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튀프론, 소크라테스의 변명, 클리톤이 실려 있음)
철학의 왕자, 소크라테스. 아테네 저자 거리를 돌며 진리를 설파한 사람, 산파술, 그리고 비극적인 죽음. 소크라테스에 대해 그간 얼마나 많이 들어왔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을 읽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어서 나 자신도 조금 놀랐다. 물론 ‘대화편’도 플라톤에 의해 기록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지금껏 그에 ‘대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를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거야말로 착각이었다.
델포이 신탁은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소크라테스라고 했다. 소크라테스는 그 결과에 의아해하는데 자신이 진선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뛰어난 정치가와 시인, 수공 기술자를 찾아간다. 정치가는 자신의 무지조차 깨닫지 못했고, 시인들은 영감에 의해 작품을 낳지만 그 작품의 의미를 설명할 수 없었으며, 기술자 역시 기술에 있어서만 해박할 뿐 그 너머의 것은 알지 못했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세속적인 지식은 없으나 자신이 무지의 지를 가진 가장 지혜로운 자임을 인정한다.
소크라테스가 당대 사람들에게 주고자 한 것은 '의심'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확신에 차서 행동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보기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무지를 알지 못하며, 이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습관적으로 판단하고 반응한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진리다’라고 말하지 않고, 사람들의 사고의 오류를 밝혀줌으로써 그들이 당연시하던 것에 의심을 갖게 만들고자 한 것 같다. <변명> 앞에 나오는 작품 <에우튀프론>을 보면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철저하게 언어가 담고 있는 개념을 명확히 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옳고 그름의 분명한 기준을 밝혀내기 위해 집요하게 대화를 이끌어갔고, 사람들이 판단의 근거로 사용하는 잣대가 틀렸음을 이성에 의해 증명해 보이고자 했다.
그는 ‘모른다’에서 출발했지만, ‘이성’에 의해서 좀더 보편타당한 진리에 가닿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가 회의론자이고 불가지론자였다면 그토록 많은 시간을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바치지 않았을 것이고 그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기지도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모른다’는 그릇된 고정관념을 버리고 진리를 인식하기 위한 전제 조건 혹은 출발점이었다.
그 이전의 어느 철학자와도 다른 그의 삶의 독창성은 그가 평생 시장바닥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보냈다는 데에 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신이 아테네에 보낸 사람이라고 했다. 자신을 말의 등에 달라붙은 ‘등에’라고, 아테네 사람들을 자극하고 각성시키는 임무를 띠고 있다고. 그는 돈을 받지 않고 가르쳤으며, 젊은이들과 대화하느라 자기 가정을 돌볼 새도 없었다. 그는 세상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고 그것에 충실했다.
그는 늘 신의 소리를 들었고, 그 소리를 따라 살았다고 말한다. 그 소리는 진리이며 이성의 빛으로 소크라테스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소리였다. 삶의 근원적인 가치를 인식하고, 세상 한복판에서 자신의 소명을 실현해간 그는 ‘깨달은 자’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그는 신을 믿지 않고 아테네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죄목으로 법정에 서는데, 역사는 그가 독재자들과 친분이 있었고 그것이 사람들의 오해를 샀다고 전한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 민주정치를 불신했는지 어떤지의 여부를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민주적인 투표가 사람들을 함부로 죽이기도 했고 소크라테스는 그에 반대했는데, 그렇다고 그가 엘리트 독재를 옹호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중의 견해가 항상 옳은 것이 아님을 소크라테스는 지적했다.
다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소크라테스가 부당한 사형 판결을 받아들인 까닭이 아테네에 대한 그의 사랑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는 신이 자신을 아테네에 보냈다고 믿었다. 그는 칠십 평생을 아테네인으로 살았고 끝까지 아테네인으로 남고자 했다.
그러나 아테네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변명>에는 소크라테스가 왜 공직에 참여하지 않았는지를 길게 변론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저자 거리에서 보낸 소크라테스의 특이한 삶을 시민들은 의혹의 눈길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또한 그들은 소크라테스의 간섭을 원치도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옳다는 판단이 들어야만 행동에 옮긴 사람이었다. <크리톤>에 따르면, 그는 부정한 행위를 해서도 안 되지만, 부정한 행위를 부정한 행위로 보복하는 것 역시 옳지 못하다고 보았다. 그는 자신이 국외 추방의 벌과를 신청할 수도 있었지만 사형을 받아도 좋다는 태도를 취했었기 때문에, 자신의 그 행동을 다시 뒤엎고 탈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한 그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유가 국법에 있지 않고 인간들의 누명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아테네와 아테네의 법률을 사랑했다. 마치 자녀가 자신에게 상처를 준 부모를 사랑하듯이. 그가 문제 삼은 것은 법이 아닌, 그것을 악용하는 인간, 우중이었다.
그러므로 이 책의 내용을 통해 볼 때,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두고 ‘악법도 법이다’를 논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죽음의 잔을 선택하게 한 것은 타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소크라테스 자신의 내면의 소리였다. 그는 그것이 자신이 가야 할 운명이라고 생각했고, 초연하게 또한 영웅적인 용기로 그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목숨보다도 더 가치 있는 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필로소포스(철학)는 지혜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한평생 지혜를 탐구하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일깨워주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진리 때문에 목숨까지 잃은 소크라테스의 삶은 참된 철학자의 삶, 바로 그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위험을 무릅쓰고 일관되게 진리를 추구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이 난다. 나는 사형을 받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기 위해 가지만 우리 앞에 어느 쪽이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는 신만이 아실 거라고.
그리고 그의 죽음을 둘러싼 논쟁은 이천사백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된다. 그의 생애 자체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과연 잘 사는 것은 어떤 것인가를.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잘’ 사는 것은 ‘옳게’, ‘아름답게’ 사는 것이라 했다.
그는 일상적인 삶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고 사람들이 그것에 도전하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먼저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잘 모른다고 있다는 사실부터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아닌 이성의 잣대로 진위를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하고, 자신의 임무를 발견해야 하며, 진선미의 가치를 삶으로 꽃피워내야 한다. 삶을 아름답게 완성시켜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교육방법은 산파술 즉 문답법으로 잘 드러나는데 이는 오늘날 교육의 기본 관점을 담고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피교육자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교사의 역할은 조력자에 한정된다.
브라질의 교육자 파울로 프레이리는 문제제기식 교육을 제시한 바 있다. 문제제기식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이다. 명령하고 길들이는 교사의 역할을 제거하고, 배움의 과정에서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가 함께 탐구하는 과정으로서의, 자유의 실천으로서의 대화. 그러한 실존적 대화를 통해서만 학생들은 소외되지 않고 ‘세계와의 관계 속의 인간’이 될 수 있다.
시대에 따라 표현 방식만 다를 뿐 많은 교육 이론들이 소크라테스의 현대적 변주가 아닌가 한다. 그의 삶과 사상이 세상에 준 영감을 생각하면 그를 인류 최초의 교사라 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지금껏 소크라테스에 ‘관해’ 설명한 글을 읽은 것보다 나 자신 ‘직접’ 이 책을 읽고 그의 삶을 음미해본 것이 더욱 가치 있는 경험이었음을 밝혀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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