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3주가 지났을 뿐인데, 한 삼 년 지난 기분...
강 하나 건너왔을 뿐인데, 어디 멀리 외진 학교에 온 기분...
소박하고 예쁜 아이들도 많다. 그러나...
너무 '쎈' 애들이 있다, 이 지역엔.
입학식 다음 날인 3월 5일, 아침 자습 시간...
울반 복도를 발소리를 꽝꽝 내며 지나가는 학생이 있길래(A라고 하자)
"좀 조용히 가지." 부드럽게 한 마디.
A는 세상 껄렁한 목소리로 "선생님이 문 닫고 수업하면 될 거 아니예요?"
공포감이 들 만큼 불량스러운 태도였다.
그 순간 알아차렸다. 2월 연수에서 절대 건드리지 말라던 3학년 모 학생이 그 학생임을.
수업 안 들어오는 여교사들을 일부러 어깨를 치며 지나간다고, 그래도 모른 척 하라고...
그때 들으며 경력 20년 넘지만 살다살다 그런 이야긴 처음 듣는다고,
왜 처벌을 안 하냐고 생각했던 기억... 바빠서 까먹고 있었다.
암튼 그 학생임을 단번에 알아차리고 조용한 목소리로
"이따 학생부 가서 이야기하자."고 하니
"내가 왜 선생님하고 이야기해야 해요?" 하고 가버림.
일단 메신저로 있었던 일을 교감/교장/학생부에 전달하고...
교무부장은 선생님이 다친다고, 절대 그 학생 건드리지 말라 하고...
그리고 며칠 진짜 잠이 안 왔다.
3학년 교실에서 코너를 꺾으면 바로 우리 교실인데,
A와 언젠가는 부딪힐 거란 생각이 들었다.
A가 우리 반에 피해를 주면, 못 본 척 할 수가 없다.
한 번은 부딪힐 텐데, 어떻게 할까, 첫만남을 복기했다.
'내가 말을 뭘 잘못했지?'
학생부 가자고 하니까 왜 가냐면서 꼬투리를 잡았고
무슨 말이든 꼬투리를 잡아 시비 걸겠다는 태도였다.
"선생님이 문 닫고 수업하면 될 거 아니예요?" 했을 때
"정말 훌륭한 생각이네." 라고 받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생 말을 그대로 받아야 꼬투리를 잡을 게 없다.
다음에 부딪히면 반드시 그 말 그대로 받으리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 주 수요일, 역시 아침 자습시간에 우리 반 교실을 지나가던 A는
우리 반 교실 뒷문을 뻥~ 하고 걷어찼다.
내가 어떻게 할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 앞문 쪽으로 가면서
아주 큰 소리로 '시~발'이라고 외쳤다. 더 봐줄 수가 없었다.
교실 밖으로 나가서 불러세웠다. 친구까지 두 명이었다.
"욕을 하셨네. 교무실로 가자."
"욕 안 했는데요."
"우리 반 30명이 다 들었는데 진술서 쓸까? 가자."
의외로 순순히 따라왔다.
그리고 마침 자리를 비운 교감 선생님 책상 옆에 두 학생을 앉혔는데
그때도 껄렁하게 앉더니 욕도 안 했는데 내가 난리 친다고
"선생님 피해망상증 환자 아니에요?'
나는 이때다 싶었다. 그대로 받아야지, 반박하면 안 되지.
"어떻게 알았어? 나 피해망상증 맞는데?'
학생은 말문이 막혔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조용히 말했다.
니가 한 그 말도 명에훼손이니까 내가 그것도 기록해두고 문제 삼겠다고.
그리고 1교시 수업이 있어서 교무실을 나갔고
A는 학생부에 갔다왔는지 (작년에 교권침해 있어서 또 걸리면 강제 전학)
그날 오후에 찾아와서 깍듯이 사과를 했다.
나는 사과를 받아주었고, 앞으로는 보면 안녕하세요, 라고 인사를 하라고
좋은 말로 이야기했고, 배고플 때 먹으라고 초코파이도 2개 주고,
배고프면 언제든 찾아오라 했다.
그 이후 A는 현재까지는 나를 보고 인사를 잘 하고 있다.
일단 교통정리는 된 듯. 언제까지 갈 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정면으로 부딪히고 나서는 공포심이 좀 줄어들었다.
내가 말 실수 한 게 없으니 대처하기가 나았다.
이후 교원단체에 이런 위협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지내야 하냐고 문의하니
수업 방해 시 어떻게 분리하는 지에 대한 메뉴얼이 학교마다 있다고
우리 학교처럼 그렇게 부딪히지 말고 무조건 모른 체 하라고 교육하면 안 된다 했다.
그래서 우리 학교 메뉴얼을 보니 분리 장소를 교장실, 교무실(교감), 학년실 등
두리뭉실하게 적어놓았더라. 확실하게 정해놓지 않고.
암튼 A군은 그렇다 치고, 이보다 훨씬 더한 학생이 1학년 신입생 중에 있는데
B군은 국어 수업 때 계속 없어서 아직까지 수업시간에 10분 본 게 다다.
이 B군은 내가 1학년 모 반 수업을 하고 있을 때
교실 문을 발로 차고 간 적이 있다. 나가보니 멀리 도망 가서
그날은 나도 상태가 안 좋아서 잡으러 안 가고 놔두었지만.
어쨌든 이 B군은 교사와 부딪혔을 때 보자마자 반말을 한다고 한다.
상대방 당황하라고. 며칠 전에 3학년 교실에까지 올라가 교실 문을 열고
교사에게 반말하고 행패를 부리고 갔다고.
이 정도 급의 인물들은 내가 공고에 근무할 때도 보지 못했다.
학교는 이미 무너졌다.
학교의 시스템은 붕괴된 지 오래다.
다만 나는 우리 반 교실이 무너지지 않도록 계속 관찰하고 돌보는데,
시스템이 없는 곳에서 할려니 육체적으로 넘 힘이 든다.
쉬는 시간에도 틈나는 대로, 점심 시간에도 교실에 꼭 방문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노동력을 갈아넣어서 교실의 평화를 유지하는 셈.
이런 방식이 얼마나 갈까...
시스템이 돌아가야 한다.
개인에게 의존하지 말고...
하지만 아무도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으니
앞으로 더 나빠질 일만 남았을 것이다.
그래서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다.
안타깝게도 내 결론도 마찬가지다.
시스템이 무너졌기 때문에 개인이 해결할 수 없다.
지금은 담임을 갈아넣어서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
이게 언제까지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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