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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교육 관련

교육과정이론이란 무엇인가 | 윌리엄 파이너 ㅡ "복잡한 대화"로서의 교육과정

by 릴라~ 2020. 3. 26.

 

내가 학교 일로 우울할 때마다 가끔 들쳐보는 책이다. 교육과정을 짤 때 평가 중심의 '목표-실행' 패러다임을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끼다가 이 책을 읽으면 숨통이 트인다. 그리고 내가 틀리지 않았음을 재확인한다. 올해도 학년 초라 여러 가지 계획서를 내는데 동료 중 국가교육과정의 지침을 '성서'처럼 여기는 분이 있어 속터져 하다가 다시 이 책을 손에 잡았다.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은 관련 전문가(?)들이 특정한 관점에 의거하여 정한 것으로 그것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다. 그것에만 초점을 맞추다가는 국어교육이 산으로 간다. 그건 기본적 지침일 뿐 실제 수업에서는 교사가 학생의 성장과 발달에 맞게 다양하게 변주하는 게 맞다. 성취기준을 구체화하는 것은 교사의 몫이다. 

파이너는 교사가 학교 교육과정을 무비판적으로 나열하고 그저 분배하는 것은 직업적 소명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추상적이고 보편적으로 진술된 교육과정은 학생들을 자신이 날마다 생활하는 일상과 가족, 공동체, 지구촌으로부터 소외시키기 쉽기 때문이다. 파이너에게 교육과정은 수업공학적 측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배워야 할 가장 가치 있는 지식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과정이다. 이는 공동체의 정체성과 개인적 정체성 모두를 형성하는 일이며, 그래서 파이너는 교육과정을 '복잡한 대화'로 정의한다. 이 대화는 교과, 학생, 우리 자신과의 대화는 물론, 인종, 계급, 성의 문제를 포함한 역사적 지식, 인문학, 예술, 사회와 문화에 대한 주관적 경험으로 뻗어나간다.

번역본이 나온 건 감사하지만 번역 그 자체는 매우 별로다. 

"교육과정은 어떠한 대상이나 객체가 아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과정 이상의 것이다. 이는 동사이고 행위이며, 사회적 관습, 사적인 의미이며 공적인 희망이다. 교육과정은 단지 우리의 노동의 현장이 아니라, 우리가 교육과정에 의해 변하는 것처럼 그 스스로도 변하고 있는 우리 노동의 산물이다."

