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즘 이 재미로 살아요."
삼 년 전쯤에 친한 후배가 도자기 굽는 데 푹 빠졌노라며 한 말이다. 요새 그릇 굽는 것을 배운다면서 좀 할 줄 알게 되면 꼭 선물하겠노라 했다. 나는 흘려가면서 들었는데 얼마 전 자기가 구운 도자기 그릇을 안 깨지도록 꽁꽁 싸서 왔다. 삼년 전 약속을 기억하고 이렇게나 많이 선물하다니. 굽는데 한참 걸렸을 것이다. 상대방을 생각하며 오래 준비한 선물이라 감동 받았다. 큰 접시가 빠졌다면서 잘 배워서 큰 접시도 주겠다는데 이걸로 충분하다며 사양했다. 음식을 담으면 그릇이 훨씬 돋보인다.
2. "집 주소 좀 알려줄래?"
친한 선배, 더 정확히는 더러 연락을 주고받는 수녀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대학 때 성당에서 레지오활동을 같이 했던 선배다. 보내주고 싶은 게 있으시단다. 궁금해서 "어, 뭔데요?" 여쭈니 "아, 빵이야." 하신다. "수녀원에서 구운 빵을 보내주고 싶어서. 설탕, 소금 등 아무것도 안 넣은 담백한 빵이야. 당뇨병 환자가 먹어도 되는. 그래서 금방 곰팡이 생기니까 받자마자 냉동실에 얼려둬."
빵이 도착했다. 어성초비누 두 개와 직접 만든 수세미와 기도문 소책자와 직접 쓰신 엽서와 함께. 빵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아무 맛도 첨가되지 않은 그 맛이 고소하면서 쫄깃하기까지 했다. 어쩜 이렇게 맛나냐 했더니 프랑스에서 오신 신부님께 직접 배우셨다고 한다. 2주 동안 넘 맛있게 먹고나니 한살림 식빵도 맛없어서 못 먹겠다. 나도 빵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완전 나일롱 신자지만 주변에 있는 성스러운(?) 분들 덕분에 천국 문앞까지는 가보지 않을까 싶다. 아니, 천국은 나중에 오는 어떤 세상이 아니다. 지금 이분들이 살아가시는 모습이 천국이다.
3. "실이 많이 남아서 떠봤어요."
5인 이상 사적모임 금지로 딱 네 명이 만나는데, 후배가 손수 코바늘로 뜨개질한 핸드폰집을 모두에게 선물한다. 스트레스 풀려고 실을 주문해서 뜨개질을 시작했는데 실이 너무 많아서 만들고 또 만들었단다. 나는 이런 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스트레스 쌓이는데 신기! 다들 색깔이 고상하다고 폭풍 칭찬!
4. "원 플러스 원 행사하길래 샀지요."
같은 후배가 준 선물. 밥 사준다고 한 달쯤 후에 불렀더니 이렇게 알록달록 예쁜 차세트를 선물한다. 원 플러스 원 행사해서 한 개 값으로 두 개 샀다고 말하면서. 유통기한이 많이 남지 않았는데 괜찮냐고 묻는다. 당연히 괜찮다고 고맙다고 했다. 유통기한 좀 넘겨도 잘만 먹는다고. ㅎㅎㅎ 틈날 때마다 종류별로 하나씩 꺼내먹고 있다.
5. "엄마가 직접 볶으신 거야."
주말에 우리집에서 점심 먹으라고 초대했더니 친구가 들고 온 선물. 그냥 빈손으로 오라고 단단히 당부했는데 집에 있는 걸 챙겨 왔다. 친구 어머니께서 직접 볶으신 콩이다. 건강 간식!
그리고 자신이 먹는 보이차를 비닐팩에 가져왔다. 맛이 괜찮더라면서. 나는 보이차를 그다지 즐기진 않기에 별 기대 없이 물을 끓여 차를 우려내봤는데, 우와~ 정말 부드럽고 깊이 있으면서 편안한 맛이다. 맛이 강하지도 않으면서 싱겁지도 않다. 딱 알맞은 맛이랄까. 근사하게 포장한 선물보다 더 마음이 가는, 친구의 정이 담긴 선물이다.
6. 그밖에 사진은 없지만, 후배가 보내준 울릉도 나물로 만든 반찬과 참외 등 각종 음식도 있다. 우리 엄마는 텃밭에서 가꾼 상추를 한아름 따서 주시고, 체리 열렸다고 안 터진 것 골라서 주시고. 아, 또 아는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투썸플레이스 카카오톡 선물도 있네.
내게로 온 선물들을 보며, 그것이 물질이든 마음이든 많이 교환하고 유통시키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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