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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시와 소설

알로하, 나의 엄마들 | 이금이 — 백 년 전 하와이 이주 여성들의 삶

by 릴라~ 2020. 5. 29.

겨우 40쪽을 넘어가고 있을 때부터 울컥, 눈시울이 찡해졌다. 아직 특별한 스토리가 전개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일제강점기 그 시절 작은 마을의 어디에나 있었을 법한 평범한 여인들을 묘사하고 있는데, 계속 마음이 흔들거렸다. 아마도 그것은 이 이야기가 우리들의 어머니, 더 나아가서는 할머니 세대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저녁 나절에 단숨에 다 읽었다. 

 

착하고 속깊은 버들이, 씩씩하고 대범한 홍주, 숫기 없는 여린 송화. 가난했지만 세상 물정 모르는 이 순박한 여인들이 사진 한 장 보고 하와이에 시집가면서 벌어지는 삶의 역정. 도착 첫날부터 산산이 깨어진 꿈. 이민자로 살아가는 일의 힘겨움. 가족 이상으로 끈끈한 자매애, 밑바닥 노동자지만 고향과 조국에 대해 품었던 애틋한 마음씨.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드라마로 태어나서 우리를 한 시대의 절절한 풍경 속으로 초대한다. (하와이 이주는 1903년 대한제국 때 시작되어 1905년 일제가 금지할 때까지 약 7200명이었고 대부분 독신 남성들이었던 이들이 조선인 여성을 구해 '사진 결혼'을 한 시기는 1910년부터 1924년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 것은 이 세 여인들의 '착함'이었다. 아버지가 9살 때 의병으로, 오빠가 일제 순사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배움을 포기하고 어머니를 도와 생계를 꾸려갔던 버들이, 부잣집 딸이지만 아버지가 양반가와 혼인하려는 욕심에 병든 남자에게 시집가서 두 달 만에 과부가 된 홍주, 무당 딸이라고 어릴 때부터 온갖 천대와 질시를 받았던 가련한 송화. 이들이 생의 탈출구로 택한 하와이는 낙원이 아니라 더한 질곡이 기다리는 땅이었다. 

 

그 앳된 청춘들은 도찻 첫날부터 인생의 모든 꿈이 산산이 무너져내리는 경험을 한다. 하지만 그녀들은 애써 마음을 추스리고 그곳에서 살아갈 길을 찾는다. 조선에서 그랬듯이 주위 사람들을 먹이고 입히고 돌보는 일을 천직으로 생각하며, 그들이 지녔던 '착함'도 잃지 않는다. 주위 모든 조건이 그녀들에게 적대적이었지만, 세상을 한탄하지 않고 그녀들이 지닌 착함으로, 씩씩하고 선한 힘으로, '여성적인' 힘으로 생을 개척해간다. 우리 시대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 어쩌면 그것이기에 그녀들의 '모성'이 신선한 감동을 준 것 같다. 

 

소설에서 아쉬운 점은 마지막 장에서 시점의 이동이 좀 어색했다는 점. 버들이, 홍주, 송화 이 세 여인들을 모두 어머니로 둔 딸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기에 작가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가지만, 시점 변화가 너무 갑작스러워서 처음엔 좀 어색했다. 그리고 또 하나. 버들이 남편인 태완을 비롯하여 남성 캐릭터가 너무 평면적이고 밋밋하다. 세 여인이 주인공이다보니 그렇겠지만 남자들이 다만 배경으로만 기능하는 듯한 느낌이 있다. 

 

그런 조금의 아쉬움을 제쳐놓는다면, 정말 좋은 소설이다. 버들이, 홍주에 비하면 조연 격으로 등장하지만 작가가 가장 애정어린 연민을 기울인 캐릭터는 '송화'지 싶다. 사람은 위아래가 없이 모두 평등하다는 것을 무당 딸 '송화'를 통해 따스하게 공감하게 하는 소설이다. 이렇게 작가는 그 시대 여성들에게 가혹한 운명처럼 주어졌던 '야만'을 그녀들의 씩씩한 생명력과 강인한 우정으로 결국은 넘어서고 마는 소설을 그려내었다. 이런 책을 읽으면 소설가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인류사에서 지금껏 행해진 모든 야만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지속시켜 온 힘은 평범한 그녀들의 그 '돌보고 먹이고 살리는' 힘에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우리 모두의 어머니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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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애기씨들 시상에 나오기도 전부터 보따리 이고 방방곡곡 안 다닌 데 없습니더. 양반집, 상놈집 할 것 없이 사람 사는 꼴 안 본 기 없습니더. 지 결론은 뭔지 압니꺼? 사람은 다 똑같다는 기라예. 양반, 상놈, 부자, 거렁뱅이 다 같습니더. 양반이라 더 아프고 백정이라 덜 아픈 게 아이라예. 자식 애끼는 부모 맘도 마찬가집니더. 손녀 생각하는 금화 맘은 애기씨 어무이들 맘이랑 똑같은 기라예. 애기씨들도 여서 더 낫게 살 수 있으면 뭐 할라꼬 부모 형제 떨어져 그 먼 데로 가겄습니꺼. 여서 지대로 몬 살겄어가 새 시상 찾아가는 기 아입니꺼? 송화한테 측은지심 품고 여서도 포와 가서도 동기맨키로 잘 지내이소. 나이도 동갑이라예." 

 

 

https://youtu.be/sHVgF_k-Ez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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