"넓은 의미에서 교육의 중요성이란 학문적 지식을 각 개인에게 전달하고 역사적 지식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역사적 사실이 자신을 형성하는 데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시사하고 그 지식으로 그 개인이 사회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형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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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만이 우리를 짓누르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정보에 기초한" 환상에 잠긴 미래도 우리를 엄습한다. 만약 모든 교실에 컴퓨터를 설치한다면, 혹은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스크린을 응시한다면, 그들은 교사에게 집중하는 것보다 더 많이 배울 수 있고 밀레니엄 시대에 더욱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정보 자체가 지식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윤리적이고 지적인 판단이 상실된 정보화 시대는 무지의 시대로 몰락한다.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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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이론은 특별한 역사와 복잡한 현재, 불확실한 미래를 가진 독특한 연구 분야이다. 이 분야가 다른 분야와 달리 명백하게 독립적인 분야로 인정받는 차이점은 다양한 인본주의와 예술, 그리고 사회과학의 제분야의 아이디어들로부터 영향을 받는다는 데 있다. (...) 교육심리학이나 교육사회학과 같은 영역이 모 학문의 영향을 받는 것과 달리, 교육과정 연구는 교육이라는 광범위한 영역을 독자적인 시각으로 종합할 수 있는 유일한 교육학 영역이라 할 수 있다. p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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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교육적 경험"은 엄밀히 말해서 정치가들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최소 한계로서 "최저선"인 표준화된 시험 점수에 초점을 맞추기 바쁘다. 정치가들은 교육과정을 표준화된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에게 연결함으로써 교육을 통제해왔다. 교육을 시험 성적과 일치시키는 교육과정은 교사, 학자, 지식인들을 정부에 봉사하는 기술자로 전락시켰다. 그 결과 자기반성, 간학문적 학식과 지성은 사라지고, 오직 "책무성"으로 합리화된 정치적 사회화가 교육을 대체한다.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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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에 대한 비정형화된 형식인 쿠레레는 빠른 시간 안에 모든 것이 정렬되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자서전적인 방법은 우리에게 속도를 늦추고 과거로 다시 돌아가며, 미래를 상상하도록 인도하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자신을 더욱 풍부히 이해하기 위해 천천히, 자신만의 용어를 활용하여 미래의 환상과 과거의 경험을 분석하고 현재 숨어있는 것을 분석하게 한다. 쿠레레의 방법은 심리적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주관적 위험과 사회적 재건, 그리고 자아와 사회의 성취의 문제다. 이와 같은 사회적이고 주관적인 재건의 프로젝트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 교사들은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상상해야 한다. (...) 우리는 지적인 면에서나 인격적인 면에서 과거, 현재, 미래에 "일시적"으로나마 동시에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자서전적 방법에서는 과거로 돌아가는 과정(회귀)과 미래를 상상하는 과정(전진)을 통하여 자아가 확장되고 복잡해지며(분석), 이는 결과적으로 자기 동화(종합)로 연결된다. 이와 같은 자서전적인 계열성은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교육자로서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악몽에서 깨어나도록 도와준다. (...) 현재의 악몽이란 교사들이 교육과정의 주도권을 지니지 못하면서도 책무성이라는 미명하에 희생되는 것이다. p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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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 이론가들의 평가에 따르면, 정보의 교환과 습득 자체가 교육이 될 수 없다. 많이 아는 것이 학식이 있는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정보는 지적 판단, 비판적 사고, 윤리, 자기 반성으로 조절되어야 한다. 복잡한 대화, 즉 교육과정은 간학문적 지식과 학식, 자기 반성을 요구한다. 이는 높은 점수를 위한 비결이 아니며 자기 인식과 민주화의 가능성, 사회적 재건과 주관적 재건의 쌍둥이 프로젝트에 대한 일반적 신념이다.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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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대화"는 교육내용, 교육방법, 교육평가를 개발하는 학문적 자유를 전제로 한다. 우리는 교실에서 개인으로서 그리고 직업인으로서 학문적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하는데, 교육자는 가식적으로 행동하는 정부와 전문 기관의 공격을 받게 마련이다. "복잡한 대화"의 개념은 수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교육과정의 아이디어이다. p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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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을 "사업"으로 오인한 학교와 대학 행정가, 부모, 정치가들과 논쟁을 벌이는 것은 다소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학생들은 "경기장"에 입장하는 동시에 시험을 치러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창의성과 개성이 있는 참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관료와 동료교수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따라서 한 시대의 지성인이 되기 위해 정치적 참여는 필수불가결하다. (...)

학문적 자유 없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없다. 지적인 자유를 상실하게 되면 교육의 근본적 의미는 파괴된다. 그렇지 않으면 학생들은 시험 출제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만을 주입하게 되고, 이것만을 배우도록 강요당하게 될 것이다. p3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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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은 깨어 있는 삶과 공존한다. (...) "복잡한 대화"는 헤어날 수 없도록 뒤엉킨 학문적 지식, 주관성, 사회를 통해 교육과정을 설명하려고 하는 노력이다. 이와 같은 연결은 우리의 사적이고 공적인 삶을 위한 교육의 약속이며, 교육과정이론을 상세히 설명해주는 원리이다. (...) 그러한 가운데 학교는 사업장이 아니라 창의성, 박식함, 간학문적인 지성주의를 위한 교육의 장으로 전환될 수 있을 것이다.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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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교육, 민주주의, 정치적인 시민을 양성하는 과제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직업 준비를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여겨진다. (...) 교육과정은 주관성과 사회적 지위와의 관계에서 복잡한 대화, 즉 "주관성을 찾는 과정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과정"이 된다. 이러한 수사학은 듀이가 교육적 경험이 개인과 사회, 자아실현과 민주화를 이어주는 교량적 역할을 수행한다고 주장한 것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교육과정의 발달은 "공공의 지적인 지도력"을 필요로 한다.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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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과정 연구에서는 교육과정을 사회공학이나 사업모델로 파악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이해'의 프로젝트로 인식한다. 이는 대화로서의 교육과정 개념을 포괄한다. 

