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TV에서 시설을 거부하는 장애인들을 보았다. 17일째 노숙하고 농성하면서도 지금이 태어나서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자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시설에서는 작은 자유도 누릴 수 없다고. 그들은 지체 장애 1급이었고, 자신들이 이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이들-정신 장애를 가진 이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은 밥 주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모른다고.
한 장애인은 시설에서 나가려고 하다가 정신병원에 갇히기까지 했다가-장애인 한 명당 정부에서 지원금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가 사라진 것을 알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낸 연인 덕분에 병원을 나와서 두 사람은 결혼을 했고 아이를 가졌다. 연인은 하반신을 전혀 쓰지 못했기에 아이 돌볼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설에 있었다면 감히 꿈도 못 꾸었을 ‘인생’을 그들은 체험하고 있었고 그것이 그들의 눈빛을 살아있는 사람의 것으로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들은 시설 밖에서 많은 어려움과 겪고 있었고 앞으로 찾아올 불행도 적지 않았지만, 인간의 ‘존엄’을 누리고 있었다. 그들은 ‘살고’ 있었다.
정상적인 많은 이들이 못 살겠다, 죽겠다, 그런 푸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리고 세상 욕을 한다. 그런 못 살 것 같은 힘든 세상 속으로 간절하게 나오고 싶은 이들이 있다. 그들의 소망은 세상 속에서 우리와 함께 사는 것이었다. 부끄러웠다. 옳은 일 하면서 손해 좀 보면 되고, 불행이 닥치면 이겨내며 살면 되는데, 무얼 그리 불평했을까. 세상 속에서 살고 싶은 그들의 꿈이 꼭 이루어지면 좋겠다. 그들이 받아들여지는 세상 속에서, 그들과 함께 사는 세상 속에서, 우리 더욱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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