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이 지루하고 재미 없는 이유는? 돈을 많이 벌어도 불행한 이유는? 김정운 작가는 말한다. 공간이 지루하기 때문이라고. 우리에게 '슈필라움'이 없기 때문이라고.
독일어 '슈필라움'은 우리말로 하면 '놀이방'이란 뜻인데, 그냥 노는 공간이 아니란다. 내가 내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공간, 나의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는 공간,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생각할 수 있고 생산할 수 있는 그런 오롯한 나만의 공간, 이런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문화심리학을 전공한 김정운 작가는 교수로 재직하다가 나이 50에 훌쩍 사표를 던지고 그림을 배우고 지금은 여수 바닷가의 한 섬에 '미역창고'라는 작업실을 만들어 지낸다. 창조적 삶과 공간의 문제를 그 나름대로 끊임없이 사유한 결과이다.
그는 다른 강의에서 창의성이란 기존의 것을 '새롭게' '편집'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우리가 가진 재료들을 다르게 '편집'하는 것이 창의성의 본질이며 우리는 우리 삶을 스스로 '편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어쩌면 슈필라움은 그런 '편집'이 가능한 공간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학교가 지루한 이유도 학교 공간의 성격도 한 몫 할 것이다. 지루한 공간, 무언가 새로운 것을 상상할 수 없는 공간, 삶의 재편집이 일어나지 않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운 작가의 ‘슈필라움'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최근 내 마음에서 무럭무럭 피어나는 공허함의 한 원인을 짐작했다. 올해 이사하고 내 방이 사라진 것. 두 명 사는 집에, 방이 세 개인데, 하나는 침실, 공부방, 하나는 옷방이다. 그런데 이 공부방을 D가 코로나로 재택근무하며 점점 차지하더니 D의 물건으로 점령된 D의 방이 되었다. 내 컴퓨터와 내가 논문 쓸 때 산 커다란 원목 책상도 빼앗김. ㅠㅠ 거실은 꽤 넓으나 내 고유의 공간은 아니다.
결론. 어쩌다보니 옷으로 채워져 옷방이 되어버린 작은 방을 치우고 정리해서 내 방으로 새로 꾸미는 것. D가 차지한 남쪽 환한 방보다는 못하지만, 재택근무가 더러 있는 D에게 양보하고 내 공간을 만들기. 생각해보니 내 책상 없어진 게 올해가 처음이다. 거실 소파에선 누워서 아이패드나 보게 된다. 공간이 삶을, 활동을 만든다는 말이 맞는 듯.
새로운 생각과 활동이 솟아나는 공간, 내게도 슈필라움이 절실하다. 활동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활동에 앞서 공간을 창조하는 데서 시작하라는 김정운 작가의 말이 최근 이것저것 탐색하며 들은 내용 중에 가장 시의적절한 조언이다.
**김정운 작가 인터뷰 youtu.be/zqz5PPU0F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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