2) 교육과정은 지적 독립성과 이해를 향한 학문적 영역을 확립한다. 또한 인문학, 예술 분야의 연구와 이론에 기초하며, 사회과학이나 행동주의 과학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

3) 수업공학에 기반을 둔 교수에 대한 강조에서 벗어나 지역학, 여성학, 젠더 연구, 문화 연구와 같은 간학문적 접근을 시도한다. p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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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에 대한 연구방향이 문화연구로 전환되면서, 교육과정 학자들은 가장 가치 있는 지식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이것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연구 문제로서, 우리가 찾아서 가르쳐 줄 수 있는 해답은 프로젝트, 사람, 국가, 그리고 역사적 순간에 따라 변화할 것이다. 대학에 근간을 둔 교육학자로서, 우리는 주관적이고 사회적이며 역사적인 상황에 처해 있는 개인, 성, 인종으로 구분되는 인간에 대한 지식의 교육적 중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현존하는 학문적 지식을 통합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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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 이론가들이 생각하는 교육이란 간학문적인 접근을 통한 자기 반성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 교육과정은 구세대가 새로운 세대에게 말해주기 위한 것들을 선택한 것이다. 학교 교육과정은 과거에 기억해야 할 것, 현재에 믿고 있는 것, 미래에 우리가 희망하는 것을 이야기 해준다. 교육과정의 논쟁은 바로 한 국민의 국가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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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 전문가가 고등교육의 현 교육과정이나 학교의 교육과정을 아무 고민 없이 나열하고 분배하는 것은 직업적 소명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것은 교육과정을 학생들의 생활하는 일상, 즉 학부모, 공동체, 국가 지구촌으로부터 소외시키는 일이다. 그러한 점에서 현재의 교육과정은 실패한 교육이다. 우리의 직업적 소명은 교육의 공적인 영역을 재구성하는 것이라 하겠다.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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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사상가"로 남는다는 것은 개인의 학식, 사상, 가르침, 저술 등이 자기 극복과 관련이 있으며, 역사 속에서 축적된 "자아"를 초월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타인에게 인식되는 모습으로부터 자신을 극복하고자 하는 거은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찾는 출발점이 된다. 즉 자신의 내적 자아는 반드시 대중적이라는 사르트르의 패러독스가 명료해지는 것이다. p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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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사회 분석에 있어 자서전 이론이 해답이 될 수 있는가? 킨첼로와 슈타인버그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즉 "자신을 명백하게 하는 힘은 외부의 압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 (...)

그렇다면 교육과정이론은 학생과 교사의 교육적 경험을 자세히 제시해주는 자서전적이고 이론적인 진실 말하기의 형태인 것이다. 이와 같이 교육과정이론에는 역사와 사회의 주관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제시하고, 교육적 경험을 나누는 상호관계가 존재한다. 여기서 언어의 역할은 "진실 말하기"의 핵심이다. 아오키가 경고했듯이 "위험은 우리가 말하는 언어 그 자체로 우리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현상학적인 관점보다는 정신 분석학적인 관점에서도, 주된 내용은 동일하다. "욕망이 없는 언어가 없고, 그 자체가 언어가 아닌 욕망도 없다."

