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소년이 있었다. 식민지 시대 황국신민을 꿈꾸던. 그는 학교 다니는 것이 즐거웠고, 일본 창가의 서정성에 매혹되었으며, 일어를 잘하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3.1운동에 참가한 적이 있던 아버지와 점점 멀어졌다. 학교를 졸업할 무렵에는 태평양전쟁에 자원 입대하려 했으나 단 하나뿐인 아들을 죽게 놔둘 수 없다는 부모님의 반대로 사범학교에 진학하면서 내심 아쉬워한다.
시대가 그랬던 탓에 소학교에서 학생들은 조선어 수업을 하찮게 여겼다. 그마저도 나중에는 없어지고 말았지만. 조선어를 가르치던 선생은 두상이 좀 삐딱해서 외모 때문에 더욱 아이들의 놀림을 받았다. 그런 선생이 어느 날 교실에서 펑펑 통곡하는 일이 벌어진다. 시험 날이었다. 그림을 보고 '잔치를 합니다'라는 문장에서 '잔치'를 적어야 하는데 아이들이 서로 짜고 '자지'를 적었기 때문이다. 소년도 그 일에 가담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 화장실 벽에 '조선독립만세'라는 낙서가 발견된다. 범인이 누구인지는 모르나 조선어선생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그는 학교를 쫓겨난다.
그렇게 황국신민을 꿈꾸었고 다른 세상이 있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소년에게 해방은 충격이었다. 그리고 해방 후에 본 풍경은 더욱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아무 것도 제대로 해낼 줄 아는 것이 없을 것 같았던 조선인들이 자발적으로 조직을 만들어서 세상을 경영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은 단 6개월만에 끝나고 미군정이 들어오고 다시 일제 시대 때의 경찰이 활개를 치면서 제주도는 무서운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지만, 식민지 소년은 각성한다. 해방 후에 그가 만난 지성적인 인물들, 최현 선생 같은 분들로부터 감화를 받고 세상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소학교 때 그를 가르쳤던 일본인 선생들은 개인적으로는 선량한 인물들이었고 열심히 가르쳤으나 그들은 조선에 대해서는 제대로 가르쳐준 것이 없었다고. 진짜 알아야 할 것은 배우지 못했다고. 그렇기에 그들은 결국 잘못된 체제에 봉사한 것이고, 그 교육은 옳지 않았다고.
황국신민을 꿈꾸었던 소년은 이제 청년이 되어 남로당에 가입하고 해방 후 미군정의 묵인 아래 제주도를 빨갱이섬으로 단정하고 벼랑으로 몰아넣는, 서북청년단이 설치는 공포정치에 저항한다. 그가 그의 친척들이 학살당한 장면을 회상하는 장면을 읽노라면 그 시대의 비극이 어느 정도로 처참했던가를 느끼게 된다.
하나 뿐인 아들을 구하고자 하는 일념에 청년의 부모는 전재산을 털어서 밀항선에 한 자리를 마련한다. 그리고 당부한다. 혹시 죽게 되더라도 우리가 보는 앞에서는 죽지 말아달라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라고. 청년은 다행히도 무사히 오사카에 도착하고 재일조선인으로의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시인이 된다. 그는 어린 시절, 자기 정신에 뿌리내린 일본어를 결코 벗어날 수 없었고 그래서 일본어를 낯설게 비트는 방식으로 시를 쓴다. 그것이 일본에 대한 저항이라 여긴다. 재일시인 김시종이다.
김시종 시인은 '화산도'를 쓴 김석범 선생과 함께 재일조선인 작가이자 제주 4.3을 비롯한 해방 전후사의 산 증인이다. 두 분 모두 90대신데 아직 살아계신다. 얼마 전에 '화산도'를 읽은 터라 김시종 시인이 쓴 자서전 '조선과 일본에 살다'가 주는 감흥이 더욱 컸다. 어디에서 이런 귀중한 기록을 읽는단 말인가. '화산도'에는 4.3으로 제주에서 일본으로 밀항하는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김시종 시인의 삶이 바로 그랬다.
이분은 조선인 국적이라 한국을 방문할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 때 임시여권을 받아 떠난 지 50년 만에 제주를 찾았다.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지만 친척이 마중 나왔다고 한다. 홀로 도망간 그를 원망할 줄 알았는데 친척들이 살아있어서 고맙다고 해서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나는 책장을 덮으며 '조선과 일본에 살다' 같은 소중한 역사의 기록을 남겨주셔서 작가에게 깊이 감사했다. 김석범, 김시종 이 두 분 작가를 뵐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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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어로 시를 쓰는 내게 해방이란 다감한 소년기를 뒤틀어가며 길러낸 저 일본어의 정감, 운율을 내가 끊어내는 것입니다. 나는 자신이 짜올리는 어색한 일본어를 가지고서 나를 길러낸 일본어에 보복할 작정입니다. 그 어눌한 일본어로 하는 수 없이 생각과 말을 지어내야 했던 것이 이 회상기 '조선과 일보에 살다'입니다. p7
식민지로부터 '해방'되려는 나의 편력은 식민지 조선의 넓은 역사를 아무리 뒤져보아도 보이지 않는 헐떡거림의 흔적입니다. 누구에게 가닿을지 모르지만 병에 담아 편지를 띄웁니다. p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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