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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이야기/남아공

케이프타운 1. 중부 아프리카에서 남부 아프리카로, 케이프타운과의 만남

by 릴라~ 2019. 7. 16.

 

 

르완다 키갈리에서 케이프타운까지는 7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한 시간 쉬어갔으니 비행 시간은 6시간이다. 요하네스버그까지는 4시간인데 케이프타운은 두 시간이 더 걸렸다. 아프리카 중부에서 남부까지 이렇게 멀다니! 북아프리카 이집트에서 케이프타운까지는 한국에서 유럽 가는 시간만큼 걸릴 것 같다. 

 

 

우리나라에 있을 땐 아프리카 대륙이 이처럼 크다는 걸 실감하지 못했다. 아프리카는 유럽과 인도를 합친 것만한 크기이다. 동부 아프리카와 서부 아프리카의 거리는 한국과 동남아보다 더 멀다. 대한항공은 에볼라가 돌 때 이때다 하며 수지가 안 맞는 케냐 나이로비 직항편을 없앴지만, 사실 에볼라가 기승을 부린 지역과 케냐는 한국과 동남아 정도의 거리이다.

 

 

드디어 고대하던 남아프리카에 왔다. 아프리카 최남단은 아니지만 거의 최남단으로 여겨지는 곳, 케이프타운. 케이프타운은 많은 면에서 내 예상을 벗어났다. 처음엔 아프리카 같지 않은, 유럽 수준의 잘 갖춰진 관광 인프라에 놀라고 다음엔 저녁 6시만 넘으면 사람이 싹 사라지고 차만 다니는 거리의 한산함에 놀랐다. 남반구는 지금 겨울이라 비수기긴 하지만 인구 3백만 도시의 도심 치고는 너무 조용했다. 르완다 같으면 대로에는 밤 9시에도 활기차게 많은 사람이 다니는데. 탄자니아도 이렇진 않았다. 

 

 

숙소는 도심 한복판에 있었다. 저녁이면 그렇게 싹 사라졌던 사람들이 아침이면 다시 나타났다. 그렇지만 무언가가 달랐다. 중심가엔 고층빌딩이 꽤 많은데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차로만 다니는지 건물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흑인들도 르완다나 탄자니아 사람들보다 삶에 더 찌든 듯한 인상을 주었다. 남아공이 훨씬 부유한 국가인데도. 그렇다고 르완다나 탄자니아 사람들이 딱히 잘 웃거나 밝은 편이 아니다. 그런데도 남아공은 또 달랐다. 

 

 

여행이란 게 실은 표면만 살짝 엿보는 것이다. 내가 느낀 케이프타운의 표면이 그랬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웅장하고 감탄할 만한 자연, 도시의 세련미, 하지만 전자의 나라들보다 뭔가 편안치 않은 거리 분위기. 사람을 많이 보지 못해 그런 것일까. 며칠 다녀가는 여행자로서는 그 내막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느꼈다. 흑인들의 나라와 흑인과 백인이 섞인 나라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을. 케이프타운은 아프리카라기보다는 미국의 한 도시 같은 느낌이었다. 미국은 공권력이 강하지만 여기는 그렇지도 않다. 다인종 사회의 장점보다 단점이 먼저 감지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저녁 6시만 넘으면 개미 새끼 한 마리 안 보이는 거리. 서로를 믿지 못해 그런 것일 터다. 공동체의 전통이 파괴된 상태에서 여러 인종이 섞이면서 정체성이 없는 사회에서는 '부'가 최고의 가치 척도가 된다.   

 

 

한 나라의 매력은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이나 편리한 관광 시스템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사회가 부유하건 가난하건 자기 전통이 있고 사람 냄새가 나는 건강한 사회일 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케이프타운은 그런 매력은 지니지 못했다. 

 

 

 

*2019년 7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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