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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역전마을 인터뷰 5 - 마을 우물가의 추억

by 릴라~ 2020. 11. 30.

**10월부터 경산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 지역 스토리텔링 부분에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총 11분을 인터뷰해서 글로 옮기는 작업인데 내가 쓴 글이라 기록으로 남겨둔다.

 

마을 우물가의 추억, 김00 씨

 

 

슬레이트집이 있던 풍경

 

일제시대, 코발트광산 일꾼들이 모여들면서 북적이기 시작한 역전마을. 지금 그 시대의 흔적은 많지 않다. 단칸방이 연이어 붙어 있는 좁은 골목길 정도가 남아 있어 옛모습을 짐작케 할 뿐이다. 바로 그 골목길 근처에 옛날에 역전마을 사람들 모두가 이용하던 마을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김00 씨의 집은 바로 그 우물가에 있다.

 

경산 압량 출신의 김00 씨가 스물셋의 나이로 역전마을에 시집올 때는 1960년대였다. 시집은 코발트광산 사무실과 사택으로 쓰던 집이었는데 그때는 이미 광산이 폐업하고 일반인들이 살 때였다고 한다. 김00 씨는 당시 풍경을 또렷이 기억하신다. 주택은 대부분 슬레이트집으로 주거환경이 매우 열악했다. 지붕이 날아가지 않도록 돌로 눌러 놓은 경우가 많았고 울타리도 없었으며 흙으로 만든 담 하나 정도가 눈에 띄었다. 단칸방에 여러 명이 살을 부비며 살면서 재래식 화장실을 공용으로 썼다. 집이 다 똑같이 생겨서 밤에 이 집 저 집 구분을 못하고 남의 집에 잘못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땅은 석탄 등 불순물이 많아 울퉁불퉁했으며 쇳덩어리 같은 것이 간혹 나오기도 했다. 부근에 연탄공장 관사도 있었다고 기억하신다.

 

마르지 않는 우물

 

김00 씨 집 바로 앞에 마을 공동 우물이 있었다. 마을 전체가 이 우물물을 먹고 살았는데 마을의 유일한 식수였다. 당시엔 우물에 지붕이 있었고 옆에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자라고 텃밭도 조금 있었다 한다. 아침, 저녁이면 우물가로 늘 사람이 몰렸다. 김00 씨에게도 이 우물은 생활에 가장 요긴한 존재였다. 물을 길어 보리와 쌀을 섞어 밥을 하고 설거지도 하고 이웃과도 가족처럼 지냈다. 주택간 간격이 좁고 옹기종기 모여 살다보니 주민들이 서로 사이가 좋았고 잘 뭉쳤던 시절이었다. 김00 씨는 동네 사람들과 우물가에서 다같이 찜통을 걸어놓고 칼국수를 끓여먹었던 일을 가장 즐거운 추억으로 꼽는다.

 

우물이 있는 땅은 김00 씨네 소유였다. 1993년에 옛집을 허물고 붉은 벽돌로 멋을 낸 2층 양옥집을 새로 지을 때 이 우물은 그대로 살려두었다. 집 설계를 하는 분이 우물을 메우는 게 설계상 더 좋다고 했지만 마을 분들이 우물을 없애지 말라고 했고 김00 씨 가족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렇게 마을 우물은 역전마을의 역사를 증명하는 유산으로 살아남았다. 우물 지붕만 없어졌을 뿐 뚜껑도 도르레도 옛날에 쓰던 것 그대로이다. 한겨울 가뭄에도 마르지 않았다는 이 우물은 지금은 동네 사람들이 허드렛일을 할 때 쓰이곤 한다.

 

빛바랜 사진 한 장

 

인터뷰는 우물 앞에 야외용 의자를 놓고 진행했다. 마침 그날이 시어른 제삿날이라 김00 씨의 며느리 되는 분도 와 계셨다. 인터뷰를 듣던 중, 생각나는 게 있다며 집에 들어가더니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을 들고 나오신다. 사진 속에는 우물을 배경으로 키 큰 청년이 한 명 서 있고 뒷편으로 마을 사람들 모습도 보인다. 청년은 김00 씨의 남편 태00 씨였다. 성주 출신으로 역전마을에 정착한 남편 분은 건축일을 하셨는데 골목에서 내다보이는 경산여고를 지을 때도 참여하셨다 한다. 그때 김00 씨는 인부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일을 하셨다. 원래 손이 크고 요리 솜씨가 좋으시단다. 우물 옆에 양은솥 큰 걸 걸어놓고 추어탕 같은 걸 자주 하셨다고 며느리가 이야기를 보탠다.

 

이렇게 솜씨 좋은 분이건만 젊었을 때는 시집살이를 좀 하셨다 한다. 국광, 홍옥, 부사가 주를 이루던 시절에 사과밭에서 품삯 받으며 일하신 적이 있고 IMF가 터지기 전까지 정평동에 있던 직물공장에서 일하시기도 했단다. 그렇게 역전마을에서 오십 년 세월을 통과하면서 삼남매를 다 키워내셨다.

 

지금은 김00 씨가 젊은 날 지나다녔던 사과밭과 논에 다 아파트가 생겼다. 알고 지내던 분들이 병원에 가서 빈 집도 많이 생기고 동네 또한 예전만 못하다고 하신다. 하지만 역전마을이, 어렵던 시절을 탓하지 않고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가족과 이웃을 한결같이 먹이고 보듬어오신 분들의 터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마을 우물이 지난 세대, 수많은 어머니들의 손길을 기억하는 장소로 남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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