예를 들어 관료적인 언어를 사용하여 실행, 목표 등을 강조한다면, 창의성, 비판 능력, 개성 등은 교육의 과정에서 삭제될 것이다. 아오키가 지적했듯이 "실행"의 언어가 만연되는 가운데 "우리는 지시적 언어가 어떻게 우리의 몸과 마음을 분리시키고, 우리의 육체를 소홀히 하며, 생동감이 소멸된 기계적인 인간이 되는지 알고 있다." p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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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은 지성과 학습이 세상을 성공적으로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의 산 증인이 될 수 있다. (...) 오히려 지식과 지성은 날개가 되어 자유롭게 탐구하고, 넓은 세상을 찾아다니며, 지금 살고 있는 세상보다 좀 더 살맛 나는 세상을 꿈꾸는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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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레레의 방법은 교육과정을 교수 목표에서 자기 자신과의 복잡한 대화와 프로젝트로 재개념화한다. 이 프로젝트는 자기 이해에 대한 지속적인 과정으로서, 한 개인이 사회 재건을 위해 다른 사람과 협력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교육과정이론은 예비 교사와 현직 교사들이 자신, 학생, 동료들과 함께 공공 영역을 재건하기 위해 나설 것을 요청한다. 그 공공 영역은 아직 생성되지 않았고, 미래를 아직 식별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교실은 시민의 공간과 동시에 자신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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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을 풀어가는 것은 미래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쿠레레의 방법에서 전진의 순간은 회귀와 같이 그동한 회피하고, 부인하고, 꺼려왔던 자아를 발견하게 하는 과정이 된다.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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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은 학교를 사업장으로 변모시켰으며, 학교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표준 평가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라는 여론을 형성시켰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학교는 기술과 지식을 만들어내는 공장으로 몰락하였다.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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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공립학교의 교사들은 대학에 있는 그들의 동료 교육자들이 누리는 학문적 자유를 누리지 못했으며, 지금도 그런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육과정이론 연구는 교사의 지적인 자율성, 창의력, 해박한 지식 등을 포함한 학문적 자유를 전제로 이루어지는 교사교육에 대한 간학문적인 접근이기도 하다.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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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일선 교사들은 '교육과정'을 지역 교육청이 이들에게 가르치도록 요구하는 것, 교육부가 가르칠 내용의 폭과 계열에 대한 지침으로 이해한다. 또한 많은 유능한 교사들에게 교육과정은 강의 계획서 내지는 읽어야 할 도서 목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레이놀드, 슬래터리, 타우만, 그리고 필자가 과거와 현대의 학자들이 교육과정에 대해 논의한 자료를 연구한 결과, 교육과정이 앞에 제시한 개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혔다. 결국 우리는 '교육과정이 고도의 상징적인 개념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학교 교육과정은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것을 선택한 것이다. 아울러 교육과정은 역사적, 정치적, 민족적, 성적, 현상적, 자서전적, 심미적, 신학적, 국제적인 성격을 지닌다. 결과적으로 "교육과정은 수많은 세대들이 그들과 세계를 정의 내리기 위해 고전 분투하는 장"이다. p257-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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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등교육에서는 학교 교육과정과 실제의 삶, 그리고 학교 교육과정과 학생들의 자아 형성이 분리되는 결과로 심각한 소외감과 폭력을 가져온다. (...) 교사들은 학문적 지식이라는 것이 개인에게 한정된 것만이 아닌, 인간이 살고 있는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학생들에게 보여줄 권한을 빼앗긴 것인가? 왜 학교의 교육과정은 학생들이 자신들에 관해서, 자신들이 살아가게 될 세상에 대해서 반성하고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극적인 계기가 되지 못하는 것인가?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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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 이론가는 학교의 교육과정의 목적이 학생들을 교과지식에 대한 전문가로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제시한다. 또한 학교 교육과정이 표준화 시험의 성적을 높이고, 학생들을 기업에서 요구하는 효율적이고 말 잘 듣는 직원으로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더욱 강조한다.

