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에서 출근으로 전환된지 열흘. 잠잠했던 울화병이 도지고 있다. 지난 이십년간 교육 관료들의 전시행정을 신물 나도록 봐서 이젠 그러려니, 신경도 쓰지 말자, 비판할 시간도 아깝다 주의인데, 온라인개학 앞두고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들, 학교의 문제해결과정을 보니 얘들은 정말 구제불능이구나. 그래서 우리 공교육이 이 막대한 예산과 괜찮은 인력을 갖고도 이 정도 교육밖에 못하는구나.
온라인개학이면 온라인개학에 맞게 융통성 있게, 무엇보다도 온라인학습의 논리에 맞게 진행해야지 오프라인을 그대로 온라인에 가져오자니, 학교에서 10분이면 끝날 일을 며칠 째 전화통 붙들고 있다. 창체, 동아리, 스포츠, 주제선택, 이 모든 걸 하나도 안 없애고 온라인으로 선착순 반배정. 구글설문에서 제출 눌렀는데 미참여 뜬 학생들. 반 옮길 수 없냐는 이어진 민원 전화.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전화 일일이 돌려 학교홈피 다 가입시키니 e학습터로 플랫폼 이동. 또 전화 돌려 가입시키고, 다 가입하니 닉네임 ㅇ반 ㅇㅇㅇ로 바꾸래서 또 다 바꿔. 끝나니 또 10123 형식으로 바꾸라고. 전화 돌리고 가입시키고 또 변경하고, 이 일을 3월부터 무한반복. 4월이 넘어가서도 계속 이러고 있다. 우리반은 줌과 단톡방 이용하는데, 구글 반배정 오류로 남은 건 밴드로 배정하기로 해서 또 가입 독려. 아직도 세 명이 가입 안 함. 내일 전화 돌려야 한다.
오늘은 국어가 주당 5차시니까 학습내용을 5개로 잘라서 올리란다. 그래야 출결 인정이라고. 개수가 많아질수록 애들은 자기가 뭐 빠트렸는지 잘 모를텐데, 10개 넘는 과목에 자율방, 진로방, 동아리방, 스포츠동아리방, 주제선택방까지 가입한 학생들이 클릭의 늪에 빠져 에라 모르겠다, 포기할까 걱정. 학습자 입장에서 심플하게 제시하려고 애써야 하는데 누더기처럼 산만해지고 있다.
평시에도 본질적인 것보단 늘 쓸데없는 데 에너지를 다 쏟게 하는 게 학교인데, 온라인 상황되니 더 심해짐. 교사에게 자율권을 좀 주면 안 되나. 힘든 상황이지만 아이들의 학습을 최대한 잘 준비하게 도와주면 안 되나. 그걸 가장 잘 아는 사람이 교사인데, 왜 자율권을 안 주고 아무것도 못하게 옭아매는가. 그나마 재택근무할 때 수업 동영상 미리 3개 찍어놨는데, 출근하니 매일 정신없어서 아무 것도 못했네. 그래도 우리 학교는 1~7교시까지 오프라인 수업 그대로 접속하라고 하지 않으니 다행이라 받아들여야 하나.
교육청은 현장을 도와주고 지원할 생각은 않고 맨날 접속자수 보고 이딴 거나 보내고 있다. 교육부 지침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하는 존재라면 교육청은 있을 필요가 없다. 걍 교육부에서 학교로 바로 보내면 되지.
이런 관료주의, 딴딴한 행정 틀로는 진취적이고 호기심과 삶에 대한 빛나는 감수성을 북돋는 교육은 불가능. 왜냐하면 이 구조는 교사를 메마른 기계로 만들기 때문. 여기 오래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몰려온다.
그 와중에 황당한 민원인 등장. 학교에서 정한 e학습터가 쌍방향소통이 안 되는 시스템이라 고민고민 끝에 도저히 이걸로 안되겠다 싶아 개인적으로 보조플랫폼으로 국어밴드를 만들어 다른 반애들한테까지 일일이 전화 돌려 가입시키고 있는데, 자기 애는 카톡이나 밴드 접근 안 시키고 싶다면서 이용하지 말아달라는 요청. 자기 교육관은 그렇다쳐도 자기가 하기 싫으니 다른 애도 하지 말아달라니. 평시라면 몰라도 지금은 비상시국이라 온라인으로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물론 나는 최대한 활용할 예정이다. 누구는 좋아서 밴드 만드는 줄 아나.
마흔 넘기니 남은 삶이 보이고, 욕하는 시간도 아까워, 정치나 현실 비판에 일정 부분 거리를 두어왔는데, 코로나 시기의 기록을 몇 자 남겨두려고 쓴다. 담주부터 당국이 뭐라하건 일체 흥분하지 말고 반응하지도 말고 내 수업이나 준비하자.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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