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이런 책이 나오길 바랬다. 교육학 공부를 하면서 교육학 이론을 현장과 연결해서 쉽게 설명하는 책이 나오면 좋겠다 했는데 올해 나왔다. 저자가 현직 교사로 꽤 일하다가 교수로 옮겨간 사람이라 가능한 것 같다. 이 책에는 우리가 대학에서 이름을 들어본 거의 모든 교육학자들이 한 번씩 등장한다.
하지만 이 책은 그들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교육과정-수업-평가 혁신을 위한 교사의 전문성], [혁신교육에 대한 철학적.사회학적 성찰]이라는 두 가지 주제로 교사가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머뭇거리게 되는 모든 지점들을 친절히 짚어가면서 교육과정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교육에서 변화를 이끌어낼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현장의 문제를 골고루 건드리되 이를 관련 이론/철학과 함께 개념화한다. 그래서 <교사를 위한 교육학 강의>이다. 교사들에게 교육학 책 한 권을 추천한다면, 현재로서는 이 책이 으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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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교육과정 재구성의 시작은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버릴 것인지"를 정하는 것입니다.
'살리는 것'과 '버리는 것', '채우는 것'과 '비우는 것' 중 무엇이 먼저일가요? '버리는 것, 비우는 것'이 먼저일 겁니다. 먼저 비워야 그 자리에 무언가를 채울 수 있지요. "비본질적인 것을 비운 자리에 본질적인 것을 채우는"것이야말로 혁신의 시작입니다. 이를 '무용의 유용성',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이라 할 수 있겠지요. 마치 유리잔에 텅 빈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곳에 물을 채울 수 있는 이치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육과정 재구성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르칠 내용이 너무 많다면 새로운 내용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학생들 머릿속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우격다짐으로 채워 넣는다면 그 가운데 제대로 기억해 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교육과정 재구성의 출발점은 역설적으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비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비본질적인 것을 비워 낸 자리에는 본질적인 것을 채워야 합니다. 다시 말해 '교사가 반드시 가르쳐야 할 것', '학생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것'을 살려야 합니다. 살려야 할 것은 크게 보아 교육이념과 교과별 성취기준 두 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p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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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천적 장애를 극복한 인물 헬렌 켈러가 위대한 이유는, 그가 선천적인 장애를 극복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장애를 극복한 이후에 평생을 여성운동가, 장애인권운동가, 노동운동가로 살았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미국 교과서는 이 점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교과서는 그가 '보는 법, 말하는 법'을 배웠다고 알려 주지만 그가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지배집단이 의도적으로 배제한 '영 교육과정'의 사례입니다. 공식적 교육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배제된 영 교육과정을 성찰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교사의 몫입니다.
지금 우리 학교에서 시급히 찾아내야 할 영 교육과정은 무엇일까요? 최근 상태, 인권, 노동, 평화 등의 가치를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것도 그동안 국가교육과정에서 배제되어 온 영 교육과정을 성찰하는 흐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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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이 학교에 일부러 나오지 않는 것을 '수업 거부' 현상이라고 한다면,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것은 '수업 소외'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즉 수업시간에 배우는 내용이 자기의 삶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몸은 교실에 있지만 사실상 교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상태입니다. 다소 과장을 하자면 이들은 '교실 내 투명인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사토 마나부는 수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 즉 '공부에서 배움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배움의 공동체'론의 등장 배경입니다. '배움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 학생과 학생 사이에 '서로 배우는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교실 수업은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성의 시공간'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때 말하는 관계성은 다시 '교사와 학생의 관계', '학생과 학생의 관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교사의 수업 기술'이 아니라 '교실에서의 관계성'입니다.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 학생을 깨우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수업 소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관계성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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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지식교육의 폐해를 비판하면서 인성교육, 감성교육 등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비고츠키는 '고등정신기능의 형성'을 강조합니다. 얼핏 보기에 비고츠키는 기존의 지식 위주의 교육을 옹호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식교육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라 '진정한 지식교육'이란 무엇인가입니다. 요즘은 4차 산업혁명을 하도 강조하다 보니 창의성을 중시합니다. 하지만 창의성 역시 기초적인 개념적인 지식과 무관한 것은 아닙니다.
인간과 다른 동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생각하는 능력'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비고츠키는 이 '생각하는 능력'을 '기초정신기능'과 '고등정신기능'으로 나누었습니다. '기초정신기능'은 '수동적이고 반응적인 정신기능'이고 '고등정신기능'은 '능동적이고 의지적인 정신기능'입니다. 이 중 '기초정신기능'은 인간이라면 태어나면서부터 갖게 되는 생물학적 특성입니다. 그러나 '고등정신기능'은 단순히 인간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길러지는 것은 아닙니다. 비고츠키는 인간의 고등정신기능을 범주적 지각, 자발적 주의, 논리적 기억, 개념적 사고 등으로 나누는데, 이는 목적의식적인 학습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학습은 학교에서의 학습만이 아니라 문화적 환경이나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
유아와 아동의 단계를 넘어선 처옷년기에 접어들어서야 아이들은 '개념적 사고'를 하기 히작합니다. '개념적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대상을 일정한 범주에 따라 구분하고 공통적 속성을 추출하는 추상적 사고', '원인과 결과를 연결시켜 생각하는 논리적 사고', '일상적 현상과 그 속에 담겨진 본질을 파악하는 비판적 사고' 등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변증법에서 말하는 '구체/추상', '경험/이론', '일상/과학'의 통일에 의해 '개념적 사고'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누구나 '개념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흔히 사회성이나 도덕성이 미숙하여 질타를 받는 성인을 보면, 사회성이나 도덕성 이전에 개념적 사고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문화적 발달 단계를 거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합니다. 이렇게 유아기적 사고단계에 머물러 있으면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는 능력도 길러질 수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식교육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비고츠키의 이론이 전통적 학문 중심 교육이론과 만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교육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인류의 오랜 지혜가 담긴 수학을 통해 학생들은 대상을 범주화하고, 추상적 개념을 도출하며, 추상적 개념을 다시 생활세계에 적용하는 고등정신기능을 키울 수 있습니다. 다만 지나치게 어려운 난이도의 수학 교육과정, 수학을 서열화의 도구로 악용하는 입시제도 탓에 학생들이 진정한 개념적 사고를 키우는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오히려 단편적인 문제풀이에 질식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요즘 교육계에서 강조하고 있는 '창의력'도 '고등정신기능'과 무관한 것이 아닙니다. '창의력'이라고 하면 마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현실과 무관한 상상'은 '망상'에 불과합니다. 비고츠키는 창조란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머릿속으로 생각해내는 것이며, 이를 다시 현실 속에서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일부의 오해와는 달리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별도의 교육이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등정신기능을 기르는 충실한 기본 교육 속에서 창의력 신장이라는 방향이 설정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고등정신기능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자아실현을 위한 '자유의지'를 지향합니다. 인간이 자유의지를 가졌다는 것은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복잡다단한 현실세계 속에 작동하는 법칙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논리적이고 비판적으로 파악하는 기본적인 능력 위에,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세계를 더욱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혁하는 의지가 작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유의지를 가진 주체적인 인간'이야말로 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인간의 전면적 발달'이라 할수 있습니다. p185-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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