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지난 날을 돌아보게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지난 날을 객관적으로 성찰하며 돌아본 적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고통스러운 사건들의 경우 더더욱. 과거의 일들 속에 감정적으로 파묻힐 수는 있어도, 거리를 두고 관찰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일은 언제나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내 경우 삼십대 초반과 중반에 과거의 테이프가 한동안 마음속에서 돌아갔었다. 그러나 감정적 혼란에치우쳐 있었을 뿐, 그것을 제 3자의 눈으로 응시하진 못했다. 자신을 '지켜보는 힘'이 부족했고 그것을 나 자신에게 이해시킬 '언어'도 부족했다. 이십대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자기를 응시하는 힘이 있었을 때에도, 그것을 표현할 언어는 갖지 못했다. 마음속 웅숭거림을 갈피로 펼쳐내진 못했다.
그 때는 글을 쓸 생각은 전혀 못했다. 전공이 관련 학과면서도(리포트 낼 땐 어려운 책 베끼느라 정신이 없어서 뭘 썼는지 기억이 안 난다). 처음으로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건 스물 아홉살이 끝나갈 무렵, 오마이뉴스를 보면서였다. 이후로도 기껏해야 일 년에 몇 차례 자판을 두드렸을 뿐, 꾸준하게 쓰지는 못했다. 이십대에 글쓰기를 시작했으면 나 자신을 지금보다는 잘 이해하게 되었을 것 같다. 글쓰기가 지닌 치유의 힘을 요즘에야 비로소 느끼고 있다.
엊그제 옛 친구를 만났다. 그를 처음 만난 게 스무 살이니 한 시기가 지났다 해도 좋으리라. 마음은 그 때와 지금 사이를 춤추듯 오갔고,,,, 그리고 몇 년 전만 해도 그렇지 못했는데, 지나간 시간에 대한 총체적인 인상이 내게 전달되었다. 수많은 낱낱의 사건들이 얽혀 있던 복잡한 시간 속에서, 강물의 흐름 같은 어떤 일정한 흐름과 방향성이 포착되는 것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내가 나 자신을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느껴졌다.
십대 때엔 선택의 딜레마가 별로 없었다면(입시 공부로 인해 더더욱), 이십대엔 수많은 '선택'들이 시작되는 시기이고 그것이 힘겹게 다가오는 시기이다. 대학 학과 선택으로부터 시작해서 연애, 취업, 결혼 등 각종 새로운 관계들이 우리의 선택을 요구한다. 그 선택이 우리 인생을 좌우할 것처럼 여겨진다.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하면,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중요하지는 않음을 알게 된다. 정작 중요한 것은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내가 선택한 것을 밀고 나가느냐였다. 어떤 '마음'과 '태도'로 그 일을 행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무엇을 선택했든, 하는 데까지 정성을 기울이고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전체적인 방향은 일치해야겠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느냐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어떤 것이 손에 익으면 다른 것을 같이 할 수 있는 힘도 주어지고, 새로운 기회가 오기도 하므로. 아름다운 마음,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즐겁게, 뭐든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고민만 하며 보낸 그 많은 시간이라니....^^ 정작 중요한 '어떻게 살까'를 고민하지 않고 '무엇을 할까'를 고민한 시간이 더 많았다. 해보고 생각해야 하는데, 생각하느라 하지 않은 일이 많다. 물론 진지한 고민의 시기였으므로, 젊음에서 비롯된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있긴 했지만.
지금 내게 지난 날의 어떤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다. 개인적으론 좀 더 나은 선택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내 삶에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만한 것은 아니다. 지금 후회되는 것은, 왜 자신을 성찰하며 살지 않았을까, 그런 것이다. 자기 삶을 '응시하는 힘'을 충분히 키우지 못했고, 자신을 이해할 '언어'를 충분히 갈고닦지 못한 것, 이 두 가지가 후회된다. 자신의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정직하게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하루에 10분이라도 시간을 내어 삶을 성찰하지 않으며 살아온 것, 그것이 후회된다. 이것 참 교과서적인 말이긴 한데, 사실이 그렇다. 우리가 매일 매일 자신을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분석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통찰'할 수 있다면, 삶은 달라진다. 진짜 기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을 놓치고 바쁘게 살아온 것이 후회된다. 다른 것들은 다 지엽적인 것이다.
한두 번 해보고 안 된다고 버린 것들도 떠오른다. 과감하게 포기해야 할 것도 물론 있지만, 좀더 끈기있게 밀어붙여야 할 것들도 있었다. 학교 일만 해도 그렇다. 나름 애쓰기는 했으나, 내적 갈등이 너무 많았다. 십 년 정도는 어려움을 겪는다 예상하고 기꺼이 어려움을 감수하며 왔어도 좋았을 것 같다. 무언가를 잘 하려면 그 정도 시간은 기본이므로.
어렵고 힘들어도 기쁨이 주어질 때가 있고, 편안하고 쉬워도 무의미할 때가 있는 법인데, 최근 들어 몸의 편함을 많이 좇아온 것 같다. 어려움 속의 기쁨을 더 찾아 누려야겠다 싶다.
이 마음으로 남은 생애를 살고 싶다. 마흔이 몇 년 남지 않았다. '불혹'이라 일컫는 마흔 살엔, 세상사에 흔들리지 않는 내적 힘이 있어야 하리라. 이렇게 쓰고 보니 나의 마흔 살이 무척 기대가 된다(평소엔 약간 두려웠는데..). 기다려지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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