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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마지막 인사

by 릴라~ 2005. 8. 22.

밖에서 바라보아야만 항상 진짜가 보이는 것일까.

마지막 출근날,
개학이라서 인사를 하러 학교에 들렀다.

내 자리엔,
새 담임 선생님이 앉아 계셨고..

그 자리가,, 그렇게도 힘들고 괴로웠던 자리였는데
떠나려고 보니

그 가시방석이, 그냥 가시방석이 아니라
얼마나 황홀하고 아름다운 가시방석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바랐던 대로 잘 되지 않는 일들 때문에
나는 의기소침했고 실망했고 그리고 아주 많이 고통스러워했었다.

그러나 오늘에 와서, 비록 실수투성이고 일을 매끄럽게 잘 하지는 못했지만
나 자신 적어도 대충 살지는 않았음을
내가 여기서 보낸 시간이 복된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다만 나는 너무 성급했었고,
우리의 만남 속에 깃든 작은 빛을 알아보지 못하고
일상의 괴로움 속에만 함몰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내게 삶을 바라보는 안목이 부족해서였고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챙기지 못한 탓.
나의 속좁음과 나의 어리석음이 그 이유였다.

미운 정이 무섭다고,
아이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선생님, 가지 마세요.'라고 엉엉 울며 쫓아오고

영영 가는 게 아니라고
대학원 공부하러 간다고, 곧 있으면 다시 온다고 달래면서도
나도 이 헤어짐이 참 많이 힘들었다.

가장 난리법석을 떤 아이들은, 1학기 동안 가장 말 안 듣고 애먹인 녀석들이었다.
2학기부턴 잘 하려고 다짐하고 학교에 왔는데
이렇게 가면 어떡하냐고 대성통곡을 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어른은 포기해도 된다.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아이들은 아이들이고

그들에게는 아직 삶의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다.
인간은 결정된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나는 그 진실을, 너무나, 자주,, 잊어버려왔다.

올 한 학기 동안 나는,
내가 하는 일의, 내가 사는 일의, 
<의미 없음> 앞에 당황했었는데,
그래서 하나둘 포기하기 시작했는데,

그 모두가 내게 사랑이 부족한 까닭이었다.
인간에 대한, 삶에 대한, 그리고 하느님에 대한.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도
희망의 작은 불을 밝히면 그 어둠도 녹일 수 있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렸어.

얘들아, 많이 미안해.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해서, 너희들과 함께 더 행복하게 지내지 못해서.
문제는 '너희'가 아니고 '나'에게 있었어.

내가 문제였어.
내가 <사랑>을 잊어버리고 있었어.
그래서 과정에 깃든 아름다움을 놓치고
지나치게 목표지향적이 되어 있었어.
<사랑>을 잃어버렸을 때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결과물'에만 집착하게 되는가 봐.
삶을 깊이 음미하며 사는 게 목표였는데
어느새 사랑을 잊어버리고,
끊임 없는 사랑의 원천이신 하느님도 잊어버리고 있었어.
내게 사랑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었어.

삶도 삶 밖에서 바라보아야 진짜가 보이는 것일까.
삶이 다했을 때, 우리가 후회할 것은 아마도,
사랑하지 않고 흘려 보낸 시간에 대한 것일지도...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해 무한히 감사하며,
그 황홀했던 가시방석을 그리워하며,
바르고 건강하게 자라 주길 빈다.

나도 곧,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거야.
다시는, 잊어버리는 일 없을 거야.
그 어떤 순간에도 <사랑>을 기억하겠어.

그리고, <사랑>으로 살겠어.

 

 

 


조국과 청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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