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행한 곳 중에서 '사람'이 정말 정답게 기억되는 나라가 둘 있다. 물론 어느 나라나 다정한 사람들이 있지만, 특정 몇몇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계산 없는 순수한 정감으로 다가왔던 곳. 변방의 오지, 캄차카 반도(2003년)와 2014년의 미얀마다. 캄차카는 지금은 어떨런지 모르지만 당시엔 자본주의적 느낌이 덜 나는 지역이었다. 삐끼가 없고 무언가 더 이익을 챙기려는 태도가 없는, 순박하면서도 기품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미얀마는 저개발국임에도 믿을 수 없이 안전했고 사람들이 정직했고, 아, 이게 불교국가구나 하고 느낄 만큼 온유한 사람들을 만났다.
요즘 미얀마 뉴스가 종종 나온다. 만달레이라는 지명을 들을 때마다, 강렬한 햇살을 맞으며 쏘다녔던 도시 구석구석의 풍경이 떠오르고 마음 한켠이 무거워진다. 지금 미얀마 사태를 보면, 적어도 군부와 권력자들은 불교적인 심성과 전혀 관련 없음을 알게 된다. 그들에겐 요만큼의 생명 존중 태도도, 동포에 대한 연민도 없다. 명진스님 채널을 보니 미얀마의 직책 있는 고승들도 이 사태에 침묵을 지키며 권력자들에게 동조한다고 한다. 저항하는 것은 힘없는 보통 시민들이고 이름 없는 젊은 승려들이다. 불교국가라지만 군부는 예외다.
이 모습을 보면 나는 조선이나 서구도 과거에 이랬겠구나 싶다. 조선은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내걸었지만 왕족이나 권력자 중에서 진정으로 '선비다운' 사람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유교는 백성을 다스리는 이념이었지 양반 관료들 중에서 진정으로 국가에 충성하는 이는 드물었다. 조선 후기에는 아예 씨가 말랐다. 그들에게 유교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서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기독교의 휴머니즘은 권력자들에겐 장식품이었을지도.
대다수 미얀마 사람들의 선량함을 생각할 때, 선량함만으로는 결코 악한 권력을 상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폭력에 맞설 수 있는 것은 폭력 뿐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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