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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이야기/여행 단상

충북 화양동 계곡(화양구곡)

by 릴라~ 2005. 11. 28.


어제 화양동 계곡에 다녀왔다. 화양구곡 경치 중 9곡에서 2곡까지 보았다. 이 일대는 우암

송시열이 화양동 서원을 세운 곳으로 암서재는 그대로 남아 있었고, 서원은 대원군 때 철폐

되었는데 괴산 군수가 복원을 하고 있었다.

 

복원을 안 하는 것이 더 나을 뻔 했다. 서원 터에는(원래는 절터인데 유생들이 빼앗았다고

한다.) 웅장한 축대가 많이 남아 있었는데, 그것만 있더라면 더욱 고적한 분위기가 날 뻔 했

다. 새로 지은 서원은 유치한 느낌이 났으며, 전혀 멋스럽지 않았다. 게다가 옛날에 명나라에

제사 지내던 만동묘까지 쓸 데 없이 복원해 놓았다.

 

우암은 정치에서 물러나 이곳에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여기서도 조정에 간섭을 하며 정치를

했다고 한다. 화양서원 일대 70리 안에는 아무도 주막을 짓지 못하게 하고, 그것을 독점하여

수입이 짭짤했다고 한다. 아무튼 서원의 권세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조선은 선비의 나라인가, 왕의 나라인가. 우암은 한 편으로 보면 선비들의 공론에 의한 이

상국가를 꿈꾸었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고, 또 한 편으로는 왕권을 약화시키고 사

사건건 개혁에 반대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그는 효종의 죽음

이후로는 좀 타락했다고 한다.

 

당시 예송논쟁은 단순히 예법이 문제가 되었던 게 아니라, 왕을 적자로 인정하느냐 안 하느

냐의 문제였다. 고등학교 때 국사 선생님들이 왜 이런 설명을 안 해주었는지 모르겠다.

 

효종의 북벌론은 가능성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당시 청나라에는 조총이 없었기 때

문에 조총 부대 5000명이면 상대해 볼 만하다는 것이다. 조총은 사용법이 까다로워서 훈련

을 많이 해야 위력을 발휘하며 단순히 조총이 있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하

멜의 표류기를 보면, 당시 조선 군대는 세상의 가장 힘있는 군대와 맞서 싸우기라도 하듯 맹

렬히 훈련을 계속했다고 한다.

 

실제로 청나라는 조선에 조총을 바치라고 수차 요구했으며, 몇 백 정이 청으로 갔다고 한

다. 조선의 조총 부대가 없었다면 청나라는 러시아와 싸워 이기지 못했을 것이라 한다. 하지

만 효종이 일찍 죽으면서 북벌론은 힘을 잃고 만다. 명의 잔류 세력과 조선이 힘을 합쳐 청을

치려는 꿈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청의 강희제가 매우 영리하게 통치했기 때

문에 청의 세력은 더욱 강성해졌다고 한다.

 

아무튼 잘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이 시대에 대해서 책도 읽고 공부를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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