학교의 교육과정의 교육적 관점은 이해이다. 이는 학문적 지식간의 관계, 사회 상태, 자아 형성의 과정에 대한 이해이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고, 다른 사람들이 살아왔고, 우리의 후손들이 언젠가 살아가게 될 역사적 순간의 성격에 대한 이해일 것이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동료들을 보살필 윤리적인 의무감을 알려주는 것도 이해요, 우리로 하여금 사적인 분야에서 타인에게 헌신하는 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공적인 분야에서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기를 열망하는 시민으로서 지성, 감성 그리고 용기를 가지고 생각하고 행동하게끔 길 안내를 하는 것도 바로 이해이다. p259-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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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교육과정의 교육적 핵심이 지식을 위한 지식이나, 경제적, 정치적인 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때, 교육과정은 삶에 대한 탐구로 전환된다. 다시 말해서, 교육과정이 우리 자신과 학생의 참된 삶을 위한 기회, 시민 의식과 윤리 의식을 갖추고 정신적으로 성숙한 개인을 길러내는 과정으로 이해될 때, 우리의 사상과 꿈이 구체적으로 실현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교육과정은 어떠한 대상이나 객체가 아니다. 그리고 이는 단순한 과정 이상의 것이다. 이는 동사이고 행위이며, 사회적 관습, 사적인 의미이며 공적인 희망이다. 교육과정은 단지 우리의 노동의 현장이 아니라, 우리가 교육과정에 의해 변하는 것처럼 그 스스로도 변하고 있는 우리 노동의 산물이다." 이는 복잡해 보일지 모르지만, 계속적인 대화의 과정이다.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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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비는 그라프의 말을 인용하면서, 교육을 자신이 살고 있는 삶과 세상을 향해 지속되는 문화적인 대화로의 입문이라고 제시한다. 요약하자면, 이해하면서 책을 읽는 것, 논쟁하는 것, 책을 집필하는 것, 수업 토론 시간에 논평하기 등은 사횢거 활동이 된다. p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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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담화에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교육과정은 대화 그 자체가 아닌 대화를 위한 영역이 된다. 이러한 영역은 교과를 구분하는 관습적인 교육과정의 조직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영역은 인식과 행위에 있어 "문화적으로 중요한" 전통을 나타낸다. 교육과정이란 하나의 공동체가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을 대표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교육과정은 또한 한 공동체에서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을 배제한다. 예를 들어 남부에서는 중학교 역사 시간에 사형에 대한 논의를 삭제하였다.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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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학교 교사들과 교육 전문가인 우리들은 우리가 가르치는 것에 주도권을 가지지 못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는가? 그리고 정치가와 다른 이들이 왜 주도권을 잡게 되었는가? 바로 이 상황에서 정치가와 다른 이들은 학교 교사들을 전에 없었던 "표준화"나 "결과물"을 가지고 모욕하려 하는가?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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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인 지식인이 아닌 사람은 공적인 지식인이 될 수가 없다. 개인의 삶의 역사나 전기적인 상황의 복잡함을 만나지 못한다면, 개인은 사적이고 공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위치를 재정립하는 방법을 평가할 수 없으며, 개인이 현재를 경험하거나 아마도 능가할 수 있는 주제의 입장을 제대로 정착시킬 수 없다.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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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분별력과 자기 자각력, 교육학적인 정신 무장, 적응력 있고 도덕적인 헌신, 학생들을 지적이고 정신-사회적으로 만드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교사들이 학생의 학습에 대해 전적인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완전한 정치적 모순이다. 학생, 그리고 학부모가 교육적 성취에 대해 책임이 있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주는 사람이며,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책임은 학생 자신에게 있다.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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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이 기계를 다루는 업무가 아니라는 점을 알면서도, 많은 영역과 대중들은 교사들이 적절한 '성취기준'을 설립한다면 시험 성적이 오를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 p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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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의미에서 교육의 중요성이란 학문적 지식을 각 개인에게 전달하고 역사적 지식을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역사적 사실이 자신을 형성하는 데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시사하고 그 지식으로 그 개인이 사회적으로 어떤 사람으로 형성될 수 있는지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다. p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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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성주의와 정치적 복종이라는 악몽과 같은 현시점에서, 우리 교육자들이 수행해야 할 의무는 주관성의 회복과 사회적 재건이다. 혼자서든 아니면 협력을 통해서든, 세계에 있는 우리 동료들과 함께 이 복잡한 대화에 참여하자. 거의 매일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자신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가치 있고 세련된 청각적인 교육 분야를 같이 건설하자. 우리의 "복잡한 대화"가 그들의 아니, 당신의 대화를 더욱 복잡하게 하기를 바란다.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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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파이너와 교육과정이론 | 윌리엄 파이너 ㅡ 무엇이 가치있는 지식인가?

파이너의 책은 두 권이 번역되었다. '교육과정이론이란 무엇인가'가 쿠레레를 다각도로 설명한다면, 이 책은 좀 더 문학적인 에세이이어서 파이너의 문제의식이 섬세하게 감지된다. 교육은 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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