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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이야기/schooling

한 손으로 접은 종이학

by 릴라~ 2010. 1. 25.




 

“너 장애인이지?”
이 철없는 한 마디로 교실이 발칵 뒤집어졌다. 우리 반 도움실 학생 민지에게 남학생 세 놈이 시비를 건 것이다. 민지는 말귀를 알아듣는 학생이기에 이 사실을 부모님께 전했고, 민지 아버지가 학교에 찾아오시고, 놀린 학생들에게 사과를 받고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학습도움실이란 지체 장애 학생을 위한 특수학급을 말한다. 이 학생들은 수업의 반 정도는 일반 학생들과 같이 통합교육을 받고 다른 절반은 학습도움실에서 특수교육 전공 교사의 지도를 받는다. 도움실 학생을 맡게 되면 일년 내내 긴장한다. 아이들 사이에 말썽이 생기지 않도록 살피는 것이 여사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3월 한 달이 채 가기 전에 놀리는 일이 생겼다. 아직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르는 중에 일어난 일종의 신고식 같은 사건이었다.


민지는 세 살 때 척추 가까이 생긴 종양을 수술한 이후로 몸 오른쪽이 거의 마비되었다. 오른 팔을 쓰지 못하고 걸음도 왼 발 위주로 뒤뚱뒤뚱 걷는데 그 모든 것이 아이들에겐 이상하게 비쳤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도움실 선생님이 우리 반에서 특별 수업을 했다. 민지가 왜 병을 앓게 되었는지 설명해주고, 우리 반 아이들 모두 민지처럼 왼손으로 바늘에 실을 꿰어 바느질하기, 한 쪽 눈 가리고 코너 돌기 등 민지의 어려움을 느껴보는 수업을 한 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후로 아이들이 많이 달라졌다. 어떻게 왼 손으로 바늘에 실을 꿸 수 있냐며 민지를 대단하게 보기도 하고, 놀리는 시선은 사라졌다.


나는 특수학급이 설치된 학교에 계속 발령이 나다 보니 도움실 학생이 포함된 반 담임을 맡은 적이 많다. 민지 말고도 명식이, 간질을 앓던 주연이도 생각난다. 수업 시간에만 가끔 보는 다른 반 도움실 아이들에겐 별 관심 갖지 못했지만, 이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삶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어떤 부모님과 교사들은 말한다. 도움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멍하니 있고 배움도 따라오지 못하는데 왜 통합교육을 시키냐고. 이들이 따로 있는 특수학교를 다니는 것이 낫지 않냐고. 관련 연구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준다. 이 학생들이 멍하니 있는 것 같아도, 특수학교에서 장애인을 위한 특별교육을 받은 아이들보다 일반 학교에서 보통 아이들과 함께 생활한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사회 적응도가 훨씬 높다는 것이다. 생활 중에서 자연스럽게 배우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들 자신을 위해서도 통합교육에 절대적으로 찬성한다. 장애가 있는 친구들과 더불어 생활하면서 알게 모르게 깨닫는 것들이 참 많기 때문이다. 학급당 인원수가 많고 자폐아의 경우 표현을 잘 못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의 괴롭힘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이 힘든 게 문제다.


대개의 경우 초등학교보다 중학교에서 놀리는 일들이 적다. 중학생쯤 되면 철이 든 학생들이 몇 있기 때문에 이 아이들이 잘 도와주고 챙겨주기 때문이다. 민지도 초등학교 때보다 훨씬 생활하기 편하다고 이야기했다. 학기 초의 사건은 있었지만 그래도 중학생들은 이 아이들의 ‘다름’을 놀림의 대상이 아니라 ‘다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의 지성이 조금쯤 자랐기 때문이고 도와주려는 마음도 좀 더 많이 내기 때문이다. 민지의 도우미를 자청한 희정이와 윤영이는 정말 마음이 고운 여학생들이었다. 그 아이들 덕택에 민지는 학교를 편안하게 다녔다. 고등학교만 가면, 일반 학생들이 도움실 학생을 놀리는 일은 거의 없다. 아이들은 그렇게 조금씩 성장한다.


장애가 있는 친구들을 자기 시간을 내서 아낌없이 도와준 학생들은 분명 또래보다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며 자랄 것이다. 혹 지금은 잘 깨닫지 못해도 어른이 되었을 때 그 경험을 상기할 것이다. 어려움을 더 잘 극복하고 더 따스한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다. 그런 종류의 '다른' 경험이 소중하다는 것을 이해 못하는 어른들도 많다. 장애가 있는 급우들을 대놓고 싫어한 아이들은 자기 자신의 모자람이나 부족함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토매틱 자동차를 비롯해서 우리 일상 생활을 편리하게 해주는 많은 것들이 처음에는 장애인들을 위해 개발된 것이었다. 우리가 그들의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고, 그 모든 우리와 '다른' 삶의 조건들이 인류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원천이 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학교에서 특수학급 교사들을 보면 놀랄 때가 많다. 팔 하나가 마비되고 하나도 조금밖에 쓸 수 없는 민지에게 바늘 귀에 실을 넣어 양말을 꿰매는 법을 훌륭하게 가르치는 것을 보면 그저 대단하다 싶었다. 학교에서 직접 ATM 모형을 만들어서 카드로 돈을 뽑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보았고 부모님 도움 없이는 버스를 못 타던 아이가 스스로 통학하는 모습도 보았다.


우리 학교는 학부모들의 과잉 교육열로 인해, 아이들이 공부만 좀 못해도 무시하는 일이 다반사다. 어떤 부모들은 도움실 아이들이 수업에 방해된다고 불평한다. 물론 수업 시간에 소리 지르거나 가만히 못 있어서 수업을 산만하게 하는 경우가 있어서 전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도움실의 이 '다른' 친구들과 생활하는 경험이 그 어떤 교과서의 내용보다 아이들의 마음 그릇을 넉넉하게 한다는 것을 알면 좋겠다.


지금 내 책상 위에는 민지가 졸업하면서 주고 간 종이학이 고이 놓여 있다. 민지가 종이가방 가득 넣어온 것을 내가 병 세 개에 나누어 담았다. 모두 한쪽 손으로만 접은 것들이다. 뇌종양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보다 명민했을 아이가 한쪽 다리와 한쪽 손으로 이 세상을 걸어가고 있다. 이 착한 아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이 세상이 좀 더 좋아졌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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