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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일상의 기록

정토회 '깨달음의 장'을 다녀와서

by 릴라~ 2010. 2. 4.

프로그램은 비공개가 원칙이다. 미리 알면 아무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 또한 아무 것도 모르고 갔다. 불교 명상이나 산사 체험 그런 것이 아닐까 하면서.

명상 프로그램은 따로 있었다. '깨달음의 장'은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말 그대로 '깨달음의 장'이다. 나를 깨닫고, 너를 깨닫는.
잘 모르지만 간화선 수행과 잇닿아 있는 것 같다.
아무튼 그 짧은 만남은 내게 엄청난 '인식론적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나흘 밤, 다섯 낮 속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들.
비공개가 원칙이라 그 말들을 직접 여기 풀어놓을 수는 없다. 
대화가 진행되는 내내 거듭되는 역설이 있었다.
나를 내려놓을 때, 진짜 나, 본래 나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
내 행복과 기쁨은 내 바깥이 아니라 진실로 내 안에 있다는 것.
그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을 진정으로 껴안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무엇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잘 쓰이는 것.
세상에 잘 쓰이기를 희망할 때 오히려 우리는 세상에 휩쓸리지 않게 된다. 묘한 역설이다.
세상에 잘 쓰이기를 희망하는 나, 거기에 우리들의 참모습이 있었다.
꼭 무엇을 해야 하는 나가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가 있었다.
그 진짜 나를 오롯이 느낀 시간이었다.
그것은 자기를 내려놓아야지, 하는 노력이 아니라
진짜로 '내려놓는' 길을 발견함으로써 가능해졌다. 노력이 아니라 깨달음으로.
깨달은 사람만이 참되게 노력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네가 곧 나이므로, 그러니 어깨에 힘 줄 필요 없고,
잘난 척 할 필요 없고, 자기를 내세울 필요 없고,
자기를 설명할 필요 없고, 화낼 필요도 없고,
묵묵히 자기 길을 가면 되는 것. 누가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해야 할 일은 망설임 없이 다만 하면 되므로 내적 갈등은 불필요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아픔이 나의 아픔과 다르지 않고
세상 모든 사람들의 슬픔이 나의 슬픔과 다르지 않으며
그들의 기쁨 또한 나의 기쁨과 다르지 않으니,
그 일이 무엇이 되든 맡겨진 일을 기쁘게 수행할 뿐.
우리는 이 세상에 쓰일 자유가 있다. 세상에 쓰이는 자유, 그것은 사랑의 최고 형태다.

내 지독한 아집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도록 막았을 뿐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이 부처인 것을.
사소한 결점에 눈이 가려져 그들의 참모습을 보지 못했네.
엄마 잔소리를 다 받아주는 우리 아빠는 완전 성인이고
그 많은 풍파 다 이겨내고 노년을 맞은 우리 엄마는 진짜 부처이며
내 버릇없음에 그저 웃으시는 우리 교수님도 부처이고
긴 세월, 내 잘난 척, 자기 주장을 참아준 스터디 동료들도 부처이다.

마음이 모든 속박을 만든다는 말이 그동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 세상 모든 속박은 내 마음이 만들었음을 안다.
그 무엇도 나를 구속하는 것이 없는데, 나는 나를 구속하는 것을 피하며 살아왔다.
그 마음의 본성을 알아차릴 때, 우리는 세상을 진실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내 틀이 아니라 맑고 평화로운 마음으로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볼 수 있고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할 지 알게 된다.
이 세상에 나의 편견을 풀어놓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참되게 바꿀 수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바꾸는 것이 곧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삶의 진정한 기적은, 우리가 온 마음과 정성을 기울여서 타인의 말을 듣는 것.
그 때 우리의 눈과 마음이 열려서, 전혀 기대치 못했던 것들이 우리 마음을 일깨우므로.
옳고 그름은 그 다음의 문제이며, 우리가 온마음으로 들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온마음으로 듣는 그 힘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깨닫게 된다. 타인에게 주었던 선물을 자신에게도 주는 것이다.
그 때 삶은 문득 악몽이 아닌 것이 되고, 이 순간 살아 숨쉬고 있음이 참 행복이 된다.

내가 원래 스승복이 많다. 꼭 필요한 시기에 큰 스승을 만났다.
보수법사님의 말과 행동에서 중생을 향한 깊은 애정과 연민을 보았다.
함께 공부하는 시간 동안 참여한 23분이 모두 넘치는 사랑을 받았고
그들 속에서 나를 보고 내 안에서 그들을 보았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고, 세상이 세상으로 보이고, 내가 나로 보이고,
저 산이 나로 보이고, 저 먼지가 나로 보이고,,,
나는 아무 것도 아니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이번 생은 덤으로 사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무얼 하든 상관 없었다. 이 세상에 잘 쓰이면 그 뿐.
해야 할 일을 다만 할 뿐.

여기 참가하기 전에는 불교 수행이 좁은 곳에 갇히는 것처럼 보이고
세상으로부터 너무 멀어져서 무슨 의미가 있냐 싶은 마음이 좀 있었는데,
내 선입견이 참 웃기고 부끄럽다. 그곳도 세상이고 이곳도 세상이었다.
이 세상에 세상 아닌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그 분들이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넘어서
삶의 본질적인 부분들을 직시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다만 여태까지 그분들의 '체험적 언어'를 내가 잘못 해석했을 뿐.

무엇에도 끄달리지 않는 걸림 없는 자유, 그것은 이상일 뿐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했다. 수행이 깊은 분들한테는.
우리 밖의 그 무엇도 우리를 속박하지 않으므로
혼자서는 자유로울 수 있고, 함께 있으면 조화로울 수 있다.
나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모든 존재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그런 걸림 없는 자유라는 것을 깊이 느낀 시간이었다.

이것은 작은 시작일 뿐, 앞으로 열심히 수행정진하려고 마음 먹는다.
아니, 마음 먹지 않고, 그냥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살 때, 오늘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
이 종교, 저 종교의 진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진리는 언제 어디서든 하나였다.

타종교인을 비롯하여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불교수행공동체의 넉넉함에 감사드리고
부처님의 자비로움에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정토는, 하느님 나라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대의 두 눈과 귀와 손길과 발자국에서부터.
하여, 날마다 새로운 세상이다.


좋은 꿈을 꾸었든 나쁜 꿈을 꾸었든 깨고 나면 다 꿈일 뿐입니다.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꿈에 집착하는 사람은 아직 덜 깬 사람입니다.
아들이 죽어도, 집에 불이 나도 어제일은 어제일입니다.
그것하고 상관없이 오늘일은 계속 나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다가옵니다.
똑같이 술을 먹고 들어오는 남편이라도
어제의 남편을 맞는 것과 오늘의 남편을 맞는 것은 다릅니다.
'만날 똑같다' 하지만 이 세상에 똑같은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순간은 한 번 지나치면 내 인생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법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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