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sheshe.tistory.com
사는 이야기/일상을 적다

걷기가 주는 선물 - 팔공산 평광동에서

by 릴라~ 2009. 8. 29.

"이십대 때는 혼자 여행하는 것이 엄두가 안 났어요. 그런데 서른을 넘으니 많은 것들이 편안해지고 혼자서도 어디든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길에서 만난 아리따운 이의 말이었다. 눈빛이 맑았다. 일찍 결혼했고 아이는 없다고 했다. 나는 답했다. "저랑 반대네요. 저는 이십대엔 부닥치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독특했기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혼자 길을 나섰지요. 그런데 서른을 넘으니 동행이 없는 것이 아쉬웠어요. 경험을 더불어 나누고 싶어졌거든요."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을, 혹은 세계를, 혹은 세계 속의 자신을 '깊게' 만나고 싶다는 소망의 발로이다. 누군가는 십대나 이십대에, 누군가는 삼십대 혹은 사십대에, 또 누군가는 노년에 그런 소망을 품는다. 어느 시기가 되면 우리의 내면은 여태 돌아보지 못했던, 삶의 다른 영역에 이끌리는 것 같다. 사람마다 다 때가 다를 뿐, 삶은 익숙한 것 대신에 우리가 그동안 충분히 탐색하지 못했던 영역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늦여름의 태양이 따가운 날, 대구녹색소비자연대 분들과 팔공산 아랫 동네를 걸었다. 걸으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평등하게 하는 것에 걷기만한 것이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어른이건 아이건 그 누구건, 길에서 우리는 한 걸음씩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길을 걷는 동안 우리는 이 지상 위에 자신의 한 걸음을 옮겨놓는 여행자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래서일까, 길에서 우리는 쉽게 친구가 된다.  

그 뿐 아니라 걷기는 사람과 자연 사이도 평등하게 만들어준다. 길을 걷노라면 예전엔 그냥 지나쳤던 존재들이 친근한 동행이 된다. 하늘과 땅, 숲과 나무, 풀꽃과 돌멩이들이 우리 곁에 빛나는 모습으로 다가와서 그들의 존재를 살며시 알려준다. 그들이 그렇게 우리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걷는 동안 비로소 알아차리게 된다.  

 

그래서 지속적인 걷기는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을 바꿔놓을 수 있다. 우리가 차를 완전히 버리지는 못하겠지만, 걷는 시간을 조금 더 만들수록 삶이 곱고 순해진다. 삶의 질은 고급 물건을 소유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잊혀졌던 숱한 '야생'의 길동무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그들과 동행하는 데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걷기는 만물을 평등하게 한다.

평광동은 한 시간마다 팔공 1번 버스가 들어간다. 며칠 동안 내린 비가 그친 뒤라서 하늘이 가을처럼 맑은 날, 그 푸르름을 눈에 담고, 종이컵 대신 유리컵을 달래서 맥주 한 잔씩 하고, 불로 고분군을 걷고 불로시장 내 묵집에서 묵국수 먹고 하루 해가 저물었다.

* 걸은 날. 8월 22일.

 























300x25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