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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이야기/여행 단상

말미오름에서 바라본 성산포의 절경 - 제주올레 1코스

by 릴라~ 2009. 2. 23.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다. - 다비드 르 브르통


어서 만나는 세상에 중독되고 나면 차나 기차 등 탈 것에 앉아서 스쳐가며 바라본 그 어떤 풍경도 우리 마음에 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 한 걸음 한 걸음 두 발로 걸을 때, 비로소 세계의 풍경은 온전히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되고, 우리 역시 그 세계의 일부가 된다.


두 발로 걷는 순간, 다리와 팔과 눈과 귀와 피부가 활동하기 시작하고, 무수히 많은 입자들이 살 속으로 파고 들어온다. 피상적이던 우리의 존재감이 커지고 우리는 이 세계 안에 튼튼하게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몸은 세계를 느끼기를 원한다.


2월 15일, 제주 올레 1코스를 걸었다. 제주 여행은 세 번째지만 그 속살을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대지와 바다를 만날 수 있을 줄은 예상 못했다. 걸어서 만나는 제주의 풍광은 드넓고 아름답고 다채롭고 야생적이었다. 검은 현무암의 나지막한 돌담, 당근과 감자를 캐는 검은 흙밭,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 오름에서 내려다본 해안가의 아름다움. 한치를 말리는 바닷가. 깨끗한 공기, 맑은 물빛. 바람, 그리고 하늘.

이 길의 백미는 말미오름을 넘어가면서 내려다본 성산포 일대의 정경이리라. 억새를 벗삼아 언덕길을 오르면 인도네시아를 연상시키는 숲과 들판이 동서남북 한눈에 들어온다. 2월인데도 밭은 푸른 채소로 가득하고 군데군데 둥근 오름이 솟아 있다. 해안선을 따라 바다로 시선을 돌리면 둥그스름한 수평선의 아름다움이 우리를 또 한 번 놀라게 한다.


말미오름과 알오름은 개인 소유의 땅인데 올레꾼들에게 개방되었다. 지도에는 이 둘을 합쳐서 ‘두산봉’이라고 부른다. 말미오름은 소가, 알오름은 말이 방목되는 곳이다. 그래서 이런 귀한 땅이 개발로 오염되지 않고 여태 살아남은 것 같다.


알오름을 지날 때부터는 강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제주의 거센 바람. 잠시도 멈추지 않고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내 온몸을 뒤흔들던 바람. 아마 내 생애 이토록 큰 바람을 맞아본 건 처음이지 싶다. 그 바람은 종달리 해안도로를 걷는 내내 계속되었다.

바다를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성산일출봉 앞에 닿는다. 걸으면서 멀리서 종일 바라본 일출봉. 올레 1코스는 일출봉 주변 마을을 도는 길이었다. 푸른 화살표가 5시간 동안 우리를 안내했다. 그런 기다림 끝에 바로 눈앞에 나타난 일출봉은 예전에 버스에서 내려서 볼 때와 다르다. 옛친구처럼 친숙하고 반갑다.

종점 광치기 해안을 향해 걸어가는데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바닷가에서 서성이는 갈매기 한 마리에게 인사하고 길을 돌아나왔다. 노곤함이 서서히 밀려왔는데 깊고 평온한 노곤함이었다. 다른 일정 때문에 1코스로 올레길을 끝내는 것이 아쉬울 뿐.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길이 끝나는 곳까지 계속해서 걷고 싶다. 몸과 마음이 완전히 열릴 때까지 천천히, 느린 걸음으로. 끝없이 걸으면서 이 끝없는 세계와 영원히 마주하고 싶다. 이 세계와 영원한 입맞춤을 나누고 싶다. Kisses and hu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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