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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이야기/국내 답사 영상

[밀양 여행 01] 약산 김원봉 선생의 고향을 찾다 / 영남루, 해천 항일운동테마거리, 의열기념관

by 릴라~ 2020. 8. 4.

https://youtu.be/TjjXRrDQBX0



언젠가 한 번 가야지, 가야지 했던 밀양에 드디어 다녀왔다. 약산 김원봉 선생의 고향이라 한 번은 꼭 가보고 싶었던 곳. 몇 년을 별러 갔는데 밀양은 우리집에서 딱 40분 걸렸다. 수성 IC에서 밀양 IC는 기껏 20분 정도. 완전 허무. 이렇게 가까웠다니. 1시간 반은 걸릴 줄 알았는데 넘 가까워서 후회했다. 진작 가볼 것을.

밀양의 대표적 유적, 도심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 영남루에 먼저 들렀다. 1844년에 지은, 영남제일루라 불리는 영남루는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조선시대 3대 누각이라 한다. 외관은 그리 커보이지 않았는데, 신발을 벗고 누각에 올라서니 실내가 훨씬 넓다. 나무의 시원한 감촉을 느끼며 잠시 걸었다. 영남루에서 보는 밀양강의 풍광도 괜찮았다. 지형이 특이하다. 영남루 건너편으로 보이는 건 밀양강 사이에 생긴 섬이다. 아파트 단지가 있을 만큼 크기가 적지 않다.

영남루 마당 맞은편에도 옛집이 한 채 있었다. 궁금해서 들어가보았는데 매우 특이하고 인상적인 장소다. 이름은 '천진궁'. 단군부터 시작해 우리나라 역대 왕조 시조들의 위패를 모두 모신 집이었다. 조선 현종 때 만든 것을 일제가 땅에 다 묻어버렸다가, 해방 후에 지역민들이 복원했다고 한다. 이 집에 모신 위패는 단군을 비롯해, 신라, 백제, 고구려, 고려의 시조는 물론 부여, 가야, 발해의 시조까지 다 있었다. 이들 8왕조 모두를 조상으로 여겼다는 점이 신선했고 민족사적 관점에서 의미 있는 장소다 싶었다. 이런 것을 다른 어디에도 본 적이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영남루와 천진궁을 나와서 바로 곁에 있는 사명대사 동상을 보고(이분도 밀양 출신), 길을 따라 죽 내려오면 밀양아리랑시장이다. 백종원의 3대 맛집이라는 돼지국밥집이 있는 곳. 식사 때가 아니어서 그냥 지나갔다. 밀양아리랑 시장을 통과해서 조금 더 걸어가면 해천독립운동 거리가 나온다. 거기에 의열기념관이 있다.

해천은 밀양 도심을 지나가는 작은 시내인데, 이 해천 주위로 김원봉 선생을 비롯해서 많은 독립운동 지사들의 생가가 붙어 있었다. 그들이 어린시절 뛰어놀던 이 해천을 그래서 거리로 명명한 것이었다. 해천도 잘 가꾸어놓았고 천변의 작은 상가들도 옛모습을 살리면서 벽화 등으로 정비되어 있어서 새로 아무렇게나 지어진 빌딩이 주는 생경함이 없이 친근하고 좋았다.

이곳에 살았던 독립지사 중 가장 유명한 분은 김원봉과 윤세주이다. 김원봉 선생의 생가터에 의열기념관이 들어섰고 그 바로 곁에 윤세주 선생의 생가터가 있다. 윤세주 선생의 생가터엔 비석 하나가 그의 뜻을 기리고 있다.

일제강점기, 가장 치열하고 순수하게 싸웠지만 월북했다가 숙청되는 바람에 남과 북 어디에서도 기림을 받지 못한 약산 김원봉 선생. 아직 독립운동가 서훈도 받지 못했다. 김원봉 선생을 필두로 한 의열단과 조선의용대는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열렬하게 투쟁한 분들이다. 민족사가 두 동강 나면서 그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분들.... 이분들의 뜨거운 열정을 기억하는 공간 '의열기념관'이 생겨서 그나마 허전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작년에 개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의열단을 기리는 유일한 장소라고 한다.

기념관 1층에서 신채호 선생이 쓴 '조선혁명선언'이 보여 반가웠다. 이 글 또한 다른 전시관에서 잘 보지 못한 것 같다. 이어서 의열단 창립 멤버와 간략한 역사, 관련 사진 자료 등의 전시물을 보았다. 조선의용대가 마지막까지 싸웠고 윤세주 선생이 전사하신 중국 타이항산(태항산) 일대도 언젠가 꼭 답사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밀양시립박물관 안에 있는 밀양독립운동기념관. 해천 독립운동거리에서 보았듯이 이 지역 출신 독립지사가 많아서 시립박물관 안에 따로 기념관을 마련한 것 같다. 밀양은 안동과 함께 경상도에서 가장 많은 독립지사를 배출한 고장이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이렇게 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독립지사들이 나오는 걸 보면 성장하면서 주변에서 보고 들은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대구에도 대구박물관에 이런 기념관이 있으면 더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립운동기념관에는 의열단 관련 자료가 좀 더 있었는데, 내게 가장 큰 놀라움을 준 것은 김원봉 선생의 여동생 되시는 분의 인터뷰 영상이었다. 김원봉 선생 형제들 중 유일한 생존자라고 한다. 선생의 남자 형제들은 선생이 월북하는 바람에 모두 '보도연맹'에 가입이 되었고,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 때 모두 희생되었다 한다. 어쩜 이런 비극이 다 있을까.

요즘 학생들은 학교에서 관련 내용을 조금은 배우지 싶은데, 나만 해도 학교에서 독립운동사에 대해 제대로 배운 것이 거의 없다. 대학 때는 현대사 관련해서는 새롭게 접한 것들이 있으나 그보다 좀 더 이전, 해방정국이나 독립운동사에 대해서는 당시 관련 연구가 충분치 않고 책도 잘 없어서 잘 몰랐다. 마흔 넘으며 조금씩 알아가는 역사공부가 재미있고 의미 있을 때도 있으나 마음 편하지 않을 때도 많다. 뒤틀린 민족사의 조각조각을 만나는 것이 내게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세월만 속절없이 지나간다는 무상한 감정을 남기기 때문이다.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부분이 차고 넘치니.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금씩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리라. 이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하고. 아직은 잘 모르지만, 뒤늦은 탐구를 계속하다보면 지금의 몽매에서 벗어나 좀 더 건강한 관점과 결론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희미한 희망을 품어본다.

*2020년 6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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