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담 치료를 끝내는 날, 그동안 감사했다고 선생님 덕분이라고 하자 의사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
"시간을 자기 편으로 만드셨기 때문이에요."
그 말이 참 좋았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는 말.
2.
한때 '꽃길만 걸으세요' 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인생에서 꽃길만 걷기는 불가능하다. 설령 꽃길만 걷는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는 그것이 꽃길인 줄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 길이 얼마나 행복한지도 모를 확률이 높다. 우리가 삶을 인식하는 방법은 언제나 여러 상황에서의 비교를 통해서이고 등산할 때 정상에서의 기쁨과 황홀감이 큰 이유는 그 전에 힘들게 오르막을 올라왔기 때문이니까.
아무튼 구불구불 바윗돌, 큰 돌, 작은 돌, 때론 평평한 길, 수많은 길을 날마다 걷는 우리들에게 있어 사는 게 힘들 때면 누군가 내 편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린 대부분 사람에게 그 내 편을 기대한다(독실한 종교인의 경우 하느님이나 부처님께 기대기도 하겠지만). 그 내 편이 되어주는 이가 길을 버틸 수 있는 큰 힘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긴 인생길에서 항상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이는 없다. 부모도 언젠가는 헤어질 것이고, 가족도 늘 함께 있기는 어렵다.
우리 삶에서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항상 내 편인 존재는 무엇일까. 우리가 머리로 아주 잘 알면서도 그만큼 자주 망각하는 존재, 시간이다. 시간이 나의 가장 소중한 벗이자 내 편이라는 생각을나이 오십 다 되어가는 이제서야 하게 된다. 시간을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도구로 보고 아껴쓰자, 이런 차원이 아니다. 시간은 나의 생명이고, 나의 가장 훌륭한 벗이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다면 가장 잘 산 것이 아닌가 한다. 시간이 내 손가락 사이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가고 시간에 끌려다니는 경우가 많으므로.
시간이 온전히 내 편이라면,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삶을 산다면 삶은 점점 밝은 곳으로 나아가고 행복감도 커질 것이다. 나의 시간을 내가 내 의지대로 운용할 수 있고 그렇게 시간을 쓴 경험이 축적되어 일상에서 시간이 내 편이라고 느껴진다면 그는 어떤 부자보다 더 풍요로운 사람이다. 삶은 확고한 기반을 지니게 되고 그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내적 든든함을 지니게 된다.
삶의 가장 확고한 기반은 시간이 내 편이 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오늘 이 하루의 시간을내 편으로 만들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살아간다면 시간은 점점 내 편이 될 것이다.
3.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마지막 권에 이르러 주인공은 한 가지 큰 발견을 하게 된다. 삶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을. 주인공은 한 파티에 참석하여 자신이 예전부터 알아왔던 사람들을 오랜만에 다시 조우할 기회를 가진다. 젊을 때 고상했던 사람도 품위를 잃고 변한 이가 많았고 그래서 주인공은 알아차린다. 아, 시간이 주인이구나. 시간이 사람들의 얼굴에 그 흔적을 새겨놓았고 사람들은 곤충의 변태에 가까울 만큼 변화해 있었다. 시간을 자기 편으로 만들지 못하고 세상의 시간이 멋대로그림을 그려넣도록 허용했기 때문이었다. 자기 중심이 없으면 누구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지점에 어느 순간 도달해 있다. 그냥 살면, 결국 삶의 주도권은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아니라 물리적이고 세속적인 시간, 크로노스가 가지게 된다.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는 것은 크로노스의 시간을 살지 않고 내가 의미를 부여한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을 산다는 뜻이기도 하다.
4.
지난 반생을 돌이켜보건데(아, 벌써 반생이란 단어를 쓰게 되다니...) 크로노스에게 잡아먹힌 순간이 너무 많았다. 어어어, 하다가 어딘지 모를 곳으로 그냥 떠밀려간 시간들. 무언가를 상대하고 대적하려면 그 존재에 이름이 붙어야 하는데나는 나의 적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저 시간을 낭비했구나, 하는 희미한 느낌만 있었을 뿐. 크로노스는 힘이 세지만 도처에 있기에 잘 보이지 않는다. 무언가를 향해 달려갈 때는 더더욱 보이지 않는다. 후회와 원망에 사로잡힐 때는 완벽하게 크로노스의 먹이가 되었다 보면 된다. 과거의 쳇바퀴만 돌아가고 지금 이 순간이 모조리 우리 손에서 빠져나가고 있으므로.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카이로스의 시간을 확보하는 것,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는 의미이다.
요즘 주일 미사를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내게 남다른 신앙심이 있어서가 아니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에서 '멈춤'을 갖기 위해서이다. 크로노스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잠시 멈추고 다시 카이로스의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잠깐 세속의 시간을 멈추고 성스러운 시간 속에 들어가는 것이니 그 목적이 종교의 본질이기도 하다.
5.
카이로스의 시간에 들어올 때 크로노스의 시간 속에서 알아차리지 못했던 삶의 비전이 보이기 시작한다. 20대 때는 취직하고 일하느라고 30대는 학위 받고 공부하느라고 다 썼고 40대부터 약간의 정신적 방황이 있었다. 학위는 받았고, 직장생활은 거기서 거기고,결혼을 늦게 해 아이가 없다보니 약간 목표가 사라진 느낌.
저녁미사를 보던 어느 날, '지혜로운 청년'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청년 시기를 동경하지만 그 시절은 짧게 지나갔다. 젊음과 열정은 있지만지혜가 없어 방황으로 많은 시간을 써버렸던 시절. 그 청년 시기를 다시 산다면 그 또한 삶의 축복이다 싶었다. 10~20년을 다시 청년으로, 20대와 다른 지혜로운 청년으로살 수 있는 시간이 찾아왔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게 새로운 화두다.
시간이 내 편이라면 어떤 상황에서건 삶에는 희망이 다시 반짝인다. '시간'이라는 최고의 선물이 있는데, 그깟 자산 얼마에 위축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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