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18. 금
“사람이 온 세상을 얻어도 제 목숨을 잃으면”
사람에게 목숨만큼 소중한 것, 목숨처럼 지켜야 하는 것이 다 다를 거예요. 누군가에겐 현실이고 누군가에게는 이상이예요. 예수님에겐 하늘나라라는 이상, 본질이 현실보다 중요했죠. 온세상을 얻는 것보다 그분이 간직한 이상이 소중했죠. 현실이 나에게서 무엇을 빼앗아가든 내 안에 간직한 사랑은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다는 거죠. 나는 죽을지언정 본질을 지키겠다, 그 본질을 구현해보겠다, 예수님의 삶의 태도예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은 이상보다는 현실 편이에요. 현실에, 세상에 어떻게든 적응해보려 발버둥쳐요.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음을 문득 생각하게 돼요. 세상은, 현실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마음속에 간직한 본질/이상 없이 현실에 발맞추려 하다가는 결국 현실에 뜯어먹히고 만다는 것을. 온세상을 얻는 게 아니라 변덕스러운 현실 속에서 자기 색깔이 조금씩 지워진다는 것을.
예수님은 어떤 가혹한 현실에도 압도되지도 지배되지도 않았습니다. 현실이 어떻든 주어진 환경이 어떻든, 그분의 삶의 태도는 확고했어요. 그 무엇도 나의 이상을 훼손할 수 없다, 나는 나의 이상과 함께 죽으리라, 였죠. 그런데 결국 죽지 않고 살아남았고요. 당연히 범인의 삶이 아니고 인류에 몇 있는 천재적인 삶입니다.
영혼이 좀 지워지는 걸 감수하면서 현실을 택할 수밖에 없는 우리들. 당연히 이해 가죠. 현실도 정말 중요하거든요. 다만 현실을 택하면 독창성을 발휘하는 예술가는 될 수 없어요. 저는 현실보다 본질과 이상을 택한 작가들이 얼마나 고생하며 사는지 알아요. 그들의 빛나는 글은 그 고생 끝에 나오는 거지요.
그런 글을 볼 때마다 나는 결코 좋은 글을 못 쓴다는 걸 깨달아요. 나는 그들보다 훨씬 현실 편이고, 내가 좀 더 편안하고 안락한 중산층의 생활을 추구할수록 독창적인 글을 쓸 수 없고, 둘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걸. 재능의 출발점은 그가 간직한 이상의 높이에 있거든요. 예수님의 천재성은 그 이상의 어마어마한 수준에 있죠. 이상이 하늘나라, 하느님의 사랑이었으니 말 다했죠. 물론 예수님은 몽상가가 아니었어요.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재능까지 있었고 그래서 역사 속에 자취를 남긴 천재죠.
오늘 이은정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작가들과 예수님의 삶의 태도가 같다는 걸 알게 됐어요. 현실보다 본질을 택한 사람들.
우리가 다 그렇게 살지 못해도 괜찮아요.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어요. 하지만 본질을 택한 그 삶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느끼는 것으로도 우리 영혼이 영영 망가지지 않게 도와줘요. 그들 덕분에 우린 마음의 어느 부분이 고장난지 알게 돼죠. 그리고 우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의 길을 가는 거죠. 그들만큼 이상을 구현하는 능력은 없지만 우리는 그저 현실에 완전히 휩쓸려가지만 않으면 돼요.
이은정 작가의 글이 좋아서 올려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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