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부터 두 달간 경산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 지역 스토리텔링 부분에 자원봉사를 했다. 총 11분을 인터뷰해서 글로 옮기는 작업인데 내가 쓴 글이라 기록으로 남겨둔다.
시골서 사는 게 꿈이었죠, 배00 씨
꽃집으로 착각하는 집
경산역 입구에서 북쪽 방향으로 조금 걸어가면 행정복지센터 옆에 소담한 가정집이 한 채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꽃집이에요?” “꽃 팔아요?” 하고 묻게 되는 집, 영덕이 고향인 배향자 씨의 집이다. 대문 옆으로 보이는 작은 온실에는 각양각색의 식물이 걸려 있고 마당에도 개성 있는 화분이 한가득이다. 방문했을 때는 늦가을이라 꽃이 많이 졌는데 봄철에 꽃이 만개할 때는 훨씬 화려한 모습이라 한다.
배00 씨는 셋방살이 시절부터 이사할 때 짐보다 꽃이 더 많았다. 꽃이 그냥 좋고, 이 꽃에 반하고 저 꽃에 반해서 이것저것 키우셨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꽃을 좋아해서 초등학생 때도 빈터에 꽃밭을 만들었다. 노후에 시골의 마당 있는 집에 사는 게 꿈이었다고 하신다. 대구에서 살다가 경산에 나온 이유도 시골이 그리워서다. 경산이 그때만 해도 시골이었다며 수줍게 웃으신다.
이 집에 살기 전에는 한동안 부광아파트에서 살았다. 이웃과 즐거운 추억이 많던 시절이었다. 주민들이 서로 다 알고 지내며 이집 저집 오라 해서 음식을 나눠먹었는데 그게 재미고 추억이었다 하신다. 누군가에게 좋은 일 생기면 스피커 틀어놓고 잔치도 하고 아파트가 마을 같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역전마을의 풍경이다.
1998년에 지금 사시는 집을 지어서 이사했다. 이제 20년이 좀 넘은 집이다. 마당에 꽃도 실컷 가꾸고 개도 한 마리 키우고, 소녀 적에 바라던 대로 살고 계신다. 전문가 솜씨로 느껴지는 화분이 많아서 여쭤보니 직접 익힌 솜씨였다. 분재는 자인 농촌지도소에서 조금 배웠지만 다양한 꽃을 심고 접붙이는 과정에서 스스로 터득하셨다 한다. 그리고 꽃만 가꾸신 게 아니라 삶도 그만큼 곱게 가꾸어오셨다.
초등학교에서 시작한 봉사활동
배00 씨는 학교 어머니회를 시작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하셨다.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사정을 들여다보니 부모가 공장에 가고 돌봄을 못 받는 아이들이 많아서 봉사를 시작하셨다. 학교에서 정아 엄마로 유명했다고 한다. 자녀들이 어려서 손이 많이 갈 때인데 다른 어려운 아이들을 돌봐주니 담임 선생님들이 너무 좋아하고 고마워하셨단다.
그렇게 인연이 넓어지다가 119에서 하는 여성 소방대에 참여하게 되었다. 산불 났을 때 뛰어가 돕고, 홍보도 많이 하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서서 도움을 주는 단체였다. 그밖에도 적십자, 새마을 운동 등 다양한 봉사에 참여하시고 이름 모를 여러 활동도 많이 하셨다. 마을 통장도 하고 치매 걸린 시어머니도 모시고, 배00 씨가 아끼고 사랑하는 꽃만큼이나 고운 마음으로 살아오셨다.
경산역은 봉사 관련 교육을 받으러 서울에 갈 때 주로 이용하셨다. 무궁화호로 서울까지 네 시간 반이 걸리던 길이 지금은 KTX로 한 시간 반이다. 배00 씨는 기술의 발전을 보면 친정 모친 생각난다고 하신다. 모친은 라디오만 보다가 흑백TV가 나왔을 때, 저 안에 사람이 들어있냐며 감탄하곤 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좋아진 세상을 두고 가기가 아깝다고 하셨다. 지금은 모친이 살아계실 적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편리한 세상이 되었는데, 배00 씨는 오히려 옛날을 그리워하신다.
불편해도 옛날이 좋아요
배00 씨가 그리워하는 건 놀랍게도 1960년대다. 지금과 그 시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면 그때를 선택하겠다고 하신다. 불 때고, 우물물 길어먹고. 냇가에서 목욕하고 빨래하고, 자연 그대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하신다. 육체적으로 힘들고 생활은 불편하고 문화가 좀 뒤떨어져도 공기가 좋고 자연이 살아있는 편이 낫다고 하신다.
어릴 때 사랑을 많이 받으며 자란 게 아니냐고 여쭤보니, 6남매의 막내였다고 하신다. 모친이 40대에 배향자 씨를 낳아서 언니들이 엄마뻘 되는 언니들이 세숫물도 일일이 떠주며 챙겨주었다 한다. 부모 노릇해준 언니 오빠와 보낸 시간이 고운 사진처럼 배00 씨의 마음에 새겨져 있다. 늦둥이다보니 부모님과 일찍 헤어진 게 제일 슬프다 하신다. 엄마를 20년 더 많이 본 언니가 그렇게 부러웠단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연에 가깝게 사는 삶을 지향하는 배00 씨에게는 요즘 세태가 이해가 안 될 때가 많다. 젊은 사람들이 물건이나 전기를 함부로 쓰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모든 것의 재료는 자연이고 에너지를 쓰는 것도 자원을 태우는 것이다. 잔소리라 여길까봐 말은 잘 못하지만 배00 씨는 자연을 귀하게 여기고 필요 없는 건 아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신다. 교육이 방향이 있어야지 아이들이 해달라는 대로 휘둘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신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이처럼 자연을 아끼는 분이 동네에 있었으면 하는 게 뭘까 싶어서 여쭤보았다. 배00 씨는 광장이라고 답하신다. 경산역 앞에 널따란 광장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지금 역 앞에 공간이 조금 있으나 광장이라 할 만하진 않다. 광장을 중심으로 푸른 숲이 가꾸어지는 것이 배00 씨가 바라는 모습일 것이다. 작별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꽃에 반해서 평생을 한 송이 한 송이 만지고 가꿔온 분이 지닌 인격의 향기가 마음에 고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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