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heshe.tistory.com
학교 이야기/schooling

또 한 번의 스승의 날을 지나며

by 릴라~ 2021. 5. 20.


이십 여년 담임 생활 중 학생들과 잘 안 맞는 해도 꽤 있었다. 작년도 그런 해 중 하나였다. 와, 진짜 선생 못하겠다 싶은 마음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었다. 돌이켜보면 2004년, 2010년, 2015년, 2020년이 내겐 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해였다. 저 네 번 중에 세 번은 담임 일만 고되었는데, 2015년은 총체적 난국, 교장하고도 맨날 싸우고(라고 썼지만 대개 내가 괴롭힘을 당하고) 동료와도 손발이 안 맞고. 그때는 정말 사표 쓰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물론 나는 생계형 교사라 절대 그만두지는 못한다.

아무튼 최근에는 2019년에 참 좋은 학생들을 만났고 2020년이 최악이었다. 우리 반에 말썽꾼 남학생 세 분이 포진해 계셨는데, 이 세 분이 시시덕거리며 힘을 합쳐 늘상 규칙을 위반하니 담임으로선 난감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니, 남학생이 말은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말꼬투리잡기의 달인이었다. 하도 말이 많아서 "아니, 남학생들이 웬 말이 그렇게 많냐"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더니 제 잘못은 간데 없고 "남녀차별"이라면서 바락바락 대드는데 와~ 싶었다. 보통 남학생, 그것도 중1, 2, 3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귀여운 1학년은 교사 말꼬투리를 잡고 항의하는 일은 잘 없기 때문이다.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배운 행동인지는 몰라도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이 교사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꼬투리 잡아서 공격하는 학생은 작년이 처음이었다.

코로나로 얼굴도 못 보고 시작한 학기라 처음부터 너무 친절했던 것 같다. 이 세 분은 2학기가 되니 내 말을 우습게 여기기 시작했고, 이대로 가다가는 교실 분위기가 무너질 것 같아서, 늦었지만 스타일을 바꾸었다. 힘으로 누르는 걸로. 말썽꾼이 한 분이면 그 분만 제압하면 되는데, 세 분이 합심하여 분위기를 흐리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인원 수가 29명이나 되는데, 무섭게 소리치고 혼내면서 쉬는 시간마다 교실과 복도를 감시, 어째어째 간신히 학생들을 눌러놓고는 있었는데, 체력이 딸려서 간신히 버텼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코로나로 방학을 2주 빨리 하게 되어 살았지만, 결국 그 일주일 전에 열이 37.5도 이상 오르고 토하고 난리법석을 떨어서 코로나 검사로 학교를 이틀 쉬는 일도 생겼다.

물론 우리 교실엔 참하고 좋은 친구들도 꽤 있었다. 그런데 편안하게 웃으면서 수업을 시작하면 세 분이 미쳐 날뛰니 무섭게 인상 쓰고 수업을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교실이 무너지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아마 학급당 인원 수가 29명인 탓도 있으리라. 20명 정도면 말썽꾼도 다른 반으로 흩어지고 교사가 좋은 말로도 분위기를 잡기가 훨씬 수월하다. 결국 참한 학생들과 래포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하고, 수업도 예년보다는 훨씬 딱딱하고 재미없게 진행된 경우가 많았다. 이런 한 해가 끝나면 정신적, 육체적으로 소진되었다는 느낌 뿐이다. 교사가 수업활동 중에 얻는 소소한 기쁨들과 학생들과의 연대감이 교사에겐 학교에서의 시간을 버티게 하는 힘이다. 그것이 빠지면 교직은 그냥 노가다다. 아무튼 작년은 그랬다. 마음이 늘 불편했다.

그런 와중에도 우리 반이었던 두 학생은 작년의 기억을 따스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세 분과 맨날 싸우느라고 이 선량하고 밝은 친구들과 작년에 많이 소통하지 못한 게 아쉽다. 문자를 보내온 이 두 친구 모두 글쓰기를 좋아하는 학생들이었다.

이런 문자를 받을 때면, 학교에서 교사는 온갖 잡다한 일을 매일 같이 수행하지만, 가장 소중한 일은 '수업'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한다. 나는 수업은 공을 많이 들이지만 다른 일은 설렁설렁 하기에 언제부터인가 관리자로부터 '게으른' 교사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내 한계를 잘 안다. 사람이 모든 일을 다 잘할 수는 없다. 나로선 선택과 집중을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찍 퇴근한다고 노는 교사는 아니다. 나는 책을 읽든, 박물관에 가든, 여행을 가든, 모든 여가와 지적 취미에서 수업에 영감을 주는 것들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제 교직에 있을 날도 길어야 십여 년 정도이다. 20년을 넘기니 이제서야 비로소 내가 가르치는 과목에 대해 뭔가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간 잡다한 일에 육체를 갈아넣어온 지라 벌써 몸과 마음이 시들시들하다. 앞으로 언제까지 버티나 싶기도 하다. 그래서 앞으로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더 과감히 버리고 목표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남은 시간 동안, 지식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 탐구심, 지적 도전, 그런 것들을 불러일으키는, 지적인 태도를 갖게 하는, 다른 차원에서 대상을 바라보면서 다른 관점을 경험하는 그런 수업을 구상해보고 싶다.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 텍스트를 '탐구'하는 법을 배우는 그런 수업. '탐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는 수업.


덧붙임) ‘스승의 날’을 ‘교육의 날’로 바꾸자는 실천교육교사모임의 제안에 동의한다.

 

300x25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