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정말 3월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학교 이동에, 한 반 인원은 서른 명 가량, 교실은 좁아터지고, 중간급 학교인데 업무는 작은 학교급으로 많고, 십여 년 전에나 하던 잡무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고... 유명하신 폭탄 두 분이 하루가 멀다 하고 학교를 뒤집고, 교감쌤, 학생부장이 번갈아 뛰어오고... 거기다가 학교 건물까지 공사한다고 가림막을 쳐서 창밖으론 가림막만 보이고... 유독가스가 진동하고... 진짜 학교 다니겠나 싶었다.
다이어리를 보니 4월 14일까지 주말에 울렁거리는 증세가 있었다. 울렁거림이 안 나으면 그냥 휴직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어찌어찌 큰 고비를 모두 넘기고 처음으로 약간 안정됐다. 중간고사 원안도 넘겼고 담주 시험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올해도 나를 살린 건 윤동주였음을 알게 된다. '새로운 길' 수업은 3년째, 평소 맑고 고독하고 아름다운 시라 생각했지만, 올해처럼 한 행 한 행이 절절하게 스며든 적이 없다. 그저 힘겹기만 한 이 길을, 나도 새로운 마음으로 걷고 싶었고, 그 길에서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나고 싶었다. 내게도 하루하루가 새로운 길이 되었으면 했다.
6개 반에서 윤동주의 시가 반복해서 울리고, 뒤이어 '별 헤는 밤'까지... 아이들의 힘차고 풋풋한 목소리가 교실 공간을 가득 채울 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위로를 받았다. 시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수업 시작과 끝에 항상 '새로운 길'을 낭독했는데(시 낭송이 수행에 들어가서 모두 외워야 함), 그렇게 한 달 여를 매일같이 윤동주를 낭송하고 또 낭송하면서... 나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나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내가 왜 가르치는지 그 이유를 보여주는 사람이 윤동주다. 내 수업의 목적은 언제나 아이들이 윤동주를 영원히 기억하게 하는 것.
돌이켜보면 딱 십 년 전, 교직을 진지하게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할 때도 나를 붙잡아준 이가 윤동주다. 중학교, 특성화고, 일반고를 모두 거치면서 어디 하나 다닐 만한 학교가 없다고, 약간은 좌절한, 의기소침해진 상태로 중학교에 다시 돌아왔을 때, 나를 살린 이가 윤동주다.
일반고의 시험 위주 빈틈없는 일정에 질려서 중학교에 돌아온 때, 마침 그 학교가 작은 학교여서 한 학년을 교직 생활 처음으로 혼자 맡게 되었고, 에이, 중학교인데, 어때, 맘대로 해보자, 해서 교육과정을 처음으로 내 마음대로 내 멋대로 짜보았었다. '별 헤는 밤'은 교과서 본문이 아니라 보충심화에 실려 있었는데, 나는 그 작품을 중심으로 진짜 백 퍼센트 내 마음대로 한 번 수업해보았고, 그 해 3월 학교 가는 것이 너무나 즐거웠다. 처음이었다. 그렇게 즐거운 해가.
그리고 학교를 옮겨서는 시험 없는 자유학년제가 한동안 있었던지라 일부러 1학년을 지원해서 내 마음대로 가르쳤고, 가르치는 나도 즐겁고 아이들의 반응도 매우 좋았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내오면서, 수업은 잘 됐지만, 담임반이 힘들어 또 좌절... 그래도 윤동주, 이육사 가르치는 게 좋아서 휴직했다가 또 다시 돌아오고를 반복...
고비마다 윤동주가 나를 살렸는데, 올해도 그랬다. 윤동주가 나를 일으켜세우고, 무의미한 일이 팔 할이 넘는 학교 생활에서 내가 그곳에 머무는 모든 의미를, 바로 이 한 사람이 돌려주고 있다. 몇 년째 아무리 반복해 가르쳐도 결코 지겹지 않고, 해마다 더 깊은 감동을 돌려주는 시인. 그가 바로 윤동주다.
학교 컴퓨터에 항상 수업하는 단원 관련 배경화면을 깔아놓는데(그와 동행한다는 의미에서), 이 배경화면을 다음 단원 '꿩'으로 바꿀 때면 항상 아쉽다. 그리고 다음 해에 그를 또 만나기를 고대하고 또 고대하게 되는 것이다.
또 만나요, 윤동주 시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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