs 교과서 순서대로 새 학교에서 한 달이 지났다. 올해는 유연 근무제를 신청하면서 목금 이틀만 근무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열한 반이 있는 3학년을 지원할 수밖에 없었는데, 3학년 수업도 A, B로 나누어 한 반에 2차시씩만 들어가게 되었다. 4차시를 전담하면 교육과정 재구성을 전면적으로는 아니어도, 시험 범위 안에서 융통성 있게 조정해볼 수는 있었는데, A는 1단원, B는 2단원으로 진도가 정해지다보니 교과서 작품을 순서대로 다룰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작년에 비해 수업 몰입도가 확실히 떨어졌다. 1. 의미 있는 삶 ~ 전형필 자서전, 보충란에 윤동주의 '참회록', 재능을 살리자는 현대 글, 자서전 쓰기 활동 ---> "의미 있는 삶"에서 전형필, 윤동주가 주는 무게감에서 갑자기 꿈과 재능을 살리자는 현대 글이 너무 분위기.. 2018. 4. 9.
2017 수행평가 정리 *1학기 : 말하기 평가, 서평 쓰기, 포트폴리오*2학기 : 1인 1책 읽기, 독서대화보고서, 포트폴리오 1. 말하기 평가 고교에 있을 때 안 하다가 다시 중학교에 와서 정말 오랜만에 해본 수행평가. 아이들도 재미있어 하고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스스로 이야기를 준비해서 발표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국어과의 수행평가로 제격이다 싶었다. 이야기가 너무 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최소 시간을 2분으로 잡았고 3분을 초과하지 않도록 했다. 자신의 다양한 경험 중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을 먼저 고르고 수업 시간에 다같이 말하기 원고를 작성했다. 원고는 자연스럽게 쓰되 (들어가는 말-본문-경험에서 느끼고 깨달은 점), 이렇게 3단계로 내용을 전개하도록 했다. 원고 작성이 완료되면 개인적으로 원고를 외워오도.. 2018. 3. 1.
김훈의 '섬진강 기행' 학생들이 중년 남자의 감수성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지만 '섬진강'이라는 장소 하나 때문에, 그리고 교과서에 기행문이 이것밖에 없어서 선택한 작품이다. 여우치마을, 옥정호수, 섬진강, 천담마을, 구담마을, 싸리재, 북대미.... 순창까지 아이들이 이 일대의 지명에 익숙해지게 하고 싶어 선택했는데 글이 쉬워서 수업도 평이하게 이루어졌다. 학생들이 지리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지명을 추상적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어서 먼저 지명에 적히지 않은 우리나라 지도를 주고 자신이 방문한 모든 곳을 표시해보게 하였다. 다음 차시부터는 섬진강에 대한 자료와 지리산에 대한 영상자료와 함께 다음 지도를 프린트스크린하여 지도를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글쓴이의 여정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따라갔다. 내용은 기행문의 요소인 여정/견문/감상에.. 2017. 11. 14.
김광규의 '동서남북' 김광규의 '동서남북'은 남북 분단 상황의 해소에 대한 굳은 의지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표현한 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의 변화에 따라 연록색 물결, 진달래, 개나리, 코스모스, 단풍 이 모든 삼라만상이 철조망과 군사분계선을 거침없이 넘어서 월북하고 월남한다고 노래하고 있다. 월북한다, 월남한다, 북상한다, 남하한다, 라는 단어의 반복이 시인의 통일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주고 있으며, 그 의지는 "동서남북 가리지 않고 온 세상을 하나로 하얗게 뒤덮는 눈보라 아무도 막을 수 없다"라는 마지막 구절에서 정점을 이룬다. 이런 작품을 만날 때마다 뻔하지 않은 메시지로, 그러나 가슴 깊이 스며드는 무언가가 있게 작품을 다루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배경지식 확인으로 먼저 학생들이 분단.. 2017. 11. 14.
우리에게도 '물 한 모금'을 __ 황순원 ‘물 한 모금’ 교과서에 실린 황순원의 단편 '물 한 모금'. 너무 담백한 작품이라 학생들이 지루해할까봐 다른 작품으로 대체해서 수업할까 하는 생각을 처음엔 했다. 하지만 그 경우 프린트해 나눠준 작품을 중학생들이 잃어버리는 일이 많아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교과서 작품으로 수업했는데 의외로 이 소설이 괜찮았다. 이야기의 무대는 일제강점기 평안도 한 시골마을의 간이역 인근이다. 기차를 타러 오는 사람들이 비를 피해 간이역 근처의 헛간으로 하나 둘 모여들고 그들 사이의 대화가 잔잔하게 전개된다. 늦가을의 비는 사람들에게 한기를 가져다주고 기차 시간이 다 되어도 사람들은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데 헛간 주인인 중국 남자가 등장해 작은 반전을 선사한다. 험상궂게 생긴 그는 사람들을 쫓아내려는 듯 보였지만 잠.. 2017. 11. 1.
조선왕조실록과 신개의 상소문 2학기에 다룰 두 번째 고전은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신개의 상소문 '사관의 기록을 보겠다는 명령을 거두어 주십시오'로 골랐다. 상소문이라는 장르를 접해보는 것도 좋고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위대한 문화유산에 대한 교양도 얻을 수 있고 조선 초의 왕과 사관의 갈등을 통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도 되고 무엇보다 글쓴이의 논리가 매우 훌륭하여 왕의 의견에 대한 글쓴이의 반론을 분석하는 것도 교육적 의의가 있었다. 1차시에는 모둠별로 탭북을 주고 조선왕조실록에 대해 자유롭게 알아볼 시간을 주었다. 모둠별로 탐색한 내용을 발표하고 교사가 보충 설명을 하면서 배경지식을 정리했다. 2차시에는 글쓴이의 논리를 정리하는 활동을 했는데 처음에는 모둠별로 네 가지 근거를 찾게 했으나 학생들이 너무 어려워하여 교사 주.. 2017. 10.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