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책장 4개가 나란히 있다.
서재를 더 넓힐 수 없어서
항상 서가에 들어갈 만큼만 간직하고
나머지는 중고로 팔거나 선물하거나 폐기한다.
알라딘 중고판매가 100만원이 넘으니
중고로 판 책도 천 권 가까이 될 것 같다.
수시로 정리하는 책인데
이번은 좀 달랐다.
삼십 년 가까이 간직한 책들,
서가 정리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은 책을
정리했기 때문이다.
색이 누렇게 변색되어 모두 버렸다.
이 오래된 책들이 여태 살아남은 이유는
개인적 애착 때문이다.
대학교 수업을 통털어 가장 재밌고 신기했던
1학년 교양 수업 때 산 세 권의 책.
인류학개론 수업이었다.
내 전공도 아니면서 그 두꺼운, 그리고 비싼
로저 키징의 <현대문화인류학>을 샀다니.. ㅎㅎ
물론 다 안 읽었을 꺼다.
대학 교재도 버리고
대학 때 산 철학서와 종교 관련 책들,
한국소설과 외국고전문학도 노랗게 변색돼
삼십 년만에 드디어 버렸다.
이 책들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세계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
독서 입문기의 책들이라 그런 듯하다.
책들을 보니 그것들을 읽은 시간이 환히 되살아난다.
책과 함께 젊음을 보냈다.
아니 책이 없었다면 나는 그저 그 젊음을
어떤 위로도 중심도 없이 흔들리며 보냈을 것이다.
당시 초보독자 수준이었고
폭넓은 독서를 한 건 결코 아니다.
책을 통해 삶의 해답을 발견하거나
깨달음을 얻은 것도 결코 아니었다.
다만 내가 어쩔 줄 몰랐던 그 수많은 시간에
책을 손에 들었다는 것이 귀한 시간이었음을 이제 깨닫는다.
책의 숲을, 기껏 그 언저리를 조금 서성거린 것에 불과하지만
그 숲을 찾아갔다는 것이 내겐 구원이었다.
책은 그 어떤 대답도 주지 못했고
나의 방황에 대한 길이 되지 못했지만
내가 그 시간 동안 책을 손에 들고 있었다는 것이
책과 함께 있었다는 것이 구원이었다.
오래된 책을 버리며 비로소 깨닫는다.
책의 힘은 그것이라고.
이 지상에서 나의 구원을 단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책을 택할 것 같다.
성인이 된 후에는 엄마아빠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D를 만나기 전 젤 많은 시간을 보낸 벗이니..
중학교 때 산 문고판 책들은 아직 서가에 있다.
그 책들은 아마 영원히 간직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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