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 좀 봐봐."
K선생님이 핸드폰을 내밀었다. 사진 보관함에는 그반 남학생의 사진이 담겨 있었다. 한쪽 팔과 다리에 온통 뱀이 기어다닌다. 학생이 문신을 이렇게 많이 새긴 건 처음 보았다. 흡사 조폭 같았다.
"어머, 너무 심한데요? 이런 모양으로 학교 다닐 수 있어요?"
학교에서는 다 가리고 다닌다고 했다. 더운 여름에도 긴 팔과 긴 바지만 입는다고. 뭐 어려운 점 없냐고 학기초에 상담하니 학생이 문신 이야기를 하더란다. 여름에 더워도 절대 팔과 다리를 못 내놓는 게 답답하다고 하더란다. 학생 부친은 어릴 때부터 화가 나면 야구방망이부터 드는 사람이었다. 학생은 '때리지 마세요'가 아니라 '살려주세요'라고 비는 게 일상이었단다. 부친이 그렇게 폭력적이다보니 학생이 중학생이 되자 반항심에 문신을 새긴 모양이었다.
문신 제거 비용이 자그마치 천 오백만 원이란다. 원래 지우는 게 더 비싸다고 했다. K선생님은 학생이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안쓰러워 자기가 로또 당첨되면 지워주겠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야기를 했다 한다. K선생님이 근무하는 곳이 공고다보니 별별 학생이 다 있다.
우리가 이 이야기를 나눈 장소는 YMCA 강의실이었다. 지난 토요일, 친분이 있는 J교수님 강의를 들으러 그곳에서 접선한 참이었다. 몇 명이 오붓하게 듣는 강의다 보니, 강의 시작 전에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에 J교수님도 의견을 보탰다. 학생 문신을 꼭 지워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성형외과의사회나 뭐 그런데서 봉사해주는 데가 있을 거라고, 검색을 잘해보라고 하셨다.
사회적 지원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번 알아보겠노라고 답했다. 그리고 K선생님과 차 한 잔 하고 헤어진 뒤, 지하철을 타려고 역에 서 있는데 J교수님의 톡이 왔다. 당신이 백만 원 지원할테니 학생의 문신을 꼭 지워주면 좋겠다고.
모르는 학생에 대한 교수님의 적극적인 관심에 마음이 움직여 우리도 십시일반 하기로 하고 바로 알아보았다. 2018년에 대구피부과의사회가 교육청이랑 협약을 맺고 문신 제거 봉사를 하는 기사가 발견되었다. K선생님께 보내니 본인이 알아보겠다 하셨다. 얼마 뒤 연락이 왔다. 토요일인데도 그쪽과 연락이 닿았다 한다. 담당자랑 통화했는데 국장이 월요일에 전화할 거라고 했단다.
다음 주에 국장과 통화하고 학생 문신 사진을 보내고 면담 날짜도 잡고, 모든 게 일사천리로 잘 진행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엉뚱한 데서 문제가 생겼다. 학생이 오락가락 마음을 바꾸어 문신을 지우지 않겠다는 거였다. 막상 지우려니 아까운 듯했다. 학생이 새긴 문신은 조폭처럼 무서운 느낌인데 나름의 사회적 기능이 있어서 그런지 지금 지우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K선생님이 아무리 설득해도 안 되어 결국 대구피부과의사회에 전화해서 면담을 취소했단다.
그쪽에서 하는 말이, 문신 제거가 한 번에 지워지는 게 아니라 수십 번 치료해야 되는 거라서 도중에 포기하는 학생들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확고한 의지를 갖고 시작해야지 지금처럼 그런 마음으로는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를 했단다.
결과를 들은 J교수님은 학생 마음이 이해가 간다고 하셨다. 그게 나름 다른 사람을 겁주는 역할이 있는데 지우는 게 아까울 법도 하다고. 오락가락 하는 학생이 귀엽게 느껴진다고도 하셨다. 우리는 다음 기회를 기다릴 수밖에 없겠노라고.
문신 제거 소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 이 좋은 기회를 학생이 날려서 안타깝기도 하고(성인이 되면 그렇게 무료로 지울 기회가 잘 없을 텐데), 대구피부과의사회에서 이런 좋은 봉사도 한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되었다. 자신의 직업적 기술로 봉사하는 것만큼 좋은 일도 없다. 우리 사회에 이처럼 의미 있는 사회적 지원이 많은데, 학생이 졸업 전에 마음을 고쳐먹기를.
학교 이야기/schoo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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