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10코스, 사계리 해안 도로를 걷다보면 마라도 유람선 선착장이 나온다. 가보지 못했던 곳이라 들렀다 가기로 했다. 시월인데도 여름처럼 뜨거운 날이어서 유람선에서 맞는 바람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승선한지 30분만에 국토 최남단의 섬, 마라도에 닿았다.
배에서 내리자마자 깜짝 놀랐다. 죽 늘어선 전동차와 호객꾼의 행렬에. 그들 사이를 빠져나가자 나타난 건 시장통 같이 북적대는 상가들. 전부 다 짜장면집이었다. 유람선이 한 번에 몇 백명씩 사람들을 실어나르다 보니 이리 된 것 같았다. 산도 높다란 언덕도 없는 이 자그마한 섬을 가득 채운 음식점과 소음 때문에 굉장히 실망했다.
빈 모습 그대로 두면 더 좋을 것을. 자연은 꾸미지 않은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 마라도의 맑은 얼굴 위로 덕지덕지 칠해진 진한 화장을 보자니 안쓰럽기 그지 없었다. 허나 어디 여기 뿐이 아니다. 우리 땅 구석구석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때문에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원초적 감각까지 녹슬어 버릴까 걱정이다.
해물짜장면은 맛있었다. 다들 원조라고 써붙여놓아서 어디가 원조인지는 모르겠지만, 뭍에서 먹는 것보다 담백했다. 점심을 해결하고 섬을 한 바퀴 걷기 시작했다. 상가를 빠져나와 마라도 남단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나는 이 작은 섬이 여태 지녀왔고, 앞으로도 지니고 있을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그곳에서 아기자기한 우도와는 또다른 마라도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땅끝. 시간과 공간이 정지한 것 같은 텅빈 공간이 주는 허허로움, 사방 팔방으로 펼쳐진 대양, 그곳으로부터 끊임없이 불어오는 바람. 이 섬은 바다 한가운데 서서 그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있었다. 세상이 잠들 때도 잠들지 않고 밤이나 낮이나 파도 속에서 파도와 더불어 출렁이고 있었다. 마라도에서는 인간의 시간 대신에 자연의 시간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을 하나로 엮으며 끊임없이 생성하고 흘러가는 우주의 시간이다.
이곳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지는 백 년이 조금 넘었다고 한다. 토박이들은 마라도의 외로움과 불편함이 싫어서 돈 벌어서 본섬(제주도)으로 나가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잠시 다녀가는 우리에게도 그곳에서 느낀 고독의 느낌은 특별했다. 일상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홀로성'이었다. 마라도의 자연은 외로움과 동시에 여행객에게 일상의 잡다한 모든 느낌들을 씻어버리는 충만함을 주었다.
그래서 누군가 마라도에 간다면, 거기서 하룻밤을 자고 오라고, 아니 며칠 머물다 오라고 말하고 싶다. 관광객이 빠져나간 저녁이나 이른 아침이면 마라도의 자연은 그 참모습을 보여줄 것이기에. 나는 오후 시간이 많이 남아서 고민하다가, 올레길을 걸으려고 마라도를 떠났다. 떠나고 나서도 내내 잊히지 않았다.
다시 제주에 간다면 마라도에서 하루를 머물고 싶다. 바람도, 갈대도, 땅끝에 서 있는 느낌도, 그 위로 내리쬐던 햇살도, 고독 속의 평안도, 바다를 보고 있던 작은 성당도 지금은 모두 그립다. 우리 나라 남쪽 끝섬에서 만난 작고 소박한 성당은 유럽의 어떤 대성당보다도 정겹고 반가웠다.
그러나 그 어떤 인공물도 사실 이 섬엔 필요 없으리라. 동서남북 다 보이는 작은 섬. 바다 말고는 아무 것도 없고, 그래서 외롭지만, 이 광막한 공간에서 느끼는 외로움이야말로 마라도가 우리에게 주는 진짜 선물이다. 그 외로움 속에 우리 자신과 세상을 조금 다르게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 걸은 날. 2